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化期 國語의 語彙에 대하여
─사라진 고유어·한자어를 중심으로─



1.1. 開化期 國語란 國語史의 시대 구분에서 古代·中世·近代·現代 國語와 대등한 시대 구분이 아니라 단지 近代 國語 末期에 대한 별칭으로 이 시기(대략 1876년 開港~1910년 合邦전후)는 근대 국어에서 현대 국어에로의 移行上 중요한 과도기였다. 특히 생성·소멸 현상이 음운·통사 부문보다 활발한 어휘부(Lexicon)는 개화기 국어에서 큰 동요에 직면한 시기였다. 이는 개화와 더불어 새로운 문명의 충격을 반영하는 새 단어(word)의 증가와 기존 단어의 형태·의미의 변화가 불가피하여 그 결과 외래어와 새 한자어의 증가 및 상대적으로 고유어의 위축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요가 보이더라도 그 결과는 현대 국어에 와서 크게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개화기 국어는 아직은 그 변화가 느려서 中世 ·近代 國語의 基層을 크게 간직한 保守的 性格이 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구어체를 반영한 신소설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1.2. 개화기 국어의 살아 있는 모습은 다른 어느 자료보다도 신소설의 구어체에서 잘 드러나니 言文一致 운동의 결과 文體的 變化가 국어에 나타났다. 또 기존 古代 小說이 판소리적 기능을 바탕으로 한 律文體이며 聽覺的 機能 위주의 郞讀 小說임에 반해 신소설은 散文體이며 視覺的 機能 위주의 黙讀 小說의 성격을 확립하면서 구어체의 어휘부를 俗語·卑語에 이르기까지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신소설 자료에서 드러나는 개화기 국어 어휘부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① 아직도 中世·近代 國語 어휘부의 기층을 간직한 고유어들과 한자어들이 풍부하게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 국어에 와서 대거 소멸되었으니 오늘날은 생소한 고유어와 한자어들이 되었다.
② 문명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한자어들이 증가하였다.〔예 : 學校·敎育·政府· 電報 ·招人鍾 鐵道·法官 ·銀行·關稅·經濟·哲學·調印·停車場......등 주로 日本系 한자어가 借用됨〕
③ 외래어도 아직은 소수이나 차용되기 시작하여 人··物名 표기가 보인다. 〔예 : 화성돈(華盛頓, Washington), 비(Bismarck), 론돈(London), 후로고투(frock coat), 이(boy),...등〕

이제 우리는 위 ①, 즉 신소설에서 아직 보존되었으나 오늘날은 사라진 고유어와 한자어의 양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우리가 살펴본 신소설은 李人稙의 <血의 淚>(1906), <鬼의 聲, 上·下>(1907,1908), <雉岳山, 上·下>(1908, 1911), <銀世界>(1908), 具然學의 <雪中梅>(1908), 陸定洙의 <松藾琴>(1908), 김필수의 <警世鍾>(1908), J.S. Gale부처 번역의 <텬로력뎡>(1895), 李海朝의 <鐵世界>(1908), 閔濬鎬 ·南宮濬의 <紅桃花, 上·下>로서 亞世亞文化社 發行 「한국 개화기 문학총서」 影印本(1978)을 대본으로 하였다. 이제 이들 신소설에서 조사한 고유어·한자어들을 주요한 것만 추려 예문을 통해 예시하고 사전의 뜻도 요약해 덧붙여 본다. 단, 예문은 개화기 표기 그대로 적었고 단어 뜻풀이에서는 현대 사전 표기를 기준으로 하여 약간 달라진 표기가 있다. 出典 신소설 제목은 예문 뒤에 소설 제목 첫 글자로 略記한다. 지면상 고유어, 그 중에서도 다른 품사보다 어휘 변화가 심한 體言·用言·副詞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어 한자어 예를 간략히 덧붙인다.

 
2.1. 體言
(1) 계모의 눈을 마저셔 죠접이 드던 모양도 눈에 션고(血 25)
조잡 : 생물체가 탈이 나 제대로 못 자라고 생기가 없다.―이 단어는 아직 '주접'으로 쓰이고 있다.
(2) 누라의 포달은 졔풀에 주러저셔(鬼, 上 8) 포달 : 암상이 나 욕하고 대드는 일.
