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語 속의 借用語
-古代國語에서 近代國語까지-


南 豊 鉉 / 檀國大 교수, 國語學

1.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부터 받아들인 單語를 借用語(borrowings) 또는 外來語(word of foreign origin)라 하고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거나 스스로 造語한 단어를 固有語(native word) 또는 土着語(indigenous word)라 한다.
    '借用'이란 말은 언어학적인 術語이지 문자 그대로 '빌려 쓴다'는 뜻은 아니다. 借用語라고 해서 그 단어를 원말에 되돌려 주어야 할 채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원말 역시 차용해 갔다고 해서 어떤 손실을 입었거나 쓰고 있던 말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언어의 말을 자기의 언어에 갖다 쓰는 것이 차용과 유사한 점이 있어서 술어로 정하여 쓸 뿐이다.
    借用語는 어떤 개인이 뽐내는 마음이 있어 자기 나라말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이 계기가 되어 들어오는 경우와 외국의 文物이 수입되면서 필요 불가결하여 따라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들어왔든 차용어는 收容된 말에 동화되게 마련이다. 借用語가 外來語와 구별되는 것은 이 동화에 있다. 즉 차용어는 동화되어 自國語가 된 것이고 외국어는 남의 나라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상용하는 '배추'와 '상치'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어가 아니라 사실은 중국어의 '白菜'와 '常菜'를 차용한 말이다. 이 단어들은 오랫동안 국어 속에서 사용되어 오면서 그 語源이 아주 잊혀져 이제는 고유어와 다름이 없을 만치 국어에 동화된 것이다. 차용어의 同化現象을 언어학적으로는 세 분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하다.
    첫째는 音韻論的인 동화이니, 영어의 'bus'가 국어에서 '버스', '뻐스'로 발음되는 것이나, 'lamp'가 '남포'로 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국어에서는 영어에서와 같이 有聲閉鏁音 [b]나 流音 [l]이 語頭에서 발음될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국어식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외국어는 音韻 體系나 音韻 法則이 自國語와 다르기 때문에 외국어에 여간 능한 사람이 아니면 정확한 외국어 발음이 어렵다. 하물며 외국어에 익숙지 않은 일반 대중에게 보급되면 자국어의 音韻 習慣에 따라 발음하게 되므로 자연 음운론적으로 동화되게 마련이다.
    둘째는 文法的인 동화이다. 미국 펜실바니아州에 사는 獨逸系 사람들은 영어의 'funny'를 'fonnig'로 'tricky'를 'tricksig'로 변화시켜 말한다고 한다. 이것은 형용사를 만드는 영어의 '-y'를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독일어의 '-ig'로 대치시킨 결과이다. 中世國語에서는 중국의 복식 이름인 '北甲'이란 말을 차용하였었다. 이 단어의 中國音은 당시에는 '비갸'가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 '비갸'란 말은 매우 낯설은 것이었기 때문에 第2陰節의 '갸'를 국어의 '둡게', '번게', '지게'하는 '게'에 결부시켜 '비게'라는 말로 동화시켜 사용하였었다. 현대 국어에서도 영어의 형용사를 차용할 때 '스마트하다', '젠틀하다'와 같이 接尾辭 '―하다'를 붙여 차용한다. 원말에 없는 우리말의 접미사를 첨가함으로써 문법적으로 국어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셋째는 語彙論的 또는 意味論的인 동화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텔레비전'이란 말은 'tele: 遠'와 'vision: 視'이 합해진 複合語인데, 우리는 그 語源을 생각지 않고 단지 '受像機'란 뜻으로만 사용한다. 원말의 복합어가 우리말에 와서는 單一語로 된 것이다. 또 '카네이션'이란 말은 본래 상표의 명칭이었는데 한때 커피에 치는 우유의 通稱으로 쓰인 일이 있었다. 원말의 뜻이 우리말에 차용되어 바뀐 것이다. 우리말의 '미욱하다'는 '迷惑(다)'에서 차용된 것이지만, 두 말 사이의 意味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들은 우리말에 차용되어 語彙論的인 동화를 한 예들이다.
    외국어가 차용될 때는 차용의 모델은 하나이면서 여러 形態로 나타나는 수가 있다. 현재 'truck'에 대한 차용어는 '추럭'으로 익어져 가는 감이 있지만,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추럭', '트럭', '도락구'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radio'를 모델로 한 차용어도 '나디오', '라디오', '나지오', '라지오', '레이디오'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차용어가 동화되어 가는 한 과정이다.
