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문자와 만주 문자
성 백 인 / (서울대 교수, 언어학)
몽고 문자와 만주 문자는 모두 독창적으로 창제된 문자가 아니라 인접한 민족들이 사용하는 문자를 차용한 문자들이다. 만주 문자는 몽고 문자를 차용한 것이고, 몽고 문자는 위구르 문자를 차용한 것이다. 고대 토이기족의 한 분파인 위구르족이 사용하던 위구르 문자도 역시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소그드 문자를 차용한 것이다. 소그드족은 고대 이란족의 한 분파이다. 그렇게 그 계보를 찾아 올라가면 그 시원은 로마자나 씨릴 문자의 시원과 동일한 고대 문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소그드 문자는 아람 문자로, 아람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로, 이는 또 시나이 문자로, 시나이 문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로 그 계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몽고 문자
몽고족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13세기 초엽 칭기즈 칸 시대에 위구르 문자를 차용하여 몽고 말을 적기 시작하였다. 이 차용 문자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25년경에 세운 칭기즈 칸의 조카, 이숭거(Yisüngge)의 기념비이다. 이 위구르 문자에 기원을 둔 몽고 문자는 몽고에 들어와 사용되면서 점차 글자의 모양이 변개되었고, 몽고어를 적는 데 또는 외래어를 적는 데 필요한 새로운 문자가 추가되어 문자의 수도 늘게 되었다.
몽고 문자는 크게 위구르식 몽고 문자와 현대 몽고 문자로 구분한다. 위구르 문자의 자형상의 특징이 대체로 유지되는 16세기 말, 또는 문헌에 따라서는 17세기 초까지의 몽고 문자를 위구르식 몽고자라 하고, 문자의 자형이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표기법도 상당히 변모되는 17세기 초 이후의 문자를 현대 몽고자라 한다. 현대 몽고자란 17∼18세기의 고전기로부터 현대까지의 문자를 통틀어 이르는 것이다.
1648년에는 몽고어 서부 방언인 오이라트 방언을 표기하기 위하여, 자야판디타(Zaya Pandita, 札亞班迪達)라는 사람이 몽고 문자를 개량하여, 오이라트 방언의 음소를 보다 잘 구별하여 적을 수 있는 토도(todo, 托忒또는 陶德)라고 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이 토도 문자는 몽고자의 세력에 밀리면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외몽고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1944년에, 그리고 내몽고에 속하는 지역에서는 1984년에 공식적으로는 그 명맥이 끊어졌다.
元나라 世祖 至元 6년(1269)에는 八思巴라는 학덕이 높은 승려가 세조의 명을 받아, 티베트 문자를 개량하여 파스파(P'ags-pa, 八思巴)문자라고 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문자는 元의 國書로 만들어진 것인데 元의 세력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언어 즉 몽고어, 한어(漢語), 티베트어, 토이기어 등을 두루 잘 적을 수 있도록 고안된 표음력이 뛰어난 문자였다. 그러나 元나라가 망하자, 위구르식의 몽고 문자의 세력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비문이나 고문서로 남아 전하고 있는데, 파스파 문자는 그 뛰어난 표음력으로 하여 당시의 몽고어는 물론 동양의 여러 나라의 옛 언어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위구르계의 몽고 문자는 오늘날에는 내몽고 자치구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외몽고 즉 몽고인민공화국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1944년에 위구르계의 몽고 문자를 버리고, 씨릴 문자를 차용하여 새 몽고 문자를 만들어 가지고 할하 방언에 기초를 둔 새로운 문어를 제정하였다.
위구르 계통의 몽고 문자는 위구르식 몽고자와 현대 몽고자로 구분되고 있음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위구르식 몽고자나 현대 몽고자나 그 자형과 표기 체계가 일정하게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기서 그 변천 과정을 모두 나열 설명할 수는 없다. 현대 몽고자만 해도 인쇄체와 필사체가 다르고, 인쇄체는 또 판본체와 활자체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필사체는 또 행서체와 초서체로 구별된다. 그러나 변별 기능을 하는 글자의 기본적 특징에 있어서는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고전기 현대 몽고자의 인쇄체를 중심으로 몽고 문자의 기본적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다음 <문자표 1>은 Poppe(1965)의 Introduction to Altaic Linguistics에서 옮긴 것인데, 이는 17∼18세기 고전기 몽고 문어에 보이는 대표적인 현대 몽고자이다. <문자표 2>와 <문자표 3>은 道布 편저(1983),《蒙古語簡志》에서 옮긴 것인데, 2는 청대 몽고 문헌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흔히 쓰이는 현대 몽고자이고, 3은 위구르식 몽고자이다.
