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답지 않은 국어
서 재 국 / (啓明大 교수, 국어학)
1. '要노크'는 '똑똑'으로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우리말답지 않은 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祝結婚·祝入學'이라든가 '要注意 要노크' 따위 말들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 '결혼을 축하합니다. 입학을 축하함·당선 축하' 등 얼마든지 우리말식 표현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중국어식 표현을 해야만 운치가 있는 듯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要注意·要노크'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 경우에는 '注意'나 '노크'만으로도 족하다.
몇 해 전에 외국에서 한 1년 가까이 지내다가 귀국했을 때의 일이다. 이삿짐 찾는 절차를 밟기 위하여 물표 받으러 부산에 있는 해당 회사엘 갔었는데, 그 회사 사무실이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화장실 문짝에는 깜짝 놀랄 만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깥쪽은 '똑똑'이라 쓰여 있고, 안쪽은 '문꼭'이라고 쓰여 있었다. 구차스럽게 '노크를 하시오'니 혹은 '要노크'니 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차리고 행동할 수 있는 좋은 생각이라 느껴졌다.
말이란 원래 보고의 기능과 사회 협동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기에, '똑똑'을 보고 기분 좋게 문을 두드릴 수가 있고, '문꼭'을 보고 문단속을 단단히 하게 마련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똑똑'은 다른 곳에서 더러 눈에 뜨인 적이 있었다. 지극히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라 느껴진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국어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뿐만 아니라, 국어를 살찌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생산적인 말꼴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요즘 어느 도서관에서나 독서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문살짝'이라는 말도 바로 그런 내용을 가진 증거라고 하겠다.
2. '오야'는 '어이'로
벌써 15년쯤이나 되었을까, 집에 방구들을 다시 놓는데, 토공 두 사람이 와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은 나이 일흔쯤 되었고 한 사람은 쉰쯤 되었는데, 집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 그 나이 많은 노인을 가리켜 "저 사람이 미장이 어이인가?" 하고 물었다. 나는 약간 당황했었다. 말뜻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미장이 어이'의 '어이'의 용법이 너무 진기해서 재차 확인을 했으나 여전히 '어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말하자면 미장이 두 사람 중에서는 우두머리라는 뜻이었다.
우리의 국어 사전에서는 아직 이런 뜻의 '어이'는 올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 비록 방언에서나마 이런 용법이 남아 있다는 것은 전국적인 방언 조사에서 더 많은 지역으로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지난날의 국어 문헌에서 이런 용법이 장차 찾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흔히들 '산통 오야'니 '계 오야'니 한다. 화투 놀이에서도 '오야(親)'라는 일본말을 쓴다. '어이'라는 말이 중세어로는 '어'였고 향가에서는 '母史'로 표기되어 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계보상으로 일본말 '오사(長)'나 '오야'가 우리말에서 그 어원을 찾아야 할지 어떨지는 모른다해도 일단 일본말인 점에서 듣기가 거북하다. '산통 주인, 계 주인'으로 하든가 '산통 어이, 계 어이'로 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을까?
3. 트기말 몇 가지
"엔지 조시 좋다"는 세 나라 말의 트기다. 뒷부분은 '상태가 좋다(혹은 '고르다')
정도로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심한 것은 낱말 자체가 트기로 된 게 많다. 검은 빛을 띤 푸른 색깔을 원래 '야청'(아청, 鴉靑)이라 했는데, 일본식 '紺色'이 들어온 뒤로는 '곤색'이 되어 '곤(紺)'이 일본말 소리임을 모르고들 쓰고 있다. 우리 음으로는 '紺色'이 '감색'이라야 하는데, 그러자니 '감〔枾〕'색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었던지 지금은 거의 '곤색'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야청'을 '흑람색(黑藍色), 검람색(黔藍色)'으로 할 수는 있으나 이 또한 '야청'과 같이 사라져 가고 있다. 정 어려우면 '검은 남색'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농뗑이'란 말은 '게으른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미 우리 국어 사전들에는 <속어>로 올려져 있는 말이다. 이것도 알고 보면 일본말 '농끼〔暢氣〕'(서두르지 않는 것)의 '농'과 우리말 '뗑이(<덩이)'의 합침일 것이다.