    외국어에서 많은 借用語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영향을 받아 수용하는 言語가 構造的인 변화를 입게 된다. 국어에는 語頭에 流音이 올 수 없는 頭音法則이 있다. 그리하여 漢字語의 '路上(로상)'은 '노상'으로 차용되고 '梨花(리화)'는 '니화(>이화)'로 차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에서 많은 차용어가 들어오게 되자 '라디오' '램프' '로보트' 등과 같이 두음법칙에 어긋나는 단어들이 흔히 사용되게 되었고, 근래에 와서는 語頭에 流音을 가진 西歐語를 받아들일 때는 그 流音을 살려서 수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西歐語가 우리 국어에 音韻論的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국어는 중국어로부터 접미사 '-的'을 받아들여 '人間的', '社會的', '政治的' 등과 같이 매우 生産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용법이 확대되어'우리的인 것'과 같이 固有語들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의 假定法은 '...하면(하거든)'과 같이 假定句의 後尾에 語尾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이에 반하여 중국어(漢語)의 假定法은 假定句의 첫머리에 '若(萬若, 萬一)'과 같은 接續詞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중국어(漢文)의 이 표현법이 국어에 영향을 미치어 '萬若(萬一)...하면(하거든)'과 같이 接續副詞와 語尾 사이에 呼應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들은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文法的으로 영향을 미치는 예이다.
    차용어를 다량으로 수용하게 되면 그 가운데는 고유어와 類意 關係를 이루는 것이 있다. 이것이 類意語 衝突을 일으켜 고유어가 소멸되고 차용어로 代替되는 수가 있다. 국어의 고유어 '뫼'와 ''이 한자어 '山'과 '江'으로 대체된 것은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外來語가 직접 차용되지 않더라도 고유어의 語意에 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다. 漢文의 '聲'은 '名聲, 聲價'의 뜻으로도 쓰이는데 이 영향으로 국어의 '소리'가 名聲의 뜻으로 사용된 예가 「杜詩諺解」에 나타나고 있다. '마리'는 '머리'와 語惑의 차이만을 나타내던 것인데 漢文의 '首'의 영향으로 '한 마리, 두 마리'와 같은 數量의 단위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것도 같은 성질의 것이다.
    차용의 모델은 외국어의 音相만이 아니라 그 意味가 되는 수가 있다. 佛語에서는 摩天樓를 'gratte-ciel'이라 하는데, 이것은 영어의 'skyscraper'를 音譯하여 借用한 것이다. '摩天樓'도 같은 의역이다. 영어에서는 차용어를 'loan word'라고도 한다. 이것은 독일어의 'Lehnwort'를 意譯한 것이다. 이러한 차용어를 飜譯 借用(loan-translation)이라 하는데 여러 언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영어의 'lce-cream'을 중국어에서는 '氷淇淋'이라 하는데 '氷'은 飜譯 借用이다. 또, 'rail way'를 일본어에서는 '鐵道', 중국에서는 '錢路'로 飜譯 借用한 것이 모두 국어에 들어와 쓰이고 있다. 運動 用語로서는 'cornerkick'을 종래 音借하여 '코너킥'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구석차기'로 고쳐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借用語의 일종인 飜譯 借用語인 것이다. 한때 한자어 대신 固有語를 써야 한다고 하여 '算數'를 '셈본', '三角形'을 '세모꼴', '恐妻家'를 '아내무섬장이' 등으로 고친 일이 있으나 이것도 결국은 飜譯 借用語에 불가한 것이다. 飜譯 借用은 自國語의 造語法에 어긋나는 단어를 만들기도 한다. 苗木을 '모나무'라 고쳐 사용한 것이 그 예이니, 우리말로는 '나무모'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외국어가 자국어에 語彙論的으로 영향을 미치는 예들인데 차용어는 대체로 자국어에 없는 새로운 단어를 수용하는 것이어서 그 자체가 많든 적든 간에 자국어의 語彙 體系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하겠다.
    두 언어가 만나서 단어를 차용하기도 하고 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을 言語 接觸(language contact)이라 한다. 이 言語 接觸 現象은 '피진(pidgin)'이나 '크레올(creol)'과 같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복잡한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借用語도 곧 이 言語 接觸의 한 産物인 것이다. 또, 借用語는 文化史的으로는 文化의 擴散(diffusion)現象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文化人類學에서도 중시하는 분야가 된다.

