蔡 琬 / 동덕여대 교수, 국어학
1.
助詞는 단어 또는 어절에 연결되어 그 말과 문장 안의 다른 성분과의 관계를 표시해 주거나, 또는 나름대로의 어떤 뜻을 더해 주는 기능을 하는 하나의 품사이다. 문법적 관계를 주로 표시해 주는 조사를 格 助詞라 하고 어떤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를 特殊 助詞라 한다.
특수 조사는 격 조사와 비슷하게 주로 체언에 연결되고, 격 조사에 선행 혹은 후행해서 연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격 조사 없이 체언에 직접 연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격 기능을 겸하는 것처럼 생각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격 조사가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여도 격 기능은 생략된 격 조사가 담당하는 것으로 보며, 따라서 우리가 특수 조사에 대해 가지는 주된 관심은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특수 조사로 분류되어 온 형태들은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전통 문법이나 학교 문법에서 각 특수 조사의 의미로서 제시된 것이다.
은/는(대조) | 만, 뿐(단독) | 도(역시) |
부터(1. 시작 2. 먼저) | 까지(미침) | 조차(추종) |
마다(균일) | 이나/나(선택) | 이라도/라도(불택) |
마저(추종) | 이나/나(확대) | 이나마/나마(불만) |
이야(말로)/야(말로) (특수) | 인들 /들(비특수) | 은커녕/는커녕(물론) |
서껀(여럿) | 밖에(더 없음) | 을랑/랑(지적) |
최근에 이르러 몇 개의 특수 조사에 대해서는 비교적 심층적인 분석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나 일부 형태들에만 집중되어 온 경향이 있으며, 論者에 따라서는 특수 조사의 범위조차 달리 설정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특수 조사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는 아직 만족스러울 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기왕에 집중적으로 검토된 바 있는 '는, 도, 만, 야, 나, 나마, 까지, 조차, 마저'에 한정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2.
2.1. '는'과 '야'
'는'은 특수 조사 중에서 가장 자주 논의되어 왔다. '는'은 주어 자리에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격 조사 '가'와 결부되어 논의되기도 하였다.
예문에서 볼 때 '는'이 쓰인 문장과 '가'가 쓰인 문장의 가장 큰 차이는 새로운 정보의 위치이다. ㄱ은 화자와 청자가 알고 있는 '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새로운 정보는 '우리반 반장'이다. 반면 ㄴ은 화자와 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우리반 반장'이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새로운 정보는 '철수'가 된다. 이처럼 '는'은 화자와 청자에게 이미 알려진 정보에 연결되는 특성이 있다.
또 '는'은 總稱文의 주어 자리에 가장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ㄱ에서 '사람'은 특정 개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속한 類槪念을 가리킨다. 즉 ㄱ은 특정한 상황을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類의 원칙적 屬性을 기술하고 있다. 반면 ㄴ은 '사람'의 속성이 무엇인가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나 원숭이가 아니라)사람'이라는 배타적 의미를 나타낸다.
(1ㄱ)과 같은 알려진 정보나 (2ㄱ)과 같은 총칭적 의미의 명사는 흔히 話題(주제)가 된다. 화제란 어떤 언술이 'x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그 'x'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리하여 '는'이 문두에서 限定的인(알려진), 혹은 총칭적인 명사에 연결될 때 '는'은 화제를 표시한다고 말해진다. 종래 '주제적'이라고 하여 '는'의 기능을 격 기능과 결부시키려 했던 것은, '는'이 가진 화제 표시 기능이 단순히 의미를 더해주는 것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는'이 文頭에서라도 특별히 강조되어 발음되거나, 혹은 문장 중간에 쓰이거나, 또는 부사나 용언의 활용형에 연결되면, '는'이 붙은 요소가 어떤 다른 요소와 대조됨을 나타낸다.
'는'은 내포문의 주어 자리에는 잘 쓰이지 않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다른 요소와 대조되는 환경에서는 '는'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는'은 '누구, 무엇, 어디, 언제'와 같은 不定 代名詞에 연결되어 의문문을 구성하게 되면 全體 否定을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위의 형태들이 疑問辭로 기능할 때는 '는'이 연결되지 못한다.
