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산업화와 글자꼴


김 진 평 / (서울여대, 산업 미술학)

Ⅰ. 머리말
    현대는 대량 전달의 시대이다. 많은 양의 각종 정보가 인쇄 매체와 전파 매체 혹은 영상 매체를 타고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매체 중 특히 시각에 의한 매체에서 정보 전달의 많은 부분이 글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글자의 효율적 사용이야말로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좌우한다고 할 만하다. 이러한 글자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서도 용도에 따라 적절한 형태와 기능을 지닌 글자(여기서는 산업화된 글자)가 골고루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는 바로 글자의 산업화가 잘 이루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세계 여러 민족의 고유 글자 중에서 아주 독특하고 과학적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 사용한 지 이미 53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처럼 중요한 글자의 산업화에 있어서는 한자 문화권의 일본이나 알파벳 문화권의 여러 선진국들의 수준에 이르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그동안 한글의 어문학적 측면의 연구는 많은 진전이 있어 왔으나, 산업화에 따른 한글의 적응성이나 가독성 및 한글 활자체의 특성이나 인지도(認知度) 등 실제 산업화 단계에 필요한 글자꼴의 연구와 개발이 매우 소홀히 다루어져 온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글자 산업의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면에 눈을 돌려, 자국(自國)의 글자꼴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를 기초로 한 새로운 활자체의 개발을 통해 글자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놓았다. 물론 한 나라의 어느 한 분야만이 유독 발전될 수는 없으며 글자 산업의 발전도 공업 기술과 산업 및 경제와 문화 전반에 걸친 발전에 힘입는 것은 틀림없다. 선진국들의 글자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중반의 기간 동안, 우리는 글자 산업의 자생적(自生的) 기술 축적과 연구 개발이 불가능했던, 일제 침략과 6·25동란의 가장 불행했던 시기를 보냈다.
    비록 뒤늦기는 했으나, 우리도 산업화에 적합하고 기능적이며 가독성과 미적 수준이 높은 한글의 글자꼴에 대한 연구가 하루 빨리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기초로 새로운 활자체가 계속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혁신이 하루가 다르게 진행되는 현대에 있어서 이러한 글자꼴의 연구와 개발은 더욱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발달된 공업 기술이나 하드웨어(hard ware)는 선진국에서 직접 도입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의 글자꼴에 관한 연구나 소프트웨어(soft ware)는 다른 나라에서 들여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한글의 산업화 과정과 그와 관련되는 글자꼴의 여러 특성들을 파악해 봄으로써 보다 바람직한 한글 산업화의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Ⅱ. 한글의 산업화 과정

1. 고활자 시대
    글자의 산업화 과정의 시초는 활자와 그에 의한 인쇄술의 발명이라 할 수 있다. 1440년 독일의 구텐베르그(Gutenberg)가 유럽에서는 최초로 주조 활자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였고 이후 활자체의 개발과 인쇄술의 개량이 계속 이루어져 갔다. 그러나 이보다 약 200년이 앞선 1241년에 이미 금속활자로 서적을 간행한 기록이 우리에게 남아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되고 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개량은, 이후 세종조(1419-1450)에 이르러 가장 활발했으며 특히 한글 고활자(古活字)가 이때부터 주조(鑄造)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당시의 가장 유명한 서예가가 활자 주조의 원도(原圖)에 직접 참여하거나 중국 명필가의 서체를 원도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가장 먼저 금속활자와 인쇄술이 발명되었지만, 유럽의 활자와 인쇄술이 계속적으로 발전된 것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세종조 이후 더 이상 기술 혁신이나 활자체의 개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우리의 고활자는 결국 양반이라는 일부 계층과의 관련하에서만 발달하였고, 서양은 새로 자라는 시민층이 기업인이 되어 상업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사회 여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활자와 인쇄술은 많은 부분이 임진왜란(壬辰倭亂)중에 일본에 이전되고 망실(忘失)됨으로써 그 이후는 오히려 기술적 퇴보의 기미를 띠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금속활자와 인쇄술은 제일 먼저 중국으로, 다음에는 일본에 이전된 이후 19세기 말에 이르는 동안 아무런 기술적 진전 없이 그대로 답습되어 왔다.