국어 속에는 많은 借用語가 있다. 「우리말 큰사전」에 수록된 통계를 보면 固有語가 74,612, 漢字語가 85,527, 外來語가 3,986으로 나와 있다. 漢字語와 外來語는 모두 차용어에 속하는 것인데, 이들의 수가 固有語를 웃돌고 있다. 이 통계는 잠정적인 것이어서 실제도 그 비율은 차용어 쪽이 더 클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이들 차용어가 歷史的으로 어떻게 수용돼 왔는가를 살피기로 한다.
    19세기 이전 국어의 借用語는 중국어(漢語) 차용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밖의 언어로부터 차용한 것은 미미한 정도의 양만이 확인되고 있다. 먼저 이들에 대하여 살피고 중국어 차용어는 뒤에서 고찰하기로 한다.
    古代 國語에서 중국어 이외의 차용어는 佛敎를 통하여 수용된 梵語의 차용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들도 대개는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거의가 漢字化된 것이다.

彌勒(<maitreya) 彌陀刹(<amitādha ksetra)
乾達婆(<ghandharva) 南無佛(<namo buddhāya)
須彌(<sumeru) 菩提(<bodhi)

등이 鄕歌에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梵語를 중국에서 音譯한 것이다. 新羅華嚴寫經造成記는 755년에 쓰여진 것인데

菩薩(<菩提薩唾 Bodhisattva) 舍利(<śarira)
沙彌(śrāmanera) (梵)唄(<唄匿<bhāsa)
등 音譯한 것이 나타나고 梵語를 중국에서 飜譯 借用한 단어로
法界(dharmadhātu) 衆生(sattva) 齋(upoadha)
灌頂(adhiecana) 歸依 (sarana) 供養(pūjana)

등이 나타난다. 이 밖에도 중국어를 통한 佛敎 系統의 많은 단어가 지속적으로 수용되어 그 가운데에는 오랫동안 사용되는 동안 大衆化된 것이 많다.

중(僧, <衆) 숗(俗) 즁생(>짐승, 衆生) 바리(>鉢)
슈고(受苦) 행적(行績?) 성(性)가시다.

등은 15세기 문헌에서 한글로 기록된 것으로 이런 大衆化된 양상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에 비하여 梵語에서 직접 차용한 것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직 없다. '부처'는 中世國語에선 '부텨'이고 鄕歌에서는 '佛體'로 記錄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범어의 'buddha'에서 온 것으로 중국어에선 '佛陀', '浮圖(屠)', '浮陀', '勃駄', '母駄', '沒駄' 등으로 音譯하거나 '佛'이라 略해서 使用했다. '부텨'는 이들 어느 것과도 직접 脈絡이 닿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혹 梵語를 직접 모델로 한 차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으나 단정하기 힘들다.
    15세기 국어 자료에는

葡萄 琥珀 獅子 玻瓈

등이 보인다. 앞의 셋은 서역어가, 마지막 것은 東로마帝國語가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이다.
    高麗時代엔 蒙古語로부터 비교적 많은 차용어를 받아들였다. 이는 13, 14세기에 元과의 접촉이 밀접했던 결과에서 온 것이다. 官職名, 말, 매, 軍事 등에 관한 것이어서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한된 범위의 語彙들이다.

必闍赤·必者赤(bičiyeči, 書記) 達魯花赤(taruϒačin, 鎭守官) 站赤(jamčin, 站戶)

는 高麗史에 나타나는 것으로 元의 官職名이 高麗에서도 그대로 쓰인 것이다. 15,6세기 문헌에 나타난 것을 몇몇 들면 다음과 같다.

아질게(兒馬. ajirγa) 졀다(赤馬 ze'erde) 가라(黑馬 qara)
구렁(栗色馬 Küreng) 고개(鞦, qudurga) 오랑(肚帶 olang)
등은 말(馬)에 관계된 차용어,
보라매(秋鷹 boro) 숑골(海靑, šingqor, šongqor)
갈지게(黃鷹 qaγciγai) 궉진(白角鷹 Kőgsin)
등은 매에 관한 차용어,
고도리(박 γodori) 오, 오노(筈 onu, oni) 텰릭(武官服, terlig) 바톨, 拔突(勇士, ba'atur) 바오달(營 baγudal)
등은 軍事에 관한 차용어이다. 이밖에
타락(酡酪 taraγ) 슈라(水朿 šülen)
등 음식에 관한 것이 더 있다.