(3) 그날로 각처 집 주룸을 불러셔(鬼, 上 52)
'주룸'(중개업자)은 '訓蒙字會', '老乞大諺解'에도 '즈름'으로 나온다.
즈름 회 : 儈(訓蒙, 中 3)
나흔 즈름이러라(一箇是牙子, 老諺下 7a)
(4) 네 자근에 와셔 드을 고(鬼, 下 9)
드 : 붙박이로 종살이하는 것이 아니고 드나들며 일하는 雇工살이.―이 단어는 '드나들다'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인다.
(5) 여긔 이녁  업소(鬼, 下 30)
'이녁'(하오할 사람을 마주 좀 낮게 이르는 말)은 신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대명사 용법으로 '당신, 자네'정도의 뜻이다.
(6) 기도 아니오 덥쥬도 아닌거시(鬼, 下 32)
덥추 : 조선 시대 때 임금의 의복과 궁중 용품을 공급하던 '尙衣院'이란 관청에 딸린 기생들의 총칭임. 속칭 '더벅머리'라고 하며 후대에 娼妓의 속칭으로 씀.――이는 신소설이 조선 후기 사회의 풍물 환경을 반영함을 보여 준다.
(7) 쓸데업시 흐들갑을 피다가(雉, 上 55)
이 단어는 오늘날 '호들갑'으로 주로 쓰이는데 '흐들갑~호들갑'의 자유 교체 어형이다. 그런데 '호들―, 흐들―'은 중세어 '흐늘다'(뒤에 '흔들다'로 변천), '흐들다' ('흐뭇하다'의 뜻), '흐들히'('흐들다'의 부사형)와 同系라 하겠다.
     巢父ᅵ 머리 흐늘오(巢父掉頭, 杜詩諺解 22:51)
    氣運이 흐들야 논 이 通達히 리로다(氣酣達所爲, 杜詩諺解 15:45)
(8) 왼녀편네가 도듬을 드듸고 올라셔(雉, 上 90) '돋+음'이 '디딤대'의 뜻을 지닌 具象 名詞로 쓰인 것이 주목된다.
(9) 발씨 선 길에 길 잘못들기가 예사이지오(雉, 上 94) 발씨 : 발걸음이 길에 익은 정도.
(10) 젼후 푸렴을 도거리로 밧고 잇 사람은(雉, 下 37) 도거리 : 몫을 안 나누고 한데 몰아붙이는 일.
(11) 남순이가 푸졉이 업시 리치니(雉, 下 70) '푸접'(붙임성, 인정미의 뜻)이 없다'는 것은 쌀쌀하다는 뜻이다.
(12) 어린 자식 길러여 우리도 늙게 뉘움보세(銀 41) 뉘 ; 자손에게 받는 덕/뉘를 보다 : 자손의 덕을 입다.
신소설 표기가 '뉘움'인 점에 미루어 동사 '뉘우다'도 추정되나 예가 없다. '뉘'는 중세어 '뉘' (世上, 世代)가 의미 변화된 결과 '後孫들로부터 입는 덕'이란 뜻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13) 본평부인이 실진이 되야셔 제명오리갓치 되얏더라(銀 81)
제명오리 : '계명워리'의 변음. 계명워리 : 행실이 단정치 못한 계집을 욕하여 이르는 말.―'계명워리'의 어원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으나 품행 안 좋은 여자를 가리키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妓生 이름으로 흔한 '桂月이·明月이'를 내리 발음하던 데서 생긴 단어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 만약 이것이 맞는다면 이 단어는 한자어로 들 것이다. 고유 명사의 보통 명사화 용법은 언어에 일반적인 것으로 '姜太公, 洪吉童같다...' 등이 있고 영어에서도 'McCarthyism, boycott...' 등이 있다(1950년대 미국 공화당 의원 McCarthy의 공산주의자 숙청 운동, 19세기 중엽 농민들에게 타도 당한 아일랜드 귀족 Charles C. Boycott에서 각각 유래하였다). 다음 신소설 예의 '범강장달(范彊張達)이 같다'도 소설「삼국지」에 나오는 張飛를 죽인
완악한 인물 范彊張達이를 비유한 것이다.