2. 신활자의 도입기
    근대식 연활자(鉛活字)와 활판 인쇄술은 1883년(고종 20년) 10월 박문국(博文局)과 광인사공소 (廣印社公所)가 설립되면서 처음 도입되었다. 이 해 박문국에서 한자 활자로만 된 「한성순보」(漢城旬報)가 발행되었으나 다음 해의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박문국이 파괴되어 한때 중단되었고 1886년 박문국이 재건되면서 국한자가 섞인 「한성주보」(漢城周報)가 다시 발행되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광인사에서 먼저 한글 연활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연활자와 활판 인쇄기는 일본에서 도입되었으며 한글 활자도 일본에서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881년경부터 구교(舊敎)에서는 조선 교구(朝鮮敎區)의 시설로 일본 나가사키(長畸)에 설립된 성서 활판소(聖書活版所)를 통해 한글판 성서 출판이 이루어졌고, 신교(新敎)에서는 1891년에 배재학당 내에 인쇄소를 설치하여 성서 발간에 주력하여 신활자 보급에 기여하였다. 1887년에 순 한글판 신약성서인「예수성교젼서」가 발행되었는데 이 책의 한글 활자꼴은 1886년의 「한성주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1890년대부터는 민간 신문사와 인쇄 공장이 출현하였으나 이때의 신활자도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이즈음 정부 인쇄국에서 활자 개혁을 실시하여 활자의 규격은 어느 정도 표준화되었으나 활자체 개량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활자체 개량의 첫 시도는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의한 활자체의 공모(公募)로 이루어졌다. 현상 공모의 결과 이원모(李源模)의 글씨본이 채택되고 이를 일본에서 조각해서 한글 활자의 이른바 명조체(明朝體)가 등장하여 창간 13주년 기념일인 1933년 4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1938년 이후부터 일제(日帝)의 우리말과 글자 사용 금지 조치에 따라 더 이상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후 1945년의 해방과 1950년의 6·25동란이 이어지는 혼돈의 시기 동안 활자 산업의 진전은 거의 없었다. 이 시기의 한글 활자는 초전활판소(初田活版所)의 박경서(朴景緖)의 장인적(匠人的) 노력과 탁월한 활자 조각 기술에 크게 힘입었으며 그의 활자체는 이후 1957년경까지 사용되었다.
3. 활자와 사진 식자 산업
    6·25동란이후 1954년 운크라(UNKRA: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의 원조에 의해 벤튼(Benton) 자모 조각기가 국내에 도입됨으로써, 같은 크기로 일일이 활자 종자(鍾字)를 손으로 다듬던 종래의 전태 자모(電胎字母)는 자모 조각기에 의해 기계화된 조각 자모(彫刻字母)로 바뀌게 되어 활자 제작 기술이 크게 개혁되었고 이에 따른 활자체의 원도(原圖)개발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이 벤튼 자모 조각기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초등 국정 교과서 제작 회사인 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大韓文敎書籍株式會社)에 도입되었고 이어서 동아출판사에도 설치되어 활자가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활자체의 원도 개발은 국정교과서 회사의 박정래(朴禎來), 동아출판사의 최정호(崔正浩)의 노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후에도 이들은 활자체 개발을 계속하였다. 이 활자체의 아름다움은 국내 출판사들의 수요를 크게 자극하였고, 여기서 제작된 활자체는 평화당, 삼화, 보진재 등의 인쇄소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동아, 중앙, 조선 등 일간 신문사에서도 이 활자를 도입하거나 자체 개발, 제작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이제껏 언급한 활자는 주조 활자(hot type)인데 반하여 한편 새로운 사진 식자(cold type)의 방식이 1929년 일본의 인쇄인 모리자와(森澤信夫)의 착상과 광학 박사 이시이(石井茂吉)의 협력으로 실용화되었다. 영자 알파벳 사진 식자기는 이미 1896년의 첫 시도 이후 여러 가지 기계가 실용화되고 있었으나 한자와 일본 가나(假名) 글자는 영자 알파벳과 달리 글자의 수량이 방대하고 정사각형의 글자 틀을 기준으로 하므로 영자 알파벳 사진 식자기와는 다른 기계 구조가 연구되어야 했다. 이 같은 일본제 사진 식자기가 국내에 첫 도입된 것은 역시 1954년 국정교과서주식회사에서 도입한 3대의 사진 식자기였다. 이후 사진 식자기의 수요가 점차 늘어 갔으며 이에 따라 일본의 3개 회사의 대리점이 국내에 진출하여 사진 식자기와 글자 자판(字版)의 판매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의 한글 자판은 앞서 언급한 두 사람에게서 원도를 구입하여 일본에서 제작한 후에 다시 국내에 기계와 함께 수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현재 쓰이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진 식자체는 일본에서 제작된 자판, 혹은 그 복사판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국내 기술진에 의해 사진 식자기나 자판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대체로 사진 식자기는 수동 사식기(手動寫植機)에서 전자 제어 사식기, 그리고 전산(computer) 사식기로 발전되고 있다. 현재 국내 사식기의 약 90%가 수동 사식기지만 일본에서 점차 전자 제어 사식기로 대체되고 있으며 수소의 전산 사식기가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다.
