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字母名과 排列順의 變遷
현재 한글의 子音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의 순서로, 母音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의 순서로 배열되고 있다. 또 그 名稱은, 子音은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피읖, 히읗'으로, 母音은 그 音價가 바로 이름이 되어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로 되어 있다. 그런데 訓民正音 창제 당시에는 한글 字母의 구체적인 명칭이 밝혀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배열도 'ㄱ, ㅋ, ㆁ, ㄷ, ㅌ, ㄴ, ㅂ, ㅍ, ㅁ, ㅈ, ㅊ, ㅅ, ㆆ, ㅎ, ㅇ, ㄹ, ㅿ'와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로 되어 있어 지금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면 현재의 字母名과 그 排列順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이 되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中宗 때의 譯官이었던 崔世珍의 「訓蒙字會」(1527)에서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訓蒙字會」는 正音 創製 후의 문헌으로는 최초로 한글 字母의 이름이 記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과 배열이 도표와 같이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子音> | ||||||||
ㄱ | ㄴ | ㄷ | ㄹ | ㅁ | ㅂ | ㅅ | ㆁ | :初聲終聲通用八字 |
其役 | 尼隱 | 池(未) | 梨乙 | 眉音 | 非邑 | 時(衣) | 異凝 | |
ㅋ | ㅌ | ㅍ | ㅈ | ㅊ | ㅿ | ㅇ | ㅎ | :初聲獨用八字 |
(箕) | 治 | 皮 | 之 | 齒 | 而 | 伊 | 屎 |
<母音> | |||||||||||
ㅏ | ㅑ | ㅓ | ㅕ | ㅗ | ㅛ | ㅜ | ㅠ | ㅡ | ㅣ | ㆍ | :中聲獨用十一字 |
阿 | 也 | 於 | 余 | 吾 | 要 | 牛 | 由 | 應 | 伊 | 思 | |
(末, 衣, 箕는 訓으로 읽혀 각각 '귿', '옷', '키'가 되며, 應, 伊, 思는 中聲의 音만 취함) |
표 1에 의하면 初聲獨用八字와 中聲의 'ㆍ'를 제외하면 「訓蒙字會」의 字母名과 그 배열은 지금과 완전히 일치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崔世珍이 지금의 字母名과 배열에 대한 그 토대를 구축해 놓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訓蒙字會」의 記錄은 이미 전통적으로 쓰여 오던 것과 깊은 관계가 있음이 여러 각도에서 學者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이 관계와 이후의 변천을 편의상 字母名과 배열로 장을 구별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Ⅰ. 한글 字母名의 變遷
앞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訓蒙字會」 凡例가 보여 주는 사실은, 崔世珍이 최초로 字母에 이름을 부여하고 또 그 순서를 결정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할 근거가 되고 또 이를 旣定事實로 한동안 받아들이게 했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崔世珍이 독창적으로 한글 字母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데, 그 중요한 이유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崔世珍은 직업이 譯官으로 漢語와 吏文에 관한 한 당대 제1의 존재로, 그의 업적인「飜譯老乞大」,「飜譯朴通事」,「老朴集覽」,「四聲通解」,「吏文輯覽」 등도 다 이 부분에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國語學者로서의 그의 업적은 거의 없다. 유명한「訓蒙字會」도 국어학에 관계된 저서가 아니라 아동을 위한 漢字敎習書로, 凡例에 있는 國語學史的으로 意味를 지니는 내용을 그가 새로이 연구해 소개할 자리는 아니다. 이 사실은 구체적으로 '諺文字母俗所謂反切二十七字'와 같이 당시 일반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을 채택한 것을 뜻하는 '俗所謂'를 비롯하여 「訓蒙字會」도처에 보이는 '俗稱', '俗呼', '俗作'과 같은 표현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둘째, '初聲終聲通用八字'와 '初聲獨用八字'의 규정은,「訓民正音」 解例本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崔世珍의 독단에 의한 것으로 오해받은 일이 있었으나, 解例本 발견 이후에 崔世珍이 당시의 표기 관행을 기록해 놓은 것에 불과한 사실임이 밝혀졌는데, 이 점 또한 崔世珍이 당시의 관행에 충실하였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셋째,「訓蒙字會」의 字母 배열 순서 중 모음의 배열이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ㆍ'로 되어 있는데, 이미 이와 같은 모음의 배결이 申叔舟가 지은 「四聲通攷」凡例에 보이는 점이다.