    범강장달이 갓흔 사람들을 지휘야 (雉, 下 50)
오늘날 '범강장달이 같다, 제명오리' 따위는 老世代의 俗語 표현에나 겨우 남아있다.
(14) 번에 잡도리를 러 드(紅, 上 11)
잡도리 : (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단속하거나 미리 준비시키는 일.
(15) 다시 볼사록 니삿에서 신물이 나고 (紅, 上 41)
니삿 : 이+샅/샅:틈. 갈라진 사이.
이 단어는 중세어에서도 '이틈'의 뜻으로 쓰였다.
    닛삿 시디 말며 (毋刺齒, 小學諺解 3:26)
(16) 뉘게 와 지다위를 러드러(紅, 下 113)
지다위 : 남에게 등을 대고 의지하거나 떼를 쓰는 짓. 또는 자기의 허물을 남에게 덮어 씌우는 짓.
          이 밖에도 '늦부지런, 잔부끄럼, 입내, 모지름, 집뼘, 선소리, 두멍, 동부레기, 살쩍, 당조짐, 등걸잠, 너스레, 주럽, 만수받이, 혜잠,...'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은 用言을 살펴본다.
 
2.2. 用言
(1) 못긴 마음에 어긔 각이 나서 (血 5)
어기뚱하다 : 말이나 짓이 엉뚱하다―오늘날의 '엉뚱하다'는 여기서 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너도 보고 라 거시 죠흔 일이니 숯졉케 너도 더러 라하여라(血71)
숫접다 : 순박하고 진실하다. 숫지다.――오늘날의 '숫제'(ad. '차라리'의 뜻)는 '숫접다'의 부사형 '*숫저비>*숫저>*숫저이>숫제'로 볼 수 있고 이미 신소설에도 '슛지에' 표기가 보인다.
    슛지에 나와갓치 아들낫코  낫코 사잣고나(雉, 下 69)
(3) 말은 깃분 마잇는 사이 먼저 다(鬼, 上 12)
냅뜨다 : 일에 기운차게 앞질러 나서다.――'냅다'(ad. 몹시 세차게)는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4) 젓이 넉넉면 네 쥬럽이 덜터이나 젓조 쥬저러우니 이 고을 엇지잔말이냐(鬼, 上 54)
주저롭다 : 구차하다. 싱싱하지 못하다.
(5) 영졀스럽게 그런 세를 지여(鬼, 上 66)
영절스럽다 : 보기에 참과 같이 그럴듯하다.
(6) 앙바틈고 맵시조흔 암닭 마리를 가져 왓(鬼, 上 100)
앙바틈하다 : 짤막하고 딱 바라지다.
(7) 침모의 이 솔곳게 드러다(鬼, 上 112)
솔곳하다 : 오늘날의 '솔깃하다'가 '솔곳-'으로 된 것인데 '송곳'(錐)의 中世 語形이 '솔옷'인 바 '솔곳다'는 의미 유연성이 강한 '솔옷'에서 파생하여 오늘날 '솔깃-'으로 변화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8) 무슨 일을 서슴다가난 아모것도 아니될터이니(鬼, 上 144)
'서슴다'(머뭇거리고 망설이다)가 오늘날 주로 '서슴없이'처럼 부정어와 호응하는 것과 달리 아직 '서슴다'의 활용을 보이고 있는 예인데 오늘날 '서슴거리다, 서성거리다'는 同系語이다.
(9) 춘천집을 허러셔  말도 잇고 (鬼, 下 15)
오늘날 '헐뜯다'가 더 쓰이는데 비해 아직 '헐다'가 '非難'의 뜻으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
(10) 칠팔잔을 바다먹고 ......옹송망송며(鬼, 下 42)
옹송망송하다 : 정신이 흐리멍덩하다.
(11) 고목은 굼트러지고 봄풀은 욱어졋는(鬼, 下 54)
'굼트러지다'는 사전에도 안 실렸는데 '굼틀, 꿈틀(-대다, -거리다)'와 同系로 보인다. 뜻은 '구부러지고 퍼지다' 정도로 이해된다.
(12) 몃만원이 진듯시 흿덥게 돈을 쓰려는(鬼, 下 78)
희떱다 : 실속은 없어도 마음이 넓고 손이 크다.
