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詩諺解」에 깃든 되살릴 말들(1)
李 應 百 / (서울대 교수, 國語學)
말은 생겨서는 발달 변천하고, 그러다가 어느 것은 아예 쓰이지 않게 된다.
가령 龍飛御天歌 第三章에
란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①②④⑤는 現代 말에 音韻이나 語源 요소가 연결이 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으나 ③은 적어도 '움직인다'는 뜻으로서는 전연 接脈이 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연 쓰이지 않게 된 말을 死語라고 한다. 古語辭典에는 이러한 死語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말이 이렇게 안 쓰이게 되는 것은 그 語感이 진부하게 느껴진다든지 漢字語나 다른 말로 代置되는 경우에 일어나는 現象이다. 그 외에 엄연히 口頭語나 記錄語에 쓰여 내려오던 말이라도 言衆이 그러한 언어 환경이나 글에 접할 기회가 줆으로써 결국 死藏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젊은층들의 讀書 취향이 쉬운 말, 쉬운 表現에로 기울어진 나머지 조금만 어렵거나 색다른 語彙, 表現에 부딪쳐도 얼마나 큰 抵抗을 느끼고 있는가를 보아도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말은 그 나라의 歷史와 文化, 전통을 담은 結晶體로, 그것이 얼마나 풍부하고 洗練되었느냐는 바로 그 나라의 文化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尺度가 된다고 하겠다.
우리말은 우리 民族의 形成과 그 역사를 같이 해 왔고, 나름대로 발전도 해 왔으리라고 추측이 된다. 그러나 그 말을 적을 수 있는 文字의 발명이 늦음으로 해서 아주 이른 시기의 우리말의 모습은 헤아리기가 어렵게 됐다.
그러던 차 서기 전 2세기 경을 下限線(1)으로, 아니 부분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漢字漢文이 들어옴으로써 비로소 記錄의 수단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은 言語의 構造가 다른 中國의 語文의 記錄 手段임으로 해서 그것이 우리말에 받아들여지기에는 상당한 저항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先人들은 오늘날 우리가 英語나 독 불어를 익히 듯 그것을 익혔고, 語順을 우리말 식으로 바꿔 記錄해 보기도 하였으며(2) 漢字의 音과 訓을 이용해서 人名 國名 地名 官職名 등을 적고, 나아가서는 鄕歌에서와 같이 읽으면 우리말이 되게 詩歌를 表記하는 데 쓰기도 했다. 그리고 吏讀나 口訣로도 활용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漢字에서 日本이나 女眞처럼 自國文字의 발명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漢字가 지닌 聲韻보다 우리말의 그것이 훨씬 복잡했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表記 體系가 갖춰지지 못한 상태가 1443년 訓民正音이 발명될 때까지 거의 1,600년이나 계속되는 동안, 우리말의 자연스런 발달은 자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 우리말이 다양하고 세밀하게 발달하기 전에 文化 수준이 높은 漢字語가 아무 제약 없이 流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漢字를 日本에서처럼 音과 訓으로 읽지 않고, 音으로만 읽었기 때문에 고유어와 漢字語의 並存에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게 되어 결국 고유어의 위축을 可速化하게 됐던 것이다.
더구나 漢字語는 2자 내지 3자로도 훌륭히 어떠한 개념을 나타내는 무서운 造語力을 지니고 있는 데 비해, 고유어는 일반적으로 길어지는 폐단이 있어 오늘날 새로 만들거나 번역된 專門 用語들이 그 많은 수효가 漢字語로 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국어辭典에 실린 말의 약 70%(3)가 漢字語로 되었다.
고유어는 自然物, 衣 食 住, 身體, 族稱의 1부, 動作, 色깔, 擬聲擬態語 등 생활에 직접 관련이 있는 語彙가 많고, 抽象 槪念을 나타내는 觀念語와 專門 用語는 대부분 漢字語로 되어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어떻게 하면 固有語의 語彙를 늘려 우리말의 表現을 부드럽고 다양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국어를 다루는 사람들이 늘 마음하는 문제다.
우리말의 語彙가 빈약하다고 한다. 가령 外國語 특히 外國 作品을 번역하는 이들이 항상 부딪치거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다. 우리말 그중에서도 固有語를 풍부히 하기 위해서는 語彙를 새로 만들 필요도 있지만, 숨겨져 있는 말을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국어로 쓰인 옛 時調나 가사, 日記, 隨筆, 小說, 그리고 각종 諺解를 비롯하여 新文學 이후 現代文學 작품에서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辭典이나 地域語에서 찾아낼 것이다. 이들은 실로 방대한 작업으로 어느 個人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筆者는 일찍이 한글 학회의 「큰 사전」에서 일상 회화나 文章에 살려서 쓸 만한 語彙를 추려 ㄱㄴ順(4)으로 소개하고, 다시 內容別로 用例를 곁들여 現代文學誌에 7회에 걸쳐 連載(5)한 일이 있다.
그리고 「杜詩諺解」에서 살려 쓸 만한 말들을 추려 '숨어 있는 고운 말'이란 제목으로 9회에 걸쳐 어느 敎養誌에 連載(6)한 일이 있다.