'대조'의 '는'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특수 조사로 '야'가 있다. 그러나 '야'는 '는 '에 비해 대조의 느낌이 더 강하고, '물론, 당연히'라는 화자의 주관이 반영되는 점이 특이하다.
'야'는 화자의 주관을 강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는'에 비해 그 쓰임이 제약되어서, 의문, 명령, 추측, 회상, 객관적 묘사 등에서 쓰이면 매우 어색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표현에 '물론'을 삽입시키면 보다 낫다.
또 어미를 화자의 주관(의견)을 나타내는 '-지'로 바꾸면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야'는 다음과 같이 화자의 감정을 강조하여 감탄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2.2.'만'과 '나', '나마'
'만'의 의미는 부사 '오직'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만'이 연결된 요소가 어떤 상황에서 선택하면 그 요소와 더불어 선택될 가능성이 주어졌던 다른 후보들은 자동적으로 배제됨을 의미한다. '만'은 '는'과 비슷한 면도 있으나, '는'에 비해 가능한 자매 항목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점이 다르다.
'만'은 가능한 자매 항목을 배제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少量/少數를 의미하는 부사나 수량사구에 연결되면 그 '적음'을 강조하여 '최소의 한계'를 나타내게 된다.
'만'에 의한 선택은 다른 선택이 배제되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소극적 선택이 아니라 그것이 선택됨으로 해서 다른 후보가 배제되는 '적극적 선택'이다. 다음과 같이 '소극적 선택'의 경우에 '만'이 쓰이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만'에 비해 '나'와 '나마'는 다른 후보가 배제되었기 때문에 남은 후보를 선택하는 '소극적 선택'이다.
다른 후보들이 배제되는 동기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화자의 의지로 배제되는 경우이다. 이 때는 '나마'는 쓰일 수 없고 '나'만이 쓰인다.
위와 같은 경우 배제되는 후보와 선택되는 후보 사이의 객관적인 가치나 그에 대한 화자의 주관적인 가치 판단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후보가 외부의 힘에 의한 배제될 때는 배제되는 후보에 비해 선택되는 후보의 가치가 적은 경우에 많으니 이 때는 '나'와 '나마'가 모두 쓰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나'와 '나마'가 모두 쓰일 수 있으나 주어진 상황에 대한 화자의 판단은 상반된다. 즉 '나'는 부정적 평가(不滿)를, '나마'는 긍정적 평가(自足)를 나타낸다.
다음과 같이 외견상 만족스러울 것 같은 조건에서 '나마'가 쓰이면 어색하다. 그러나 화자가 그보다 더 나은 상황을 상정한 경우에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외견상 만족스러울 것 같은 조건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이 때 화자는 그 같은 조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조건을 원하지만 그 정도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된다.
'나'와 '나마'가 명령이나 제안문에서 쓰일 때 선택권은 청자가 아니라 화자에게 있다.
명령이나 제안에서도 '나'는 화자의 부정적 평가를, '나마'는 긍정적 평가를 함축하기 때문에 (29)는 어색하지만 (30)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나'와 '나마'는 화자의 주관적 평가를 함축하기 때문에 객관적 서술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한편 다음과 같은 용법은 '나'만이 가진 기능이다. '나'는 부정 대명사에 연결되어 긍정문에서 쓰이면 全體 肯定을 나타낸다.
또 '부정 대명사+나'가 부정문에 쓰이면 중의성이 생겨서 全體 否定으로도 部分 否定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이는 '나'의 문제라기 보다는 부정의 영역때문에 생긴 중의성이다. 부정이 '사랑하지'에 걸릴 때는 전체 부정이 되고, '누구나'에 걸릴 때는 부분 부정이 된다.
'나'가 수량사구나 정도부사에 연결되면 그 수량이나 정도를 더욱 강조해 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 때는 선택과는 관계없는 의미이다.
2.3. '도'와 '까지' '조차' '마저'
특수 조사 '도'는 부사 '역시, 또한 '에 해당하는 의미를 갖는다. 즉'도'는 반드시 다른 자매 항목이 이미 선택되었음을 의미하는 점에서 다른 자매 항목을 배제하는 '만'과는 대립되는 의미를 갖는다.