(13) 다시 판수의게 빌붓다(鬼, 下 88)
'빌붙다'(남의 호감을 사려고 붙어 알랑거리다)는 중세어 '빌먹다·붓좇다...' 같은 조어 방식의 잔존을 보인다.
(14) 몸이 열고(鬼, 下 103)
열쌔다 : 매우 재빠르고 날래다.
(15) 문도 좁고 더위잡 사이 업니라(텬로 18b)
'더위잡다'(붙잡다, 끌어 잡다)는 中世 語形 이래의 모습이 그대로 아직 쓰인 예이다.
    어느 餘暇애 서르 더위자리오(豈暇相扶持, 杜詩諺解 2:55)
(16) 셰샹에 권셰있고 가멸고 (텬로 84b)
中世語 '가멸다'의 발달형인 '가멸다'(부유하다)가 아직 쓰였음을 보여 준다.
(17) 무슨 각을 고 눙치지(雉, 上 15)
눙치다 : 언짢았던 마음을 풀어 누그러뜨리다.
(18) 엇지 그리 안차던지 놀나 긔은 조곰도 업시(雉, 上 58)
안차다 : 겁이 없고 당돌하다.―이 단어는 요즘도 드물게 쓰인다.
(19) 그 소리를 듯더니 실죽 마이나셔(雉, 上 59)
실쭉하다 : 마음이 고까와 내키지 않다.―요즘은 '샐쭉하다'가 쓰인다.
(20) 사박스러운 옴팍눈으로 부인을 금 건너보(雉, 上 82)
사박스럽다 : 보기에 독살스럽고 야멸차다.
(21) 그년이 만일 너를 실타고 왜장을 치거든 총으로 노아죽여(雉, 上 142) 왜장(을)치다 : 누구라고 맞대지 않고 헛되이 큰소리로 마구 떠들다.
(22) 곡비도 길면 드는 법이라(雉, 下 3) 속담 '고삐가 길면 밟힌다'를 '드다'라는 단어로 썼는데 중세어 '드듸다'(>디디다 ; 결국 '밟다'와 類義語임)의 잔존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발로 고초 드듸여 셔샤(月印釋譜 1:52)
오늘날 부사 '드디어'도 '드듸다'의 파생잔형이라 하겠다.
(23) 가 휘휘다고 너진년을 부르닛가 그셔 나를 겁만타고 비웃는 모양이로군 (雉, 下 8)
휘휘하다 : 무서울 정도로 쓸쓸하고 고요하다.
(24) 두셔를 못차리고 울가망을 터이나(雉, 下 28)
울가망(을)하다 : 근심스럽거나 답답해하다.
(25) 에그 망측고 측살스러워(雉, 下 36)
칙살스럽다 : 보기에 얄밉고 하는 짓이나 말이 잘고 다랍다.
(26) 저러커니 십어 도로혀 풀쳐각을 고 참고참아(雉, 下 58)
'풀치다'(맺힌 것을 돌리어 너그럽게 용서하다)는 중세어 '풀티다'('풀다'의 강세어)의 잔형이다. 그리고 '풀쳐생각'은 명사로 굳어져 '맺힌 생각을 풀고 스스로 위로한다'는 뜻이다. 중세어 '풀티다'의 예를 든다.
    셜워 플텨 혜니 造物의 타시로다(松江, 續美人曲)
(27) 그리 도셥스럽게구나(雉, 下 71)
도섭스럽다 : 도섭(주착스럽고 변덕스러움)을 부리는 티가 있어 보이다.
(28) 그게 다 무슨 사위스런 소리요(雉, 下 84)
사위(미신으로 어떤 불길한 일이 생길까봐 어떤 말이나 사물을 꺼림)스럽다 : 미신적으로 마음이 불길하고 꺼림칙하다.
(29) 찬이슬은 압집 양철채양에 흠치름게 방울져 러질듯고(松 3)
흠치름하다 : 깨끗하고 번들번들하여 윤이 나다.
(30) 미스럽게 담화를 (松 48)
요즘은 '재미있게'가 쓰인다. '재미'에 '-스럽다'가 쓰인 것이 주목된다.