한편 女眞語는 咸鏡道의 地名에 남아 있다. '豆滿江'은 女眞語 tümen(萬)에서 온 것이다. '鍾城'은 古名으로 '董巾'이었었다. 이는 '鍾', '鼓'를 뜻하던 女眞語 'tungken'에서 온 것이고 '鍾城'은 그 意譯이다. '오랑캐, 兀良哈'는 豆滿江 일대에 살던 女眞族의 명칭으로 고유명사이었던 것이 후대에는 野蠻人의 通稱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近代國語에는 淸과의 接觸으로 滿洲語가 들어오게 되었다.

널쿠(斗蓬 nereku) 소부리(鞍座兒, soforo)
쿠리매(掛子, kurume) 마흐래(運, maγalai)

등이 그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이 밖에 歷史的인 사실로 보아 倭, 契丹, 金과의 接觸을 상정할 수 있으나 借用語의 有無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鄕歌에 倭의 명칭이 '倭理'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여리'로 추정되는 것으로서 15세기에는 '예'로 나타나고 있다.

19세기까지 국어가 隣近 諸言語와의 接觸이 미미했던 데 비하여 중국어와는 그 유례를 보기 힘들 만큼 長期間을 두고 持續的으로 密度 있는 접촉을 해왔다. 이 접촉은 國語史의 先史時代에 이미 시작된 것으로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口語와 口語를 통한 直接的인 接觸이요 다른 하나는 文語를 통한 間接的인 接觸이다. 間接的인 接觸은 또 크게 두 가지 樣相을 상정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하나는 中國古典인 經書, 史書, 文學書 등 思想과 敎養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行政이나 實生活을 위한 文書 方面의 것이다.
    漢字·漢文이 이 땅에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漢四郡 設置(B.C.108) 이전에 이미 들어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이 三國時代 초기에는 知識層에 普遍化되었을 것이니 廣開土大王碑文 (414)을 보면 당시 우리 先人들의 수준 높은 漢文 驅使 能力을 직접 확인할 수가 있다. 이 한문의 수용으로 우리 선인들의 文字 生活이 시작된 것이지만 外國語 文章인 한문을 수용하는 데는 여러 단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는 중국어와 우리말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兩言語 幷用人(bilinguals)에 의하여 수용되었다가 차츰 보급되어 가면서 그 學習 方法이 확립되어 갔을 것이다. 한문의 학습 방법은 오늘날에도 흔히 外國語 文章을 학습할 때 이용되는 방법과 같이 漢文을 먼저 原文 그대로 音讀한 다음 우리말로 풀어 새기는 과정을 밟았을 것으로 믿어진다. 音讀은 먼저 중국의 原音에 가깝게 읽었을 것이나 교육기관이 설치되어 그 학습이 보급되면서는 음운론적으로 한국어에 동화된 音으로 읽혀 韓國漢字音의 발단이 열렸을 것이다. 高句麗 小獸林王 2年(372)에는 太學을 세워 貴族 子弟들을 교육하였다 하니 이때에는 이미 當時 國語에 동화된 漢字音이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 한자음은 시대에 따라서 변천되었으니 오늘날에 이어지는 傳統的인 漢字音은 先代의 한자음의 영향도 받았지만 주로 中國 中古音인 唐代의 한자음을 모델로 이루어진 것으로 推定되고 있다.
    한편 漢文의 새김도 개인에 따라 다양한 表現이 나왔을 것이나 經書를 비롯한 古典은 그 새김이 차츰 체계화되어 師弟 間에 전수되는 과정을 밟았을 것으로 믿어진다. 이 체계화된 새김을 필자는 釋讀 口訣이라 한 바 있는데, 이의 영향으로 우리의 선인들이 한자를 우리말의 語順으로 배열하여 그들의 생각을 기록하는 表記法을 발달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이 釋讀 口訣은 처음에는 口傳되었으나 新羅 統一을 전후해서 漢文의 原文에 吐를 써넣어 그 독법을 文字로 표시하는 단계에까지 발달한 것으로 推定된다. 薛聰이 한자로 經書를 읽었는데 이것이 후대의 學者들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한 것으로 믿어진다. 이 방법은 물론 薛聰 이전부터 발달해 있어서 薛聰은 이를 이용하여 經書의 내용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釋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口訣은 儒佛을 막론하고 많은 漢籍에 記錄되었을 것이나, 불행히 모두 煙滅되고 현재 남아있는 그 實物은 고려 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믿어지는 舊譯仁王經口訣이 最古의 것이다. 이 釋讀 口訣에서 우리말의 常用語에 해당되는 것은 고유어로 읽지만 漢文의 熟語나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構成素들은 그대로 音譯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한문의 학습 방법과 한문의 가속적인 보급은 이 땅의 지식인들의 敎養과 思考의 영역을 넓혔으며 나아가서는 많은 抽象的 槪念語를 차용하게 하였다. 壬申誓記石銘은 三國時代에 신라의 知識人들이 한자를 우리말 순서로 배열하여 하늘에 맹서한 내용을 기록한 初期 史讀文이다. 여기에 이미 詩經, 常書, 書傳, 禮記 등의 經書를 學習하였다는 내용과 함께 '忠道', '執持', '過失' 등과 같은 抽象的 槪念語가 차용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新羅華嚴經造成記(755)는 初期 吏讀文에 吐를 記入한 統一新羅 時代의 吏讀文이다. 여기에는 앞서 열거한 佛敎 用語와 함께 '沐浴, 大小便, 香, 香爐'와 같은 生活用語와 '行道爲()―', '頂禮爲()―', '供養爲()―'와 같은 動詞, '淳淨爲()―'와 같은 形容詞가 차용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문의 用語에 接尾辭 '―'를 붙이는 것은 이들을 국어에 文法的으로 동화시켜 차용하는 規則인데 이것이 이 시대에 이미 형성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또 한문의 '然後', '以後'와 같은 接續詞가 차용되고 있고 현대 국어의 '萬苦...하면'에 해당하는 '苦...爲者()' 같은 표현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한문이 이미 이 시대에 국어에 文法的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들은 극히 적은 예에 불가하지만, 당시 漢文의 學習과 普及이 국어에 제공한 借用語의 一端을 보여주는 것이다. 統一新羅시대에 唐과의 접촉은 많은 文物의 수입과 함께 한문의 보급을 가속화시켰다. 이것은 高麗時代로 들어오면서도 지속되었는데 특히 光宗 時代(958)에 科擧 制度가 시행되면서 漢文의 音讀과 釋讀이 融合되어 오늘에까지 전하여지고 있는 音譯 口訣이 發達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口訣은 漢文을 音譯하면서 그 句讀을 끊을 곳에 國語의 吐(助詞나 語尾)를 偛入하여 읽는 것이니,