이젠 문명도 많이 바뀌어서 '양등(洋燈)'의 사용처도 그리 많지 않게 되었다. '양등'이라 하든지 '남포등'이라 하든지 그 말이 한자말이건 서양말이건 일반 언중들은 상관할 바가 없다. 더구나 '호얏불' 할 때의 '호야〔火屋〕'(석유등이나 가스등의 바람막이 유리통)가 일본말임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까 '곤색'이나 '농뗑이'가 마음에 거리껴질 리가 없다.
경상도에서는(경북 북부 일대를 제하고서) 화투 놀이 같은 것을 해서 이기면 그 이긴 쪽이 상대편 진 쪽의 손목을 엄지손가락 다음의 두 손가락으로 내리치는데, 이것을 일러 '심패때린다'고들 한다. 이 때의 '심패'가 일본말 '싯뻬이〔竹篦〕'의 변형이라는 것은 한국어를 연구하는 일인 학자도 잘 모른다. 또한 경상도에서는 '서커스'를 일러 '마시마이'라고 했었다. 우리말 '말(馬)'과 일본말 '시바이〔芝居〕'(연극)와의 트기로 '말이 재주 부린다(曲馬, 曲藝)'는 말이다.
부산에서는 광복 후에도 오래도록 일반 서민층에서 남의 부인을 '오감사'라고 했다. 물론 이 말 역시 일본말 '오까미상'을 줄여서 한 말이지마는, 이 때의 말머리 '오'가 일본말에서 공대 접두사로 쓰인다는 것을 모르는 언중들은 마시는 차도 '오차' 혹은 '오찻물'이라고들 한다. 이 '오차'는 현재로서는 전국적인 현상이라 할 만큼 번져 있다. 물이고 밥이고 소금이고 간에 찍히면 '오' 소리를 붙이는 일본말을 왜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들온말(外來語)이라도 수용의 한계가 있다. '차'라 하든지 '찻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왕 트기말이 났으니 '프로테이지'라는 말도 재고해야 한다. '프로테이지'가 포르투갈말·화란말의 '프로센토'와 영국말 '퍼센테이지'를 뒤섞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영어로 '퍼센테이지'로 하든가 아니면 줄여서 '프로'로 하든가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4. '퇴색'이라는 말과 각 사전의 한자 표시
'퇴색'이란 말은 '빛의 바램. 투색(渝色)'을 뜻한다. 그런데, 이 말의 한자 표시는 들쭉날쭉이다. 「조선말 큰사전」(한글 학회)에서 「국어 대사전」(이희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괄호 안에 '退色, 褪色'으로 적고 있다. '褪'은 '톤'인데 '퇴'로 잡은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大漢韓辭典」(張三植)에서도 '褪'을 '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吐困切'이라는 본래의 음가 표시가 되어 있다. 그리고 '褪色'이라는 숙어의 읽기도 '퇴색'이라고 하고 있음을 본다.
우리나라의 「新字典」(光文會)이나 「字典釋要」(池錫永)는 모두 '願'韻에 해당하는 '톤'이라 했고, 「康熙字典」에서도 '韻會 吐困切 呑 去聲'이라고 하고 있을 뿐이다. '퇴'에 해당하는 소리 표시는 없다. '退'와 '褪'이 글자가 비슷해서 일반 언중들의 착오를 일으키는 것은 설령 용인된다 하더라도, 대중을 계도하고 학문의 기초 구실을 해야 하는 사전류에서 면밀한 조사 검토도 없이 기술한다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생겼던가에 대해 우선 손 닿는 대로 되짚어 보기로 하자.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본말 사전류에서는 어떻게 되어 있나 하는 것인데, 1915∼19년에 된 「大日本國語辭典」(上田萬年 등)을 필두로 해서 대부분의 일어 사전에 괄호 안 한자가 거의 '退色·褪色'으로 되어 있고, 최근 1981년의 「新明解國語辭典」(金田一京助 등)에서는 괄호 안 한자로 '褪色'이라 적고는 잇달아 '退色'은 代用 漢字이다고 명시해 두었다. '重態'를 일본 발음으로 똑같이 소리나는 '重體'로 적으며, '蹶起' 또한 같은 발음의 '決起'로 적는 일본에서는 일본의 國語審議會에서 인정하지 않는 한자는 모두 같은 발음의 쉬운 글자로 대용하게 되어 있는 것인즉, 여기의 경우에도 원칙은 '褪色'이 옳지마는 편의상 代用 漢字로써 '退色'이라 한다는 말이 된다. 따지고 보면 앞뒤가 뒤바뀐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도 1919년의 「國語大辭典」(船岡獻治)에서는 'タイシヨク'라 적어 둔 올림말에 괄호해서 '退色'이라고만 하고 있는 사전이 있기는 하다(이 사전의 설명 부분은 모두 한국어로 되어 있음). 우리나라의 경우 1947년의 「표준 조선말 사전」(이윤재)에만은 '退色'으로 되어 있고, 그 뒤 1967년의 「New Korean-English Dictionary」(Samuel E.Martin,이양하 등)에도 '退色'으로 되어 있다.