筆者는 여러 諺解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杜時諺解」는 번역자의 적절하고 뛰어난 語彙 감각으로 해서 가위 우리말의 寶庫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숨어 있는 고운 말'을 거기서 찾아 連載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 讀者에게는 차라리 小說이나 時 작품 같은 데서 좋은 어휘를 찾아 재미있게 소개하는 편이 낫던 듯, 25 권까지 다 훑어 소개하겠다고 한 筆者의 다짐은 1 권도 채 끝내지 못하고 붓끝을 돌려야 하게 됐던 것이다.
독자를 인식했기에 綴字도 現代式으로 고치고 풀어서 소개하는 애로점을 늘 느꼈던 차라, 차라리 잘된 일이라 여기면서도 모처럼의 의욕이 無爲히 중절된 안타까운 마음은 늘 무주룩하게 머릿속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 이번 국어연구소의 요청으로 끊였던 그 일을 아무 제약 없이 本格的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 무한 기쁘다.
여기에 쓸 臺本은 大提閣의 影印 重刊「杜詩諺解」다. 그 이유는 첫째로 缺帙이 없으며 둘째로 初刊本보다 語彙가 오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 接脈이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卷數 순으로 現代에 되살려 쓸 만한 말을 골라 소개해 가되 卷別로 첫머리에 卷次와 내용별 分類를 제시하고, 찾아낸 단어의 머리에 一連番號를 매긴 다음, :표 오른쪽에 現代語形을 보이고 ( ) 앞에 뜻을 써 넣었다. 出典 표시는 初重刊 구분이 필요 없을 때에는 (杜解 1:24)라 하고 初刊 重刊은 각각 (初杜解)(重杜解)라 했다. '1:24'는 '1卷 24면'이란 뜻이다. 다만, 찾아낸 단어가 들어 있는 原文의 出典 표시에는 (重杜解 1:1北征)과 같이 卷 面 다음에 詩題를 밝혀 참고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다른 文獻은 되도록 原名을 다 들어 놓았다.
찾아낸 單語는 原語:現代語形(뜻)의 순서로 제시하고, 出典 原文을 밝힌 다음 攷究와 解說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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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類杜工部詩 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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紀 行
이 말들은 現代語에서는 '아스라하다', '아스라히'로 되어 있다.
'아아라히', '아스라히' 어느 쪽을 쓰든 상관 없겠으나 편지에 쓰거나 특히 詩語로 적합한 말이다.
이들 '겨르로운, 겨르로이'는 名詞 '겨를'에서 派生된 말들임은 다음 對比로 쉽사리 알 수 있겠다.
| 저허다 | - | 저허 | - | 저코 | - | 저히다 |
| (두려워하다) | (두려워하여) | (두려워하고) | (위협하다) | |||
이들 '저허다' 계열의 말은 '저타, 저코, 저리, 저티, 전니, 전노라 젇노라'라고 씌어 語幹의 기본 形態素는 '젛'으로 추정이 된다. 그러므로 앞에 든 '젓와'도 이를 감안하여 現代語形으로 고치면 '젛사와'가 되고, '저허, 저코, 저히다'도 각각 '젛어, 젛고, 젛이다'가 되며 그 基本形은 '젛다'가 된다 하겠다. 그러나 現代語에서는 '젛다' 대신 이미 '저허하다'를 기본형으로 삼고 있으므로 그것에 발맞추어 語形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앞에 열거한 말들을 現代語形으로 고치면 각각 다음과 같이 된다.
그리고 '젛'의 形態素는 '암, 수'가 'ㅎ' 末音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表記에는 나타내지 아니하며 (암컷, 암탉), 'ㅎ' 소리가 激音化 현상을 일으키지 않고 단지 舌端閉鎖音으로 날 때에는 'ㅅ'받침을 받치는 예(숫꿩, 숫양)에 따라 '젓와'의 現代語形은 '젓사와'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위의 古語는 現代語形으로 고쳐 열거한 예 중, 위의 셋은 '저허하다'와 그 活用例이나, '저히다'는 派生 독립된 말이다. '저히다'는 '威脅하다'라는 漢字語系 말에 견주어 쓸 수 있는 固有語다.
'젓사와, 저히다'는 이미 쓰이고 있는 '저허하다'와 아울러 '恐'의 뜻을 지닌 같은 계열의 말로 오늘에 살려 쓸 만한 말들이다.
'아야로시'에 비하여 '아야라'는 끝이 잘린 것 같고, '아야오시'는 너무 긴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야롯다' 형의 用例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現代語形은 '아야롯이'가 아닌 '아야로시'를 취한 것이다.
이 '아야로시'는 詩語로서 어울리는 말이라 하겠다.
따라서 '다' 계열의 말들은 다음과 같이 現代語形으로 나타낼 수 있다.
'바드랍다'는 '危殆롭다'로 漢字語 계열의 말과 아울러 쓸 수 있는 固有語로서 다시 살려 쓸 만한 말이다.
'아처러하다'와 '아처하다'를 다 쓰되 後者는 더 절박할 때 씀직 하다.
'너출'의 現代語는 '넌출'이다. 따라서 '너출다'의 現代語形은 '넌출다'라고 해야 한다.
'넌출지다'는 '넌출+지다'로 다른 형태소가 붙어서 이룩된 말이지만 '넌출다'는 그 자체의 動詞化로, 그리 많지 않은 희귀한 예이기 살려서 쓸만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