天地之間萬物之中(애) 唯人(이) 最貴爲尼 (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是羅(이라)

와 같은 것이다. 音讀과 동시에 내용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讀法이어서 한문의 학습과 이해를 위해서는 극히 효과적인 독법인 것이다. 이 口訣로 인하여 한문의 暗通이 용이해져 한문의 보급이 가속화한 것으로 믿어진다. 한편 이 口訣은 난해한 外國語의 文章인 漢文이 국어에 文法的으로 동화된 것이니, 漢文의 構成素를 필요하면 언제나 차용할 수 있는 機械的인 裝置가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15세기 문헌을 보면 한문의 명사는 그대로 국어의 명사로 차용되고 動詞는 接尾辭 '--'를 붙이고 (兼-, 勸-, 修補-, 巡狩-), 形容詞는 '--', '-(랍)-', '-(답)-'을 接尾시키고(强-, 貴-, 苦-, 法-) 副詞는 '-히(이), -혀, -로' 등을 接尾시키는(親히, 重히, 幸혀, 實로) 비교적 간단한 規則에 의하여 차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規則은 漢文의 보편화와 그 한국화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니 漢文과 國語와의 거리가 그만큼 밀접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杜詩諺解」 卷六의 첫머리 官殿類詩를 보면,

紫陌, 禁城, 王墀, 御爐, 鳳池, 絲綸, 黃金榜, 朝天-, 細細-

와 같이 實生活과는 거리가 있는 漢文 熟語가 그대로 國語 文章인 諺解文에 쓰이고 있다. 이것은 한문의 단어가 얼마나 쉽게 국어에 차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漢字·漢文의 文書 方面에서의 이용은 中國語 借用語의 또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이 文書는 지식인은 물론 下級 官吏나 一般 大衆들도 사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中國語의 文法에 맞는 문장이 쓰였으나 곧 韓國語的인 文章인 吏讀文이 발달하여 함께 쓰였다. 吏讀文은 行政이나 社會 制度 또는 庶民들의 實生活과 관계되는 내용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이 방면의 차용어는 쉽게 大衆의 언어 속으로 침투하게 된다.
    三國時代와 統一新羅時代 全般을 통해 보면 우선 歲次를 표시하는 干支의 名稱이 차용되어 널리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甲申, 丙戊, 壬辰, 癸卯, 乙巳, 辛亥, 丙辰
    등이 그것이지만, 六十甲子가 모두 쓰였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數量訶로서
寸, 尺, 丈,步, 里 (길이) 石, 碩(양)
兩, 斤, 鋌(廷) (무게) 反(횟수)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제한된 자료에서 수집한 것이므로 이 밖의 용어도 필요에 따라 차용하였을 것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또, 匠人들의 명칭으로