(31) 엇구슈게 슈작을 건네며(警 4) 엇구수하다 : 하는 말이 이치에 그럴 듯하다.―이 단어는 중세어 '엇굿다~옷곳다' ('香氣롭다'의 뜻)의 발달형으로 '엇굿다'(香)의 어근 '엇굿-'이 3음절화된 것이다. 그 원인은 둘째 음절 말음 ㅅ〔s〕의 强化로 음절화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미도 변화를 입어 '향기롭다'는 뜻에서 많이 변화되어 '구수하다, 그럴 듯하다'와 같은 뜻으로 의미 확대(extention)를 입은 것이라 하겠다. '향기롭다'는 뜻으로 중세어 '고다'가 있고 '곶'(花)과의 합성어로 보이는 '곳고다'도 역시 같은 뜻으로 쓰였으므로 '고다
~곳고다~엇굿다~옷굿다'가 類義語라 하겠다. 오늘날의 '고소하다, 구수하다'도 물론 이들의 발달형이다.
고 수리 티 닐 노티 아니호리라(不放香醪如蜜甛, 杜詩諺解 10:9)
곳고 벼 鸚鵡 딕먹던 나치 나맷고(香稻啄餘鸚鵡粒, 杜詩諺解 6:10)
고셔 글 음 공 입시우리 엇굿도다(詠花公子一唇百, 百聯抄解 18)
香 갓 옷곳 것분 아니라 고로 맏 거슬 다 니르니라(釋譜詳節 13:39)
'엇구수하다'는 다른 신소설에도 더 보인다
    쟝씨의 말만 엇구수히 듯고(紅, 上 28)
(32) 욕심이 흠게 찻던지(銀 11)
현대 사전에도 안 실렸으나 '滿足, 洽足'의 뜻으로 쓰인 것으로 '흠씬'과 同意 관계이다.
(33) 장차들은 혼이 든 치라 최씨덕에 사라야 별안간에 소인을 개올리며 말을 다(銀 28)
이 단어도 현대 사전에는 안 실렸는데 문맥상 '소인이라고 自稱, 謙稱을 하며 아첨을 떨다'는 뜻이다. 구조상 '개다'와 '올리다'의 합성으로 보인다.
(34) 약산동 야지러진 바위를 부르면서 (銀 34)
'야지러지다'(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다)는 오늘날 '이지러지다'와 同系이다.
(35) 아지를 무러박지르고(銀 114)
'무러박지르다'도 사전에는 안 실렸으나 '물어 윽박지르다'의 합성으로 보인다.
(36) 문닷어 버리고 폐점기를 풀풀니(鐵 78)
풀풀하다 : 힘이 있고 성질이 괄괄하다. '팔팔하다'와 同系이다.
(37) 에그 시쟝시려워라(紅, 上 3)
시장스럽다 : 시들하고 언짢다.
(38) 계집아가 그 동안  공부만 여도 무던지 더 셔 무엇을 게(紅, 上 8)
'무던하다'는 오늘날 주로 무난하고 유순한 性品 묘사에 좁게 쓰이는 것과 달리 중세어에서는 '괜찮다, 可하다, 아깝지 않다'라는 넓은 뜻으로 쓰였음을 보여 오늘날은 의미가 축소(narrowing)된 것이다. 위 신소설 예는 아직 중세어 단계 의미를 간직한 것을 보여 준다.
衆生이 져근 惡을 므더니 너겨(月印釋譜 21:78)
(39) 동거지가 준준무식 중 거염시렵고(紅, 上 14)
거염스럽다 : 倨慢스럽다.
(40) 인이  쳐 어리친 도 지나가지 안이니(紅, 上 48)
어리치다 : 독한 냄새에 취하다.――'어리치다'의 '어리-'를 중세어 '어리다'(愚, 迷)의 어근으로 추정할 때 '어리치다'는 '어리다'에 강세의 '-치-'가 붙은 것이 의미 변화를 입은 것이라 하겠고, '어리-'(愚, 迷)에서 파생된 '어리벙벙하다, 어리둥절하다, 어른거리다, 어리어리하다, 으리으리하다, 어리숙하다, 아리송하다' 등이 모두 恍惚·迷亂 상태의 의미를 갖고 있다.
(41) 비나리칠 것도 당쟝 경무쳥으로 보여 하이 놉흔 구경을 식여야 겟네(紅, 上 55)
비나리치다 : 아첨해서 환심을 사다.――'비나리'의 어원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빌다'(祈)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42) 도담시러온 시동집은 죵시도 졔 발을 랴던지(紅, 下 111)
도담스럽다 : 탐스럽고 아담하게 도드라지다.