넷째는「訓民正音」解例本에서 보이는 字母名의 흔적이다. 즉 諺解本의 中聲에 대한 설명에서 陽性 母音 系列인 'ㆍ,ㅗ,ㅏ,ㅛ,ㅑ'의 뒤에는 당시의 모음조화규칙에 따라 助詞 ''이 오고, 陰性 子音인 'ㅡ,ㅜ,ㅓ,ㅠ,ㅕ'의 뒤에는 '는'이 오고 있는 점이다. 이것은 正音 창제 당시부터 이미 모음의 音價가 바로 그 이름이 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단 中性 母音 'ㅣ'는 ''에 선행하는데, 이는 당시 中性 母音 'ㅣ'가 陽性의 助詞를 취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訓民正音」 諺解本에서도 이 점은 예외가 없다(예: 易(잉) 쉬 씨라). 따라서「訓蒙字會」에서는 이 사실을 '阿, 也, 於, 余' 등과 같이 漢字로 표기해 놓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訓民正音」 諺解本에서 初聲의 音價를 설명하는 부분을 자세히 보면 'ㄱ', 'ㅋ','ㆁ' 등과 같이 ''이 오고 씀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ㄱ' 등이 자음 아닌 陽性 母音이나 'ㅣ'로 끝나는 말로 읽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母音들이 이미 음가대로 읽혔음이 말해 주듯이 子音들도 양성 모음 또는 'ㅣ'모음의 도움을 얻어 ',가,고,갸,교'나 '기' 중의 한 가지로 읽혔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後代에 子音을 '기,니,디,리…'로 읽는 관습이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正音 창제시 子音 17字는 다음과 같이 읽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 키, , 디, 티, 니, 비, 피, 미, 지, 치, 시, , 히, 이, 리, |
이와 같이「訓民正音」에서 母音이 음가대로, 子音이 '기, 키, …'와 같이 읽힌 것으로 본다면 결국「訓蒙字會」와의 차이는 初聲終聲通用字인 'ㄱ,ㄴ,ㄷ,ㄹ,ㅁ,ㅂ,ㅅ,ㆁ'의 8자에 국한된다.
이상 네 가지 사실 외에도 몇 가지를 더 들 수 있지만, 지금 제시된 사실로도,「訓蒙字會」에서 보이는 여러 사실들이 崔世珍의 독자적인 견해가 아니라 이미 당시에 보편, 관습화되어 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崔世珍의 업적을 단순하게 관습을 정리해 놓은 것에만 국한시킬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訓民正音」과「訓蒙字會」의 字母名의 비교에서 그 배열 순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다음의 두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중 'ㆆ'은 창제 당시부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어의 표기에 쓰이지 않고 이후 곧 폐지되었으므로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기, 니, 디 …'가 '기역, 니은, 디귿 …'으로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訓民正音」解例本에 명시되어 있는 '八終聲可足用也'의 규정을 당시 문헌에서는 대개 준수하여 실제 표기에 반영하였으므로, 교육상 終聲에서의 이들의 音價를 그 명칭에 반영시켜야 할 실제적인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정음 창제 이후 어떤 단계에서 終聲의 音價를 나타내기 위해 부득이 '으' 뒤에 초성을 되풀이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따라 初聲終聲通用字의 명칭은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웅'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ㆁ'은「訓蒙字會」에서는 '이웅'(異凝)으로 되어 있으나 전 단계에서는 '웅'으로 읽혔을 가능성도 있음).
