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사용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수용 태도
박 갑 천 / 서울신문 논설 위원
Ⅰ
오늘의 우리는 급속하게 변천하는 국제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촌이 1일생활권이 되다시피 한 세상인 것이다. 따라서 문물의 교환 또한 예 같지 않은 상황이다. 사람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언어가 거기에서 예외로 될 수 없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문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는 물의 생리와 같다 할까. 눈이 돌게 바삐 굴러가는 이 국제화 시대에도 물론 그 이치에 변함은 없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우리의 문물을 내보내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쪽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외래어도 이 같은 문물의 유입에 따라 쓰게 된, 본적이 남의 나라가 되는 말이다. 이 외래어에 대해서는 국어의 순수성 유지라는 측면에서 배격하는 처지가 있을 수 있고, 우리가 쓰면 우리말이지 무슨 소리냐는 개방주의적인 처지도 있을 수는 있다. 그야 어쨌든 분명한 것은 외래어라는 것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그 외래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또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연히 제기되게 된다.
Ⅱ
먼저 우리가 그것을 쓰는 데 있어서의 문제점부터 생각해 보기로 한다.
Ⅲ
그러면 앞으로 외래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
첫째, 대체·여과·선별 기능이 활성화해야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미 외래어로서 상당히 굳어진 말들을 우리말로 갈음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온다. 그것은 그동안의 형편을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외래(국)어는 보초도 없는 곳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히 들어왔었다. 그것을 뒤늦게야 '국어'로 갈음하겠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사실인즉 앞뒤가 뒤바뀐 일이었다. .
'불도저'라는 힘 좋은 차가 있다. 산도 깎아내리고 강도 메우고 하는데 사람 몇십 명 몫을 척척 해낸다. 그런데 이 차를 어린이들은 '땅차'라고도 했다. 그것이다. 그 차를 들여올 때, '불도저' 아닌 '땅차'로 들여왔더라면 그 차를 부리는 사람들까지도 '땅차'라고 부를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건만 '불도저'로 되어버린 마당에서 '땅차'라고 하잔다면 당연히 일부의 거부반응도 따를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문물을 받아들이되,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따르는 말들을 먼저 우리말로 갈음하는 일부터 한다는 것은 그래서 일의 순서로 된다. 얼마 전 컴퓨터를 다루는 이가 그에 따르는 용어들을 우리말로 갈음하는 안을 내놓은 일도 있었지만, 일반화해 버린 다음에 서두르는 것보다는 사전에 그 구실을 하는 장치는 여러 모로 바람직스러운 것이다. 외래어로서 익숙해지기 전이라면 갈음된 우리말이 설사 어설픈 측면이 있더라도 밀고 나갈 수가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여건은 그렇지 못했으나 이제부터라도 그 같은 '보초'를 세워 나가는 일은 마땅히 서둘러야 한다. 그러고도 보초를 뚫고 '입국'한 말이나 이미 쓰이고 있는 말들에 대한 검토 또한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편, 상표나 상호를 정함에 있어서도 이 대체·여과·선별 기능을 거치도록 하는 조처를 취했으면 한다. 근자에 들어 지적되고 있는 '국적 불명어' 등, 우리의 국어순화 흐름에 위배되는 현상들이 적어도 더는 생겨나지 않게,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이미 나와 있는 것들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지도록 하는 계도적인 조처가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둘째, 이 같은 구실을 맡는 기구는 상설되어 현실 속에 상당한 강제력을 동반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 상설 기구는 용어의 대체·여과·선별 기능과 함께 표기의 현실적인 지도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표기 원칙이 확정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표기의 원칙이 정해진다 해도 표기의 실제면에서 보면 명확하지 못한 데가 있는 법이다. 이를 위해 명확한 표기례를 제시할 수 있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의 국제화 시대에 있어 신문·방송 등의 언론 기관은 날마다 새로운 인명·지명들을 대하게 된다. 그 용어들을 언어 지리학적인 측면, 그리고 표기의 측면에서 제때에 제대로 자문하여 줄 수 있는 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그럴 수 있을 때 같은 이름을 두고 석간과 조간, 신문과 방송이 다른 표기, 다른 발음을 해 오기도 한 폐단은 사라질 것이다. 국어 심의회 등과의 연계 아래 국어연구소가 이 같은 구실을 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Ⅳ
오늘날까지 우리 국어 정책은 원칙면에서의 흔들흔들 갈팡질팡 외에도 현실면에서는 강력한 시행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결점으로 지적된다. 가령 간판이 어떻다느니, 상품 이름이 어떻다느니 혹은 어떤 대중매체가 바람직스럽지 못한 말이나 바르지 못한 경어법을 쓴다는 둥 잘못되었다는 소리만 높았지, 그 '소리'의 옳고 그름은 판단하여 그를 바로 잡으려는 과정은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물론 이는 외래어에 관한 문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앞으로는 외래어 문제를 포함한 국어 문제는 권위 있게 원칙과 방향이 결정되면서 강력한 시행의 길도 함께 찾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런 점에서 특히 언론 기관 쪽과의 긴밀한 협조·유대 관계가 요청된다. 그들은 날마다 국어를 국민 앞에서 씀으로써 은연중 계도적인 존재로 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광범위한 계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용면이나 표기면에서 같은 이야기로 된다. 그를 위하여 대체·여과·선별의 의지가 곁들인 표기례를 수록한 '외래어집'을 만들어 대중매체나 교육 기관 등에 보내면서 그를 준행토록 하는 강력한 조처를 후속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