4. 사무기기와 컴퓨터 산업
    글자의 산업에 사무기기 분야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된 것은 타자기(typewriter)의 발명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글씨를 쓰듯이 종이 위에 보다 빠르고 쉽게 글자를 만들어 내려는 의도에서 타자기가 발명됨으로써 글자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일의 능률이 급격히 올라가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발명된 영자 타자기 원리를 기본으로 해서 1920년 재미교포 이원익이 개발한 최초의 한글 타자기 이래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 기계적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글자판 자모(字母)의 벌 수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가장 널리 사용된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1) 3벌식 공병우 타자기
1948년에 특허 등록된 안과 의사 공병우 박사에 의해 개발되어 최초로 널리 대중화된 타자기이다. 첫 닿자 1벌, 홀자 1벌, 받침 닿자 1벌로 이루어져서 손으로 쓰는 순서대로 글자가 찍혀 나오도록 하여 모아쓰기의 특징을 살리고, 타자 동작의 효율성과 연습의 용이성이 있어서 속도가 빠르고 능률적인 장점이 있다. 그런데 글자꼴이 이른바 네모 틀에 크게 벗어남으로 해서 글자꼴로서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
2) 5벌식 김동훈 타자기
1950년에 김동훈에 의해 제작되어 1958년에 상품화 된 타자기로서 첫 닿자 2벌, 홀자 2벌, 받침 닿자 1벌로 이루어져 자판이 복잡하여 배우고 찍기가 까다롭고 비능률적이며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다. 그 반면 인쇄활자와 비슷한 글자꼴을 이루어서 글자꼴로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3) 4벌식 표준 자판 타자기
1969년 7월 28일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로 공포하여 모든 한글 타자기의 사용을 4벌식 표준 자판으로 통일하도록 하였다. 이 표준 자판 타자기는 첫 닿자 1벌, 홀자 2벌, 받침 닿자 1벌로 이루어져 앞서 언급한 대표적인 두 가지 형태의 특징을 절충한 듯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표준 자판을 기본으로 국내의 사무기기 회사들은 외국과의 기술 합작, 혹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기능의 한글 타자기를 계속 개발하여 갔다. 바(bar) 타자기는 전자볼(ball) 타자기로, 다시 전자 데이지휠(daisy wheel) 타자기로 바뀌어서 활자체를 마음대로 바꾸어 타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컴퓨터 칩(chip)이 내장되어 정보의 기억과 편집 기능까지 가능하게 되고 각종 워드프로세서(word processor) 컴퓨터가 등장, 글자의 산업화에 컴퓨터가 크게 기여하기 시작하였다.
4) 2벌식 개정 표준 자판 타자기
정보 처리용 건반 배열에 의한 컴퓨터 및 전자식 타자기, 워드프로세서 등이 널리 보급, 사용됨에 따라 이들의 자판 배열이 종래 사용되던 4벌식 표준 자판 타자기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타자 기술의 연계 활용이 제한되는 등 사무 능률 향상에 많은 지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래서 1983년 8월 26일 국무총리 지시 제21호에 의해 이들 서로 다른 자판을 '공업 진흥 청고시 정보 처리용 건반 배열'로 통일하도록 하였다. 이 건반(key board) 배열은 닿자 1벌, 홀자 1벌의 2벌식이지만 출력(出力)은 4벌식으로 되도록 전자식 기억 장치를 갖도록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한글의 산업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는 특징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고활자 시대에서 신활자의 도입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활자의 독자적인 설계나 제조 기술의 축적이 시도되지 않았다.