(43) 밥짓 연긔가 넘우 나기로 워셔 눈물을 흘려이다(雪 2)
'연기가 맵다'는 뜻의 '다'가 활용형(워서)으로 존재한 예이니, '내'(중세어는 '', 烟)의 파생 동사로 중세어'*다, *다'가(신→신다→다 처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위 신소설 예처럼 이들이 '연기가 맵다'는 뜻을 갖다가 단어는 소멸되고 그 의미를 '맵다'에게 넘겨주어 오늘에 이른 것 같다. 한편 '맵다'의 중세형인 '다'는 원래 '사납다, 맹렬하다'의 뜻이던 것이(이것의 부사는 '이'로 뒤에 '매우'가 됨) 오늘날처럼 '맛, 연기가 맵다' 정도로 제한되게 되었다.
이상의 用言외에도 '뭉피우다, 둥싯거리다, 설핏하다, 속살거리다, 징내다, 어웅하다, 훌치다, 납신거리다, 싯브다, 구순하다, 걸쌔다, 움지르다, 무지르다...' 등 많은 단어를 들 수 있다. 다음은 몇 개의 副詞를 살펴보자.
 
2.3. 副詞
(1) 가 지는 것을 보고 진동한동 드러오다가(雉, 下 7)
진동한동 : 매우 급히 바쁘게 걷는 모습.
(2) 문압으로 밧특이 닥아서며(雉, 下 42)
바특이 : 바짝. 썩 가깝게.
(3) 나무입흔 누릇누릇 명사십리 우흐로 느지시 돗 한편(松 1)
'늦다'의 부사형은 중세어에서 '느지'(늦+이)가 있는데 위 예는 국어에 '느지시'(늦이시)도 있음을 보여 준다. 넌지시, 지그시, 나붓이, 반드시 등에 유추된 결과로 추정된다.
(4) 참 적이나면 식을 여두고 가겠습닛가(松 71)
적이나면 : 형편이 다소 우연만 하면.
(5) 그리면 일것 사년이나 공부를 가(紅, 上 8)
일껏 : 일삼아 이때껏. 일부러.――요즘도 老世代는 사용하며 '기껏'과 類義語이다.
(6) 수가 문쳥문쳥 사람이 몃친지 모르 판이라(銀 34)
문쳥문쳥←문척문척 : 자꾸 갈라지고 끊어지는 모양. '문적문적'의 거센 말. 오늘날은 이것의 변음으로 보이나 '뭉텅뭉텅'(뭉턱뭉턱)이 더 쓰인다.
(7) 그예 큰소리가 나게고야 말지(紅, 上 12)
그예 : 마침내. 드디어.――오늘날은 '마침내, 드디어'가 쓰이고 '그예'는 사라졌다. 혹시 '그예'를 이것과 音相이 비슷한 한자어 '기어(期於)이'의 축약 변이음으로 보기 쉬우나 의미 차가 있는 별개의 단어이다. '그예'는 '結果' 중심의 표현이고 '기어이'는 '意志' 중심의 표현일 뿐이다.
(8) 여보 바로 엿줍구려. 벌셔 알르시고 무르시 으밀아밀 것 무엇잇소(紅, 下 21)
으밀아밀 : 비밀히 이야기하는 모양.――오늘날의 '우물우물'과 同系로 對話 및 行動 관계에서의 은밀함을 뜻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본다.
가면 으밀아밀이 가겠소(紅, 下 59)
(9) 마암이 흥슝슝지 안이겠소(紅, 下 60)
'싱숭생숭'이 당시는 위처럼 적힌 것인데 '흥――'은 한자 어원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만하다.
지금까지 살핀 신소설에서 드러난 여러 고유어들은 거의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 또는 지금과 다른 표기형들로 그중 상당수가 중세 어형과 그 발달형인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오늘날 되살려 쓸만한 것도 많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고유어 외에 우리 국어의 큰 어휘재인 한자어들도 신소설에서 상당수 쓰이던 것이 오늘날 소멸된 예를 매우 많이 발견할 수 있어 다음에 이를 간략히 살펴본다.