몽고 문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행을 이어 나간다. 그리고 각 글자는 어두, 어중, 어말의 위치에 따라 자형이 달라지며, 또 자음의 경우 뒤따르는 모음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다른 자음 앞에 놓이는 경우 자형이 달라지는 수가 있다. 그 밖에 어말에서 격 표시 어미와 같은 몇 가지 부가 성분은 위 낱말에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쓰는 일이 있다. 이를 어말 독립형이라 부른다. 인쇄의 편의상 표1의 순서에 따라 몇 글자의 특징을 설명하기로 한다.
[몽고 문자표 1] (고전기) 현대 몽고자 표
[몽고 문자표 2] 현대 몽고자 표
[문자표 3] 위구르식 몽고자 표
구별된다. e자는 자형상으로는 모든 모음자의 기본이 된다. 즉 어두에서는 모든 모음자는 e자와 같이 좌로 90°각도로 그은 획에서 시작된다. 자형상으로는 a자는 e자에 같은 모양의 한 획을 더하고, i자는 사선을 더하고, o,u자는 좌측으로 동그라미를 더하고 , 자는 o,u자 밑에 사선을 더하는 모양이 된다. 결국 모음자들의 기본적인 획은 종선에서 좌로 긋는 90°각도의 획과, 45°각도의 사획과, 동그라미가 되는 셈이다.
이 밖에 현대 몽고자에는 17세기 이래 티베트어 어음, 범어 어음, 한어 어음을 적기 위하여 만든 갈릭자(galik)라고 하는 특수 문자가 있다. 문자 표 2에 문자 수가 늘어난 것은 한어 어음 표기용 갈릭자 몇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앞에 보인 문자표 1을 중심으로 몽고 문자의 기본적 특징을 설명하였다. 그 기본적 변별 특징만을 보면 위구르식 몽고자와 현대 몽고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몽고 문자를 위 표에서 본 바와 같이 글자를 자음·모음으로 나누어 낱소리글자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언제부터 나타나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것은 몽고 사람들의 전통적 이해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내몽고에서 나온 몽고어학서들 속에서도 표 2와 같은 분석적인 문자표가 보이지만, 몽고 문자를 그와 같이 분석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서양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몽고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몽고 문자를 十二 字頭를 통해서 배워 왔고, 각 자두에 제시된 음절 단위의 문자를 한 글자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은 문자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몽고 문자는 음소 문자라고 하지만, 음소 단위로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특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몽고 문어는, 그 문자들이 음소 문자라고는 하지만 완전한 음소 문자는 아니어서, 몽고 문자만을 알아 가지고서는 읽을 수 없는 글이다. 몽고말을 잘 알아야 읽을 수 있고, 로마자로 전사할 수도 있다. 몽고어의 옛 문어(또는 書面語)는 물론 오늘날 몽고자로 쓰인 문어도 그것을 읽거나 로마자로 옮기자면 여러 몽고어 방언의 현대 어음을 토대로 하여 어음을 구별하는 도리밖에 없다.