'역시, 또한 '의 의미를 나타내는 점에서 '까지, 조차, 마저'는 '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각기 미묘한 의미 차를 갖는다. 문맥에 따라 '도'만이 가능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까지, 조차, 마저'만이 가능한 문맥이 있다. 또 '까지, 조차, 마저' 사이에도 조금씩 의미의 차이가 있다. '도'가 극단적인 의미를 띤 명사구에 연결될 때는 '역시'보다는 강한 '극단'의 의미를 나타내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화자 청자 간에 '말단 직원은 불황시에도 가장 해고될 가능성이 적다'는 약속이 있을 때만 그와 같은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지 그것이 '도'의 책임은 아니다. 다음과 같이 '말단 직원'을 다른 명사로 바꾸면 극단의 의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극단'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까지, 조차, 마저'가 보다 적절하다.
'도'가 소량/소수를 나타내는 부사, 수량사구에 연결되어 부정문에 쓰이면 극단의 부정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때는 '까지, 조차, 마저'는 쓰일 수 없다.
또한 '도'는 부정 대명사 '아무'와 연결되어 부정문에 쓰이면 전체 부정을 나타내는데 이때도 '까지, 조차, 마저'는 쓰이지 못한다. '아무도'는 긍정문에는 쓰이지 못한다.
'도'의 기능 중에는 '역시'로는 해석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다음과 같은 예문에서의 '도'는 '강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야, 나'와 마찬가지로 '도'도 본래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화자의 감정을 강조해 주는 기능만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까지, 조차, 마저'는 '역시'의 의미를 '도'와 공유하면서 '도'에 비해 화자의 주관을 강하게 드러내는 점에서 공통이나, 그들 사이에도 조금씩 차이점이 있다.
'까지'는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적은 극단적 상황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당연한 상황에 쓰이면 부자연스럽다.
'조차'는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기보다는 화자가 기대하지 못한 일을 나타낸다. 당연하지 않는 의외의 상황을 나타내는 점에서 '까지'와 '조차'의 의미는 비슷하다.
'까지'와 '조차'는 이처럼 비슷하지만, 주어 이외의 자리에 쓰일 때 '조차'는 부정문에, '까지'는 긍정문에 더 자연스러운 점이 흥미롭다.
'조차'는 화자가 기대하지 못한 일을 나타내므로 화자의 의지로서 선택된 일에 쓰이면 매우 어색하다.
'마저'는 '까지, 조차'와는 달리 화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당연한 일에도 쓰일 수 있으며 화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서법에도 어울린다. '마저'가 나타내는 의미는 '하나 남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상과 같이 살펴본 특수 조사들을 그 의미 특성에 따라 몇 가지 관점에서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다.
'는 ', '도', '만'은 비교될 수 있는 다른 요소들에 대해 어떤 가치를 주는가에 따라 서로 구별된다. '는 '은 다른 요소들이 어떤 가치를 갖는가에 대해 중립적이다. 이에 비해, '도'은 다른 요소들이 '도'가 연결된 요소와 같은 가치를 가짐에 의미하며, 반대로 '만'은 다른 요소들이 반대의 가치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야, 나, 나마, 까지, 조차, 마저'는 각각 '는 ', '도', '만'과 공통된 기능을 하여, '야'는 '는 '과, '나, 나마'는 '만'과, '까지, 조차, 마저'는 '도'와 묶일 수 있다. '야'는 '대조'의 기능을 '는'과 공유하고, '까지, 조차, 마저'는 '역시'를 나타내는 점에서 '도'와 같다. '나, 나마'는 '오직'의 의미를 '만'과 공유한다. 그러나 이들은 '는, 도, 만'에 비해 제한된 환경에서만 나타난다든지 하는 고유의 기능을 함으로써 각각 '는, 도, 만'과 구별된다.
또한 '야, 나, 도'는 본래의 의미 외에 화자의 감정을 강조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들을 따로 '감동 조사'라고 나누는 견해도 있으나 특수 조사가 가지는 화자의 주관 표현이라는 기능에서 파생된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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