 
3. 신소설에서 자주 나타났거나 또는 비교적 어려운 한자어로서 지금은 소멸된 것들의 일부 예를 들어 본다.
(1) 마음이 홀지에 변야(血 2)
홀지(忽地)에 : 갑작스레. 猝地에
(2) 아무 험절이 업스니(血 24).
험절←흠절(欠節) : 부족하거나 잘못된 점.
(3) 옥년이가 얼골빗을 천연히 고치고(血 70)천연(天然)히:自然스럽게.――오늘날은 '天然(덕)스럽다'가 남아 쓰이고 있다. 오늘날 '自然히'가 많이 쓰이나 신소설에서는 '天然히'가 주로 쓰인 것도 특징이다.
(4) 걸인이라도 겨관업다(鬼, 上 13)
겨관없다 : '관계(關係)없다'의 도치형으로 신소설에서 자주 쓰인 단어이다.
악담을 기로 겨관이 잇오(雉, 上 17)
(5) 김승지의 부탁을 헐후히 여기는 것도 아이오(鬼, 上 49)
헐후(歇后)히 : 대수롭지 않게.
(6) 셔방이 시르면 표차롭게 갈라셔서(鬼, 下 15)
표(表)차롭다 : 여럿 중에 드러내 놓고 두드러지게 하다.
(7) 김승지를 가라 마실드시 폭을 풀풀던 강동지의 마누라가(鬼, 下 51)
폭백(暴白) : 분한 사정을 하소연함.
(8) 오활고 공교 말에(텬로 90b)
오활←우활(迂闊) : 곧바르지 않고 사리에서 벗어남.
(9) 슈삽 말로 답되(雪 5)
수삽(羞澁)하다 : 부끄러워하다.
(10) 태순이 강잉히 우으며(雪 16)
강잉(强仍)히 : 마지못해.
(11) 셩을 살릴 각이 도져나(銀 95)
도저(到底)하다 : 정도가 깊다.――오늘날 '도저하다'는 사라졌으나 그 부사 '도저히'는 남아 쓰인다.
(12) 여간 놈은 졍신처릴 슈가 업시 드러오(雉, 上 53)
'여간'(如干)은 '보통의'라는 뜻으로 오늘날 否定文과 호응하고 체언(N)을 직접 수식하지 않으나, 신소설에서는 위 예처럼 체언을 직접 수식하거나 다음 예처럼 긍정문과 호응하는 예가 있어 統辭的 기능의 변천을 보인다.
    여간 좀 연구야 아거시 잇거든(금수회의록 22)
    여간 소료에 틀니드도 드른톄 만톄  것이오(紅 11)
(13) 우 쓸업 설폐만 나냐(雉, 上 74)
설폐(設弊) : 폐단을 말함.
(14) 남의 자식을 악착 죽엄을 시키면(雉, 上 100)
악착(齷齪)하다 : 끔찍하다.――오늘날은 '악착같이, 악착스럽다'가 쓰이며 뜻도 '지독히, 끈기 있게' 정도로 쓰여 '끔찍하다'의 뜻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15) 로라도 더 살려두면 모냥만 졈졈 더 수통지(雉, 上 104)
수통(羞痛)하다 : 수통스럽다. 분하고 원통스럽다.
(16) 가 셔방질는 것을 제 눈로 젹실히 보앗남(雉, 下 40)
적실(的實)히 : 확실히.
(17) 법정에 드러가셔 발괄이라도 리다(雉, 下 113)
발괄←白活 <吏讀語> : 관청에 하소연하기.
(18) 박사과 갈 배포여 가고(松 6)
배포(排布) : 마음 속으로 일을 이리저리 계획함. ―오늘날도 '배포가 유하다' 등에 쓰인다.
(19) 고슌돗치도 제 삭기는 함함다고 다나(警 31)
함함(含含)하다 : 털 따위가 부드럽고 반지르하다. ―중세 국어에서도 이 단어는 '흠흠다'로 나타난다.
터릿비치 흠흠고 조시니(月印釋譜 2:58)
'빛나고 반지르하다'는 뜻에서 '쓰다듬고 귀히 여긴다'는 뜻으로 발전한 것 같다.
(20) 병환이나 얼른 평복이 되셧스면 죠켓네(紅, 上 40)
평복(平復) : 병이 나아 건강이 회복됨.