옛 몽고 문어를 로마자로 전사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몽고 문어를 전자 방식으로 로마자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따라서 옛 문어를 로마자로 전사하기 위해서는 그 표기가 어떠한 어음을 적은 것인가를 알아내야만 한다. 현대 여러 몽고어 방언들을 비교하여 옛 어음을 재구하는 방법을 택하든가, 그 당시 다른 문자로 기록된 옛 몽고어 기록을 토대로 하여 어음을 추정하는 방법을 통해서 로마자로 전사하는 도리밖에 없다. 이와 같이 옛 몽고 문어의 로마자 전사는 몽고어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학자들마다 로마자 방식이 다를 수 있는 일은 이러한 사정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 때문에 현대 몽고어를 로마자로 적고자 하는 경우에는 문어의 로마자 전사가 아닌 현대 몽고어의 음운 표기나 음성 표기를 하는 일이 있다. 외몽고에서 몽고자를 버리고 씨릴 문자를 채택하면서 할하 방언을 토대로 완전히 새 정서법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몽고에서도 일반 서적에서는 전통적 몽고 문어를 사용하는 한편, 어학서에서는 문어(서면어)의 로마자 전사 외에, 현대어의 음운 표기 방식으로 로마자로 적는 현대 몽고어의 표기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2. 만주 문자
몽고 문자를 차용하여 만주어를 적기 시작한 것은 1599년의 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주실록에 의하면, 뒤에 청나라 태조가 된 누르하치는 가가이 자르구치와 어르더니 박시라는 두 신하에게, 몽고 문자로 만주 말을 적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그 방법을 일러주며, 그들을 시켜 만주어의 표기법을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몽고 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여 만주 말을 적은 초기의 만주자를 無圈点 滿州字라 하고, 그것으로 적은 만문을 無圈点字 滿文(또는 舊滿文, 또는 老滿文)이라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권점자의 기록은 1610년대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檔案들이다. 초기 당안들 가운데는 1607년의 일을 적은 당안이 연대상으로는 가장 이른 것이지만, 이 당안이 실제로 필사된 연대는 1920년 전후, 또는 천총 연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권점 만주자는, 1632년에 청 태종의 명을 받은 다하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만주 말을 적는데 적합한 문자로 개량되었다. 즉 무권점자에 點과 圈을 가하여 a와 e,o,와 u,t와 d, 그리고 k와 g와 h를 구별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새 문자를 有圈點 滿洲字라 한다. 그리고 이 새 문자로 적은 만문을 有圈點字 滿文 또는 新滿文이라 한다.
새로운 만주자 즉 유권점 만주자가 제정 공포된 것은 정확히는 1632년 3월 7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당시의 기록인 舊滿洲檔을 보면 3월 7일 전후의 표기가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나 3월 7일을 경계로 하여 舊滿文과 新滿文의 모든 특징이 획연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1632년 3월 7일이 분기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1632년을 전후로 상당 기간의 과도적인 문자 사용의 시기가 나타난다. 즉 1632년 이전의 당안에도 간혹 어음을 구별하기 위하여 점을 가한 곳이 보이고, 1632년 이후의 당안에도 점의 누락은 물론 문자 이용에 있어서도 무권점자적인 특징이 부분적으로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그 당시의 문서들을 살펴보면, 1632년의 문자 개량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축적된 개량의 방안들이 1632년에 정리 공포된 것으로 보인다. 또 그 뒤에도 부분적인 정리가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1640년대에 접어들면 기본적인 문자의 자형이나 그 이용 방법에 있어서는 완전히 정비된 유권점자 만문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권점자 만문의 규범적인 정서법과 규범적인 어형은 御製淸文鑑(1708년 序)을 거쳐 御製增訂淸文鑑(1771년 序)에 이르러서야 확정된다. 따라서 그간의 유권점자 만문에는 적지 않은 표기법상의 유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정서법의 문제이고, 기본적으로 어떠한 어음을 어떠한 자형의 문자로 적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1640년대에 확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무권점자 만문은 1599년부터 1632년까지 약 30년가량의 기간 동안 사용된 것이지만, 몇 문자의 사용에 있어서는 몇 단계로 단계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가장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무권점자의 표와, 정비된 유권점자의 표를 제시하고, 유권점자 표를 중심으로 몇 가지 특징만을 설명하기로 한다. 각 자형의 기본적인 특징은 몽고 문자와 같은 것이므로 생략하고, 인쇄의 편의상 번호순으로 표를 참조하면서 설명하기로 한다.
만주 문자도 몽고 문자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며 좌에서 우로 행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두, 어중, 어말의 위치에 따라 글자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만주 사람들도, 몽고의 경우와 같이, 뒤에 보인 바와 같은 분석적인 자모표가 아닌 음절 단위의 문자표인 十二 字頭를 통해서 문자를 익혔으며, 문자의 단위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문자의 개량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문자의 성격이 완전한 음소 단위의 문자가 아니라 음절 문자적인 속성을 일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만주 문자표 1] 초기 무권점 만주자
[만주 문자표 2] 유권점 만주자
예를 들면 ta와 te는 a와 e는 모양이 같고 t자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즉 자음의 모양에 따라 ta와 te가 구별되는 것이다. ta와 te의 우변에 점을 가하면 da,de가 된다. 즉 우변의 점은 모음 a와 e, o와 u를 구별하는 데도 쓰이고, 자음 k와 g, t와 d를 구별하는 데도 쓰인다.
[ 만문 특수 문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