匠, 匠尺, 文尺, 斧尺, 伯士, 功夫, 法功夫

등이 나타난다. 이들은 적은 양이지만, 이 계통 차용어의 특징적인 양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匠'은 후대에도 그대로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接尾辭 '-장이'로서 널리 쓰이는 것이다. '尺'역시 후대에 널리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高麗時代에는 '水尺'이 보이는 바, 이는 鷄林類事에 '水作(수자, 倡)'로 轉寫되었다. '尺'이 大衆化되어 이 시대에는 賤人들의 名稱에도 사용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伯士'는 '搏士'에서 온 것으로 믿어진다. 이 계통의 차용어는 쉽게 대중화가 되어 의미도 바뀌므로 語源的인 漢字를 찾아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무방했던 것이다. 佛家의 造成事業에서는 '施主'를 '檀越'이라 하는데 흔히 '旦越'이라 記錄한 것도 같은 성질의 것이다.
    '功夫'는 비록 源字語라 하더라도 우리의 社會 制度에서 造語된 명칭으로 생각된다. 高句麗에서 造語된 '烟(國烟, 看烟)'이 新羅에서도 쓰인 것을 볼 수 있거니와 南山新城碑의 '面促人', 華嚴寫經造成記의 '楮皮脫(닥나무 껍질을 벗기는 사람)', '脫皮練(벗긴 껍질을 다듬는 사람)' 등과 같이 필요하면 수시로 造語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이 系統의 用語이다.
    景德王때 地名을 중국식으로 고친 것도 漢字·漢文의 보급과 唐의 文物을 수입한 영향도 있지만 實用文에서의 漢字, 漢文 사용의 慣例가 그 직접적인 기초가 된 것으로 믿어진다.
    漢文의 釋讀을 바탕으로 訓으로 기록한 借字 表記語가 음독되어 漢字語化한 예도 있다. '赫居世'가 固有語 '블어'를 표기했던 것이 오늘날 音讀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新羅의 官名을 표기한 '大舍'의 '大'도 본래는 訓으로 읽은 것이다. 이는 '韓舍'의 '韓(한)'으로도 기록되어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데 현재 우리는 音讀하여 漢字語化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景德王 代의 地名 變更에서 고유어 '吉同'을 '永同'으로 고쳐 音讀한 것을 보면 이미 新羅時代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吏讀文에서의 韓國 漢字語의 造語는 高麗時代로 들어오면 더욱 강력하게 나타난다. 若木淨兜寺造塔記 (1030년)에는

石運 石練 乞供納米 物業 導行
繼願成畢爲()- 計會爲()- 分折爲()-
仍請爲()- 陪到爲()- 出納爲()-

등이 쓰였는데 이 가운데는 慣用的으로 사용한 것도 있겠지만 대개는 이 글을 作成하면서 造語한 것이다. 松廣寺奴婢文書(1281년)에는 '傳持使用爲遣(고)'란 말이 나온다. '傳持'는 '傳受하여 報持한다'는 말이 줄어진 吏讀文의 熟語인데 釋譜詳節에는 한글 '뎐디'로 표기하고 있다. 한글 표기는 곧 俗語로 취급한 것이다. 이러한 漢字語는 직접 中國語에서 借用한 것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차용어로 다른 言語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15세기에는

공번(公反)   공(公事)   만일(萬一) 분별(分別) 계(生計) 원(員)

등이 한글로 표기되었는데 이들은 이 實用文을 통하여 차용되어 대중화한 것으로 믿어진다.
    이후 吏讀文은 19세기 말까지 사용되었지만 高麗 後半부터는 漢文式 表現 경향이 강해져 朝鮮朝로 들어오면 한문에 吐를 단 듯한 문장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나 이 吏讀文을 위시한 實用文은 知識人들의 文語인 漢文과 言衆들의 生活言語인 口語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韓國 漢字語의 造語와 漢字語의 大衆化에 지속적으로 역할을 한 것이다.
    借用語를 文化的 擴散이란 측면에서 볼 때 中國 醫學의 한 분야인 本草學을 통한 借用語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本草學은 이미 三國時代에 이 땅에 들어 왔지만, 高麗 文宗 3년(1049년)에 醫科科擧應試資格을 庶民, 雜類에까지 開放한 것이 이 계통 차용어의 수용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 借用語는 13세기 중엽 大藏都監에서 刊行한 「鄕藥救急方」에 借字表記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귀중하다. 먼저 우리의 注目을 끄는 것은 音假字(表音字)로 表記된 借用語이다.