(21) 그 사이 조곰도 국축지 아니고 (紅, 上 56)국축(跼縮) : 마음이 황송하여 몸을 굽힘.
(22) 애진 호령드른 일이 일상 앙앙해셔(紅, 下 19)
앙앙(怏怏) : 마음에 앙심을 품은 모양.
(23) 리씨부인이 억색 마음을 익이지 못야(紅, 下 40)
억색(臆塞) : 몹시 원통해 마음이 답답함.
(24) 그 동탕던 심과장의 얼골이(紅, 下 98)
동탕(動蕩) : 얼굴이 토실토실하고 아름답다.
(25) 옹용조쳐 도리가 잇스니(紅, 下 114)
옹용조처(雍容措處) : 和樂하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함.
(26) 공번되고 올흔 일을 야(텬로, 60a)
'공평하다'는 뜻의 단어로 중세어 이래 개화기 때도 자주 쓰인 것이다. 內訓의 '公反외욤'으로 미루어 한자어로 추정된다.아로 公反외요 廢티 못야(內訓 2:20)

그 밖에 소료(所料), 색책(塞責), 토심(吐心), 계연(係戀), 자락(恣樂) 솔발(@鈸)놓다, 소조(所遭), 당고(當故), 이심(已甚)스럽다, 착악(錯愕)하다, 비월(飛越)하다, 천착(舛錯)하다, 헌앙(軒昻)하다, 주작 (做作)하다, 엄적(俺迹)하다......등 생소하거나 어려운 한자어들이 口語體의 신소설 그것도 對話體 부분에 자연스레 도입 구사되고 있음에 대해 우리는 이것이 작가 개인의 한문 능력의 결과라기보다는 당시 言衆의 어휘부에 한자어의 폭이 매우 넓었기에 당연히 소설에도 자연스레 반영된 결과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한자어들은 결국 소멸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생소하고 어려워 소멸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반드시 이것이 원인의 전부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리에게 생소하고 어려운 한자어도 어원 의식 없이 지금까지 잘 쓰이는 '억울(抑鬱)하다, 앙심(怏心)품다, 어색(語塞)하다, 휘황찬란(輝煌燦爛)하다, 구차(苟且)하다, 야속(野俗)하다...' 등이 있기 때문이다.

4. 이상에서 신소설 자료를 중심으로 살핀 개화기 국어의 고유어·한자어의 모습을 통해 고유어에서는 중세 ·근대 국어의 어휘부를 반영하는 많은 語例의 확인과 더불어 그렇게 오래 보존되어 오던 단어들이 현대 국어에 와서 크게 변화를 입어 많은 고유어들이 급격히 소멸되었음을 새삼 절감하며, 한자어 역시 신소설의 구어체에 크게 반영되었으나 오늘날은 사라진 것들이 매우 많음에 언어의 변화 특히 어휘부의 동요와 변천이 개화기 국어 이래 현대 국어에 와서 그 정도가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대 한국의 문명·문화의 변화 속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외래어가 범람하고 고유어의 생명력이 줄어든 오늘날 시든 꽃에 물을 주듯 사라진 고유어를 의도적으로 되살리는 노력이 작가 등에 의해 실천된다면 신소설 및 고전은 많은 고유어를 남기고 있으니 큰 힘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 '산·강'에 의해 사라졌듯 오늘도 우리가 쉬운 예로 고유어 '나라·겨레·어버이·달걀...' 등보다 한자어 '국가·민족·부모 ·계란...' 등을 더 쓴다면 이들 고유어도 머잖아 사라질 것이기에 우리의 고유어에 대한 꾸준한 사랑이 아쉽다고 하겠다.

5. 참고문헌  
沈在箕(1982), 國語語彙論, 集文堂
李基文(1970), 開化期의 國文硏究, 한국문화연구소
朴鐘哲(1980), "開化期 小說의 言語와 文體", 「開化期文學論」(李在銑 外:형설출판사) 所收
拙稿(1984), "開化期 國語의 文體-신소설·개화기 교과서의 어휘를 중심으로", 江陵語文學 1집, 江陵大 國語國文學科
//////(1986), "開化期 國語의 語彙(Ⅱ)", 국어교육 53호, 한국국어교육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