2) 특히 사진 식자 산업에 대기업의 투자와 독자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수입에만 의존하였다.
3) 타자기의 글자꼴에서 쪽자(닿자와 홀자)의 벌수가 간단할수록, 활자나 사진 식자의 글자꼴에서 벗어남으로 벌 수와 글자꼴에 대한 논쟁이 계속 되었다.

Ⅲ. 산업화의 글자꼴
    한글의 산업화 과정에서 살펴본 바, 대체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활자와 사진 식자의 모든 운용 시스템이 한글의 적성과 우리의 글자 생활 패턴을 충분히 고려하여 만들어 낸 것이라기 보다는, 결국 이웃나라의 설비와 운용 시스템, 심지어 글자체의 이름까지(명조, 고딕, 나루 등……)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또한 활자 방식에서 사진 식자 방식으로 활자의 판짜기 방법이 점차 바뀌어 가는 경향이 있고, 사진 식자의 식자체 개발이 활자체보다는 쉬운 장점이 있음에도 대규모의 투자에 의한 독자적인 국내의 기술 축적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글자 산업화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인쇄, 출판, 나아가서 문화 전반에 걸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컴퓨터가 발달되어 정보 처리용 글자의 개발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으나 그 기본이 되는 활자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바탕이 이루어져 있지 못한 것도 이러한 낙후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한글의 산업화에서의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러한 활자 사진 식자 분야가 아니고 사무기기 분야에서의 수동 기계식 한글 타자기 발전 과정에서였다. 대표적인 타자기의 예에서 발견되듯이 타자기의 자판 배열을 단순하게 할수록 신속하고 능률적이 되지만 반면에 타자된 글자꼴은 일반에게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일반 사람들이 국민학교 이래로 배우고 읽어오던 한글의 글자꼴은 글자마다 비슷한 면적을 이루도록 균형을 잡은 활자나 사진 식자인데 반하여 타자기 글자꼴은 같은 크기의 닿자와 홀자를 모아씀에 따라 글자의 면적과 균형이 다르기 때문에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산업화된 글자꼴의 두 가지 유형이 제기되었는데, 활자, 사진 식자와 같이 소리마디별로 닿자, 홀자를 묶어서 균형을 만든 옹근 활자와 타자기와 같이 쪽자(닿자, 홀자)별로 나뉘어 그때그때 모아져서 글자를 이루는 모임 활자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산업화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본다.
    먼저 옹근 활자의 형태로 활자체를 개발할 때, 이러한 글자꼴의 균형에 익숙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는 있으나 개발해야 할 활자 수는 한글이 대략 2300자 정도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글자 생활에는 한자도 있고 그것도 상용 한자 1800자(1972년 2월)만 쓰이는 것이 아니므로 빈도가 낮게 쓰이는 한자 모두를 합치면 약 3600자가 갖추어져야 되므로 한글, 한자 합치면 5900자라는 엄청난 활자를 만들어야 비로소 1종류의 활자체가 개발된다. 대소문자 합해서 52자뿐인 영자 알파벳의 경우 다양한 활자체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것을 볼 때, 활자 수의 방대함이 한글 산업화의 가장 큰 어려움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모임 활자의 원리를 응용하는 방법이 제기될 수 있다. 이때에 타자기 글자에서 보듯이 쪽자의 벌 수를 너무 단순하게 설정한다면 글자꼴에서 문제가 되므로 쪽자의 벌 수와 글자꼴의 문제를 조화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자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한자를 자주 사용하는 일본에서도 상용 한자 1,945자(1981년 10월 1일 확정) 안에서만 철저하게 사용하는 것을 볼 때 한자 사용에 대한 뚜렷한 원칙의 필요성이 느껴지게 된다. 영자 알파벳의 경우와 달리 우리와 같이 한자를 쓰는 일본 글자의 산업화의 경우에도 일본의 가나(假名) 142자와 한자 약 2,110자를 합쳐 약 2,250자로 활발하게 활자체가 개발되고 있다.