者里官/쟈리공(章柳根) 注也邑/주(皂莢) 串木子/모관(無患子) 鳩目花/구목화(瞿麥) 洗心/셰심/(細辛)

이들은 괄호 속의 중국어 藥材名을 모델로 하여 차용한 단어를 音假字로 표기한 것 중에서 뽑아 본 것이다. 이 音假字는 15세기 문헌에서 중국어 차용어를 한글로 표기한 것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이 借用語가 민간에서 널리 쓰여 固有語와 같은 단어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 계통의 차용어는 비록 한문을 통하여 間接的으로 차용됐다 하더라도 庶民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쉽게 그 語源을 잊고 국어에 동화된다.

山梅子(都孝人) 眞椒(川椒) 唐揪子(胡挑) 塔菜(戒火)

는 漢字語이지만, 중국어에서 직접 차용한 것이 아니고 우리 문화를 배경으로 造語한 韓國 漢字語이다. 이 계통의 용어가 知識人들의 口語와 文語와의 상호 간섭에서 造語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이 鄕樂名 가운데는 고려시대 이전의 국어에서는 좀처럼 확인하기 힘든 飜譯 借用語를 보여 주는 것들이 있다.

牛膝草/쇼무릎플(牛膝), 狼矣牙/일히의 엄(狼牙草), 漆矣母/옷의 어(漆姑) 所邑朽斤草/솝서근풀(腐膓, 黃芩) 金非陵音/쇠비름(馬齒莧) 蛇音置良只菜實/얌두러기(蛇床子) 天叱月乙/하(天瓜括葽)

등은 괄호 속의 中國語를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번역 차용한 것이다. 이 가운데는 古代國語 時代에 차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있어서 오랜 연원을 가진 것임을 말하여 주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한문의 釋讀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本草學의 借用語도 朝鮮朝 後期로 오면 다시 漢字語로 되돌아가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극히 적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
    國語가 中國語와 直接的인 接觸을 한 것은 地理的인 與件으로 보아 國語의 先史時代에 이미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直接 借用語는 곧 語源이 잊혀지는 것이어서 후대의 言語 資料를 가지고 추정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이런 가운데도 일찍부터 비교적 믿을 만한 것으로 추정된 것은 '붇(<筆)'과 '먹(<墨)'이다. 이들은 문자 생활이 시작된 후에 차용된 것이겠지만 우리의 傳統的인 漢字音과는 다른 音相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이 한자음이 형성된 古代國語 時代 이전에 차용된 것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이 밖에도

석(짚세기, <屣) 살(<矢) 되(升, <斗) 뵈(<布)
솔(<刷) (<帶) 채(鞭, <策) 무늬(<紋)
등의 名詞와
스다(<書) 녀믜다(<袵) 배다(<敗)

등의 動詞가 이른 시기에 차용된 것으로 擧論된 바 있다. 이 가운데 동사는 한문의 동사에 '―(爲)―'를 접미시켜 借用하는 규칙이 형성되기 이전에 차용된 것으로 볼 수 있으니 古代國語 이전의 차용어로 추측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水尺'이 '水作'(슈자)'로 나타나서 '尺'을 '자(잫)'로도 읽었음은 앞에서도 말하였거니와 15세기 문헌에는

잫(<尺) 뎧(<笛) 봏(<褥) 욯(<襆) 숗(<俗)

등이 나타나 주목을 끌어 왔다. 이들은 中國語에서 入聲音이 脫落하여 가는 단계인 'ᄀ>ᄒ>ᄋ'에서 'ᄒ'의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니 傳統的인 漢字音과는 다른 차원에서 차용된 것이다. 이는 모두 日常生活에서 쓰이는 것이니, 古代國語 時代의 直接 借用語일 가능성이 높다.
    15세기 문헌에는 近世 中國語에서 借用된 단어들이 나타나고 있다.