이렇게 관습적으로 音價를 설명하던 것을 崔世珍이 漢字로 記錄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윽','읃','옷'의 音이나 訓을 가진 漢字가 없어 부득이 '役','末','衣'을 이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ㄱ','ㄷ','ㅅ'의 이름이 '기역', '디귿', '시옷'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그대로 굳어져 후대의 이름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런데 'ㆁ'의 명칭이 '웅' 아닌 '이웅'(異凝)으로 된 것은 'ㆁ'이 初聲終聲通用字인 사실과는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ㆁ'의 初聲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ㆁ'과 'ㅇ'을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또「訓蒙字會」 당시에 이미 初聲에서 'ㆁ'이 쓰이지 않게 된 결과에 의한 것이다. 결국 'ㆁ'의 명칭은 '이웅'은 終聲에서만 'ㆁ'의 음가를 반영하고 初聲에서는 'ㅇ'과 구별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후에 初聲獨用字인 'ㅇ'과 'ㆁ'이 합류되어 하나로 통합되어 버릴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訓蒙字會」이후에는 대개「訓蒙字會」의 字母名이 유지되고 있다. 다만 'ㅿ'이 17세기에 사라지고 (음운 /ㅿ/의 상실은 15세기 후반∼16세기 초에 이루어짐), 'ㅇ'이 완전히 'ㆁ'에 병합되어 文字上으로 'ㅇ', 명칭으로는 '이응'으로 된 변화가 있을 정도이다. 또 石帆의 「諺文捷考」(1846), 池錫永의 「新訂國文」(1905) 등 간간이 '기역', '디귿', '시옷' 대신 다른 자음 명칭과 마찬가지로 '기윽', '디읃', '시옷'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다가 初聲獨用字가 初聲終聲通用字와 마찬가지로 2音節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는 것은 魚允迪의 「國文硏究」(1909) 등에서 비롯된다.「國文硏究」에서의 子音의 이름은
과 같이 불리고 있다. 이 명칭은 宋綺用의「國文硏究」(1909)에서도 보이며, 學部 안의 國文 硏究所의 「國文 硏究 議定案」(1909)에서도 채택이 되고 있다.
그런데 1933년 朝鮮語學會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기윽','디읃','시옷' 대신 전통적으로 채택되어 내려온 명칭인 '기역','디귿','시옷'을 받아들여 이 명칭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말해온 子音과 母音의 명칭 변화를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字母의 배열은 편의상 지금의 순서에 따름).
현재의 자음의 명칭은 직접적으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하고 있는데, 이 명칭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음도 심심찮게 지적되기도 한다. 첫째, 일반적으로 글자의 이름은 그 글자의 음가를 반영하는데, 終聲의 'ㅅ,ㅈ,ㅊ,ㅋ,ㅌ,ㅍ,ㅎ'이 제 음가대로 발음되지 못하고, 둘째 '기역','디귿','시옷'과 같이 예외적인 명칭이 있으며, 셋째 자음의 이름이 2음절로 되어 있어, 교육상으로 어렵고 기억하기에 불편하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보다 간결한 자음의 이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한편에서 대두되기도 하고 있다.
Ⅱ. 한글 字母 排列의 變遷
「訓民正音」과「訓蒙字會」에서의 기본 字母의 배열 순서는 다음과 같다.
◀ 訓民正音 | ||||||
ㄱㅋㆁ | ㄷㅌㄴ | ㅂㅍㅁ | ㅈㅊㅅ | ㆆㅎㅇ | ㄹ | ㅿ |
牙 | 舌 | 唇 | 齒 | 喉 | 半舌 | 半齒 |
ㆍ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ㅕ ㅠ ㅕ |
◀ 訓蒙字會 | |||||||||||
ㄱ | ㄴㄷ | ㄹ | ㅁㅂ | ㅅ | ㆁ | ㅋ | ㅌ | ㅍ | ㅈㅊ | ㅿ | ㅇㅎ |
牙 | 舌 | 半舌 | 唇 | 齒 | (喉) | 牙 | 舌 | 唇 | 齒 | 半齒 | 喉 |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ㆍ |
<표 3>에 의해서 우리는「訓民正音」과「訓蒙字會」의 字母의 배열은 그것이 '牙舌唇喉'의 골격을 지키고 있는 점만 비슷할 뿐, 나머지 부분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訓蒙字會」가 말해 주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正音 창제 이래로 형성되어 온 전통에 깊이 관련이 되어 있음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는데, 그렇다면 字母의 배열은 그것과 무슨 관련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우선 母音의 배열은 申叔舟의「四聲通攷」의 凡例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四聲通攷」의 凡例에서 "如中聲ㅏㅑㅓㅕ張口之字, 則初聲所發之口不變, ㅗㅛㅜㅠ縮口之字, 則初聲所發之舌不變"에서 母音이 'ㅏㅑㅓㅕㅗㅛㅜㅠ'의 순으로 배열이 되고 있는데, 기본자인 'ㆍㅡㅣ'를 제외하고는「訓蒙字會」와 그 순서가 같다. 그런데 이 배열은「四聲通攷」 凡例에 언급되어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開口度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母音의 배열 순서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ㆍ'를 없애 버린 것을 제외하고는 그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 되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子音은 <표 3>에 의하면「訓民正音」과「訓蒙字會」의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訓蒙字會」의 子音 배열을 살펴보면 앞의 8자는 初終聲通用字이고 뒤의 8자는 初聲獨用字임을 알 수 있다. 이 배열은 解例의 文字 사용의 방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訓蒙字會」와「訓民正音」의 자음의 배열의 연관성은 여기에 있다.