    한글의 산업화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은 위에서 언급된 것 외의 많은 문제가 있으나, 이러한 배경을 요약하여 한글의 산업화를 바람직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관련 분야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거시적(巨視的)이며 미래지향적인 확고한 글자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이러한 글자 정책은 나라에 국어 심의회와 같은 기구를 두어 한자 사용에 대한 원칙이나 한자 약자(略字)표기에 대한 원칙은 물론 한글의 외래어 표기나 각종 표기법 등, 현재의 글자 사용에 대한 원칙에서부터 궁극적으로 글자 사용을 더욱 합리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하여 그 결과를 검토, 반영, 시행토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관공소의 각종 문서와 신문, 잡지 등 언론, 출판, 인쇄소와 일반 사회, 개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이를 준수하도록 하며, 또 학교 교육에 반영시킴으로써 더욱 복잡해져 가는 현대 정보사회 속의 글자 생활에 혼란을 주지 않고 점진적으로 합리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꼴에 대한 깊은 연구와 그에 따른 글자꼴의 설계와 글자체 개발이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관련 학계(시각 디자인 분야, 전자 공학 분야, 서지학, 국어학 혹은 조형 심리학 분야 등)와 산업계(건축, 포장, 광고, 언론, 출판, 인쇄, 사무기기, 컴퓨터 회사 등)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연구 결과가 실제 산업화에 반영되어 기여할 수 있고, 산업화 과정의 글자꼴과 사람이 느끼는 반응에 대한 문제점이 다시 연구 대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자꼴 연구에서는 이론상으로 아무리 훌륭한 가설을 세운다 해도 연구의 결과가 산업화되어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증명이 되어야만 객관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자꼴에 대한 연구가 산업계와 공동으로 진행된다면 실질적인 성과가 기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연구 대상에 한글은 물론 우리가 아직 사용하고 있는 한자의 글자꼴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이제껏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연구 개발한 한자 활자를 사용해 왔다. 한자를 앞으로 사용할 수도, 사용 안 할 수도 없는 어중간한 글자로 보아서, 역시 연구 대상으로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글자꼴로 백안시한다면, 당장 글자 생활에서 한자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전히 한자에 관한 한 다른 나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후진성을 면키 어렵게 될 것이다.
    한글의 글자꼴에 대한 연구의 방향도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역시 산업화에 관련된 가장 큰 문제는 쪽자(닿자와 홀자)의 표준화와 그에 따른 글자꼴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산업화에 유리한 방향은 한글의 쪽자를 될수록 간단하게 표준화하는 것이지만 그럴수록 그 글자꼴은 일반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가는 한글의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 성격의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의 연구의 초점은 이러한 한글의 이원성(二元性)을 조화시키는 데에 두어야 할 것이며 어느 한 쪽 면을 부정하거나 무시해서는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원성의 어느 한 쪽 면도 모두 취약점을 갖고 있는데, 이는 한글의 글자꼴이 세로쓰기를 기본으로 만들어 졌으며 활자꼴이 정해질 때까지 세로로 씌어져 옴으로써 글자꼴이 진화되어 온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상에 대한 타당성 있는 한글 글자꼴의 연구 결과들이 한글 산업화에 계속 적용된다면 이를 신중히 검토하여 한글 교육과 일반 글씨 생활에서도 반영시켜 나감으로써 점진적으로 글자꼴을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세 번째로, 새로 개발한 글자체는 저작권법(著作權法)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글자는 만인 공유(萬人共有)의 문화적 재산이다. 그러나 그 글자를 연구 개발하여 특정한 미적, 기능적 성격을 갖는 글자체를 만들어 내었을 때 그것은 저작물로서, 만든 사람의 작품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글자체의 소유권이 명확하게 인정되어 그에 응한 인세(印稅)가 반드시 지불됨으로써 매년 글자체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글자체에 대한 법적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만들어 낸 글자체라도 하루아침에 복제되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적 보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정에서 글자체의 개발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Ⅳ. 맺는 말
    한글의 산업화, 이는 우리에게 가장 필수적이면서도 아주 뒤떨어져 있는 당면 과제 중의 하나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한 분야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바람직한 성과를 이룰 수가 없다. 그 분야와 관련되는 모든 산업계와 학계의 노력이 모아져야 하며 그 위에 거시적인 나라의 정책이 앞설 때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한글의 산업화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한글의 산업화에 관련된 학계의 많은 연구와 관련 산업계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자체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문화적 교육적 측면의 확고한 국가의 글자 정책과, 연구 개발 의욕을 촉진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가 갖추어질 때에야 비로소 명실공히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이 우리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