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어휘

단어를 쓸 때는 앞뒤를 생각하고

이현우 국립국어연구원


‘이야기’를 겪을 수는 없어

어디에선가 ‘여행에서 겪은 이야기’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얼핏 보아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겪다’라는 동사는 타동사이다. 그러면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목적어가 없어서 잘못된 표현인가? 아니다. ‘겪다’의 목적어는 ‘이야기’로, 없는 것이 아니고 단지 다른 위치에 와 있을 뿐이다. 목적어가 있는 것은 좋은데 그 목적어가 ‘겪다’라는 동사가 일반적으로 취하는 명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겪다’라고 쓰지 않는다. ‘겪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는 명사는 ‘곤란, 난항, 불편, 어려움, 진통, ……’ 등으로, ‘이야기’는 ‘겪다’의 목적어로 쓰일 수 없는데 목적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 된 것이다.

‘싣다’의 목적어로는 사람이 올 수 없어

몇 년 전에 어느 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치른 한국어 시험 문제 가운데 문장을 주고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라는 문제를 본 적이 있다. “버스 기사는 여자만 실어 주기로 했다.”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으라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쉽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거나 찾지 못하겠다고 하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만큼 우리말을 쓰는 데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짐 따위의 명사는 ‘싣다’의 목적어로 올 수 있지만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는 ‘싣다’의 목적어로 올 수 없다. 사람을 목적어로 한다면 ‘태우다’라는 동사를 써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싣다’가 타동사라는 것은 사전을 펴 보면 금방 알 수 있고 한국어를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면 사전을 펴 보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싣다’의 목적어로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는 올 수 없고 짐 따위의 명사만 올 수 있다는 것은 웬만큼 한국어 실력이 있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사전을 찾아보아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정보를 보여 주는 사전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어는 그 특성에 맞게 써야

단어마다 단어 나름대로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글을 쓸 때에는 단어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앞이나 뒤에 어떠한 유형의 단어가 어떠한 모습으로 와야 하는지 확인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이것을 사전에 의지해서 쓰기는 어렵고 글 쓰는 사람 각자가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글을 쓰는 좋은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짐 따위의 명사

'싣다'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

'태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