노(<羅) 보(<寶貝) 비단(匹段) 갸(<自家) 디(<紫的) 진딧(<眞的) 차(<茶)
차반(<茶飯) 쳔(<錢) 쳔량(<錢糧) 퉁(<銅) 훠(<靴)

이들은 모두 생활 용어로서 주로 元代의 중국어 直接 借用語로 생각되는 것이다.
    16세기 이후 18세기 문헌에 걸쳐 나타나는 중국어 직접 차용어는 비교적 많다.

服飾類: 탕건(唐巾) 흉븨(胸背) 쾌(褂子) 비갸, 비게(比甲)
던링(團領) 후시(護膝) 상투(上頭) 토슈(套袖)
布帛類: 즈우샤, 주사(縐紗) 션단(閃段) 허(毼子)
야투로, 야토룩(鴨頭錄) 야쳥(鴉靑) 모시(木絲)
器皿類: 좌, 좌(座兒) 솨(刷子) 노고(鑼鍋) 산판(算盤)
食物類: 빙져, 빙쟈(餠緖) 변시(匾食) 슈판(水飯) 사탕(砂糖)
商賈類: 푸(鋪子) 갸디(假的)
官公類: 투서(圖書) 톄(帖子) 당지(當直) 간계(甘結) 죡솨(○鏁)
禾穀蔬菜類: 슈슈(薥薥) (白菜)
其他: 햐쳐(下處), 황호(荒貨)

이들은 元代 이후 18세기에 걸쳐 借用된 것으로 당시인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들이며 또한 오늘에까지 사용되는 것도 여럿 있다. 이 계통의 차용어는 원칙적으로 한글로 표기되는 것이지만, 후대로 오면 다시 漢字語化하는 경향을 보인다. 雅言覺非에는 '大牌(대패)' '徒里(도리)' '大共(대공)' '菩里(보리)' 로 표기되는 단어가 본래는 '推鉋' 托樑, 斗拱, 玻瓈'에서 借用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漢字化는 주로 文書 作成에서 사용된 것으로 믿어진다.
    17세기 이후는 西洋 文物의 수입에 따른 차용어도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도 대개는 中國(淸)을 거쳐 들어왔기 때문에 漢字語化하게 되었다. 일례로

聖經 天主 主日 福音 聖誕 聖母 耶蘇(예수)

등은 오늘날도 天主敎(基督敎)에서 쓰이고 있는 말인데 이미 중국에서 간행된 「聖經直解」(1636년 初刊)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은 이미 18세기말에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그 필사본이 신자들 사이에 전파된 것이다.

이제까지 借用語가 수용되는 과정과 自國語에 미치는 영향 등 일반적인 성질을 설명하고 고대국어에서 근대국어까지 국어 속에 차용된 말들을 대략 살펴보았다. 국어 속에는 中國語를 비롯하여 西域語, 東로마帝國語, 梵語, 蒙古語, 女眞語, 滿洲語, 近代西歐語가 古代부터 近代까지 借用되었다. 이 가운데 中國語 直接 借用語와 蒙古語, 女眞語, 滿洲語 차용어들은 口語를 통한 차용어이고 그 밖의 차용어는 漢文을 통한 間接 借用語이다. 直接 借用語들은 대체로 日常用語들로서 생활의 변천과 함께 소멸되었거나 후대까지 남아 전하는 것이 있어도 국어에 이미 동화되어 固有語와 다름없이 쓰이고 있다.
    漢字·漢文은 장구한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音譯論的으로나 文法的으로 국어에 동화된 특수한 文語가 되어 시대가 흐를수록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어 왔다. 이 땅의 知識人들은 儒·佛의 經典, 史書, 文學書 등의 中國 古典을 필수적으로 학습하였고, 이를 그들의 文語로 사용하였으니 이를 바탕으로 많은 한문의 단어가 차용되어 보급되어 왔다. 또한 漢字·漢文은 吏讀文을 대표하는 實用文으로 발달되었으니 이를 통하여 中國의 社會 制度이나 行政에 관계된 단어들이 借用되어 널리 보급되고 우리의 制度나 日常生活에 필요한 용어들이 漢字語로 造語되어 보급되었다. 이와 같이 漢字·漢文을 통하여 수용된 많은 차용어들은 차용 후 곧 사라지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소멸되기도 하였다. 현재 固有語의 수를 능가하는 많은 漢字語가 國語의 語彙 體系 속에 수용되어 이를 바탕으로 현대 국어 속에서도 漢字는 막강한 造語力을 갖게 되었고 우리의 文化的인 言語生活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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