解例本에서 'ㄱㆁㄷㄴㅂㅁㅅㄹ' 이상 8자를 通用字로 쓸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표 3>「訓民正音」자음의 배열에서 이를 앞으로 옮겨 다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ㄱㆁㄷㄴㅂㅁㅅㄹ | ㅋㅌㅍㅈㅊㆆㅎㅇㅿ |
通用字 | 獨用字 |
<표 4>의 배열은 글자 운용에 관계된 실용적인 것으로 이것이 이후에 교육에 채택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訓蒙字會」의 배열도 이런 전통과 관계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표 4>와 <표 3>의「訓蒙字會」의 자음의 배열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相異點을 발견할 수 있다.
「訓民正音」과「訓蒙字會」의 자음 배열에 변화가 생긴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ㆁ'이 끝으로 간 것은 당시 사람들이 'ㆁ'과 'ㅇ'을 비슷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를 喉音의 위치에 옮긴 것이다.「訓蒙字會」에서 'ㆁ'을 '이웅'이라고 한 것도 이런 혼동의 결과이다.
둘째, 'ㄴ, ㅁ'이 'ㄷ, ㅂ'앞으로 온 것은 기본 글자를 앞으로 보내려고 한 것으로 獨用字 'ㅇ'이 'ㅎ' 앞에 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셋째, 'ㄹ'이 'ㄷ' 뒤에 온 것은 'ㄹ'이 半舌音이지만 舌音과 그 類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半齒音'ㅿ'이 'ㅊ' 뒤에 온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넷째, 'ㆆ'은 正音 창제 당시부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말 표기에 쓰이지 않고, 곧 폐기되었으며 이런 점에서「訓蒙字會」에서 'ㆆ'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정음 창제 이후 약 80여 년간 여러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記錄의 과정에서 崔世珍의 독창이 가미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부인할 수는 없다.
「訓蒙字會」이후 자음의 배열은 다소 변화가 있어, 'ㆁ', 'ㅿ'이 없어지고 'ㅈ', 'ㅊ'이 'ㅋ'의 앞으로 오게 되었다. 이중 'ㅿ'은 음가의 소실로 없어진 것이며 'ㆁ'은 혼동되던 'ㅇ'과'ㆁ'이 원래의 'ㆁ'위치로 통합되어 글자로는 'ㅇ'이 남게 된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ㅈ, ㅊ'이 왜 'ㅋ'앞으로 오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洪啓禧의「三韻聲彙」(1751)에는 당시 일반인들에게 쓰이던 反切에 의해 자음의 순서를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ㅌㅋㅍㅎ'로 하고 있는데, 이에 의해 당시에는 'ㅈㅊ'이 'ㅋ' 앞으로 오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단 'ㅌㅋ'으로 배열된 것은 잘못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된 이유로는 당시 獨用字는 'ㅈㅊㅋㅌㅍㅎ'의 6자인데 이중 'ㅈ'만이 全淸이고 나머지 'ㅋ, ㅌ, ㅍ, ㅊ, ㅎ'은 次淸이어서 우선적으로 金淸字를 次淸字 앞으로 가져가 'ㅈㅋㅌㅍㅊㅎ'으로 배열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같은 齒音인 'ㅈ'과 'ㅊ'이 갈라져 있음에 대해 이를 시정하고자 하여 'ㅊ'을 'ㅈ'뒤에 가져간 결과로 생각된다.
이후 池錫永의「新訂國文」(1905)에서 'ㅌ'과 'ㅋ'의 순서가 바뀌어 현재와 동일하게 자음이 배열되고 있다.
이와 같이 당시 민간에 널리 채택되어 쓰이던 한글의 배열은 그 명칭과 함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채택되어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