우리 국어 사전들에서 '퇴색'의 한자 표시를 '褪色·退色'으로 하게 된 근거는 일단 위와 같은 내력으로 보아 일본어 사전이나 일본 한어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일본 한자전들의 '褪'에 관한 상세한 조사 보고는 원고 체재상 뺄 수밖에 없거니와, 대체로 원음에 충실한 폐쇄적 편찬자는 '톤'계열 곧 'トン'으로만 일관하고 있으며 '퇴'계열 곧 'タイ'까지 표음한 사전들은 비교적 현실음을 존중하는 태도도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タイ'라 적고는 반드시 관용음 표시인 '慣'자를 괄호로 묶어서 표하고 있다. "慣用音이란 反切에 관계없이 從來에 誤讀되어서 一船的으로 通하는 것을 뜻한다" (宇野哲人:新漢和大字典 凡例의 내용을 필자가 옮김.)고 했는데, 그 '誤讀된 日本 慣用音'을 우리가 그대로 따온 것이라 하면 잘못된 지적일까? 하기야 藤堂明保의 「學硏漢和大字典」(1978)에 따르면 '褪'을 北京音 표시로서 t' n, t'u 즉 '톤'계와 '퇴'계의 두 가지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簡字化로 내닫고 있는 중공 문자 정책에서 '褪' 대신에 '退'를 쓰는 데서 생긴 근래의 현상이라고 하면 더 할 말이 없어진다.
'褪'이 「訓蒙字會」에서 '돈'이었고, 「奎章全韻」 「全韻玉篇」에서 '톤'으로 되어 있다. 지금 「大漢韓辭典」(張三植)의 '퇴'는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관용음이든 통용음이든 한 마디 말도 없이 '퇴'라고 해 놓고 '吐困切'을 갖다 두었으니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끝에 가서 '本音톤'이라고 했으니 '本音'의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른 옥편에는 모두 字音을 '톤'이라고 해 두고 있는데, 같은 시기의 한국 한자음에서 사전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奎章全韻」에는 '톤'외에도 本音 표시로 '툰'을 하고 있다. 張님은 그의 「實用大玉篇」에서도 마찬가지로 '퇴'라고 해 두고 그 아래에 韻표시로 '願'자를 적고 있다. 그리고는 참고 자료로 일본음을 들고 있는데, 그 순서가 'タイ'가 먼저요 'トソ'이 뒤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本音云云은 없다. 어떻든 '퇴'와 '吐困' 사이에 설명의 괴리가 있고, '퇴'와 '願'韻 사이에도 괴리가 생겨 독자들이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사전 범례에는 '古音·本音·俗音'이라는 말도 나와 있고, 또 '轉音·訛音·慣音' 등에는 o표로써 그 연혁을 표시하였다고 하고 있는데, 이 '褪'자의 本音이 '톤'이다라고 했으니 '퇴'는 굳이 '慣音'이니 '訛音'이니 '俗音'이니 하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지금 대부분의 한자권이 '褪'을 '톤'이라고만 했지 다른 음 표시를 하지 않고 있는데, '퇴'라고 해 두고 慣音이니 혹은 俗音이니 하는 표시도 없이 기술한다는 것은 재고할 여지가 많다. 중국어에서는 褪手, 褪袖, 褪衣, 褪毛, 褪色'의 '褪'을 모두 t'un으로 발음하고 있다. 어떤 연구 기관에서나 국어연구소에서 이런 등속의 문제를 철저히 규명해 두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한다.
1945년의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조선어학회) 권말에는 '漢字의 轉音'이라고 하고 100자 가량을 예로 들어 "現用하는 俗音으로써 표준音을 삼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이야기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原音 '효'의 '嚆矢'는 '호시'로, '력'의 '輒轢'은 '알륵'으로, '류'의 '誤謬'는 '오유'로 각각 표준삼은 일이다. 1936년의 일로 생각이 되는데 그것이 30년도 채 가지 못하고 '효시, 알력, 오류'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적어도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 실린 내용은 당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언어 연구소 격인 조선어학회의 결단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큰 기관에서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결정한 내용들도 얼마 안 가서 폐기 처분이 되어야 함은, 그 동안 국어 정책상의 어떠한 경위를 막론하고서라도 당시에 내린 俗音 결정이 너무 성급한 것이었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가 없다. 하물며 어느 한 개인의 견해로써 사전 편찬에 임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그 기술 내용의 객관도를 의심받게 될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백 번 당연하다.
한편 우리의 국어 사전들은 모두가 '장원'을 '壯元'이라 밝히고 있다. 씨름판의 장원은 壯士들 중에서도 으뜸이니, '壯元'으로 혹은 '都壯元'으로 함은 이상할 것이 없겠지마는, 글로써 으뜸이 되었을 때까지 '壯元'이라 하는 것은 이해가 쉽게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일찍 茶山도 그의 「疋言覺非」에서 "詩로써 으뜸이면 '詩壯'이라 하고 賦로써 으뜸이면 '賦壯'이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장원 급제'한 사람은 문서의 맨 첫머리에 적히는 법이라서 '狀의 首' 곧 '狀의 元'을 '狀元'이라 한다. 그런데 어찌해서 모두들 '壯元'이라고 적느냐. 그것은 마땅히 '狀元'으로 써야 한다."고 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모두 '狀元'이라 되어 있고 '壯元'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 우리 국어 사전들은 약 200년 전부터 그릇 써 내려오는 '壯元'으로 일관하고 있다. 앞의 「大漢韓辭典」에서는 '壯元'은 없고 '狀元'만 있다. 비록 잘못된 '壯元'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오래도록 써 온 것이면 잘못된 것이라고 폐기할 수는 없다. '퇴색'을 '褪色, 退色'으로 하느니보다는 '장원'을 '壯元, 狀元'으로 허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처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퇴색(褪色)'의 역사도 '壯元' 정도면 어찌할 수 없겠지마는.
5. 국어 사전의 '문설주'
우리 국어 사전들을 보면 '문설주'의 어원 표시가 '門-'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 '설주'('문설주'의 준말이라 해 두고)의 어원 표시는 '-株'로 해서 '문설주'의 '주'가 '柱'임을 보이고 있다. 또 J.S.Gale의 「韓英字典」(A Korean-English Dictionary)(1911년)에는 '문설주'의 어원 표시 한자를 '門闑'로 하고 있으며, S.E.Martin의 「New Korean-English Dictionary」에는 '門-柱'라는 어원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의 어원 표시로 본다면 '문설주'의 '설'은 순수 국어 '서다(立)'에 근거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분명히 어원을 착각하고 있는 기술이라 생각이 된다. '문설주 설(楔)'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新字典」에는 '楔'을 '門兩榜柱棖也문설주, 柱也기동'이라 새겨 두었으며, '椳闑扂楔 〔韓愈文〕'이라는 전거까지 밝히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문이 서있게 하는 기둥'으로 오인되게 마련인 '門-柱'는 '문이 달려 있게 하는 기둥'이라는 뜻으로서의 '門楔柱'로 어원 표시가 고쳐져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