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쓰기

말과 글의 군살을 빼어라


민현식(閔賢植)숙명여자대학교



요즘은 사람들이 외모에 신경을 써서 군살빼기가 유행이다. 정부나 기업도 조직 개편이라는 군살빼기(다이어트)가 유행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군살이 너무 많다. 말이나 글에 핵심이 없고 군말들이 너무 많다.

우선 말을 할 때 ‘에, 마, ……’처럼 군소리 화법, ‘∼ 그럴 수 있을 것 같이 볼 수 있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과 같은 만리장성 화법, 핵심이 모호한 에돌리기 화법, 접속 논리가 흐트러진 횡설수설 화법, 근거가 모호한 두루뭉수리 화법 등 온갖 군살 화법 속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벌어지는 다툼과 비능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군살 화법은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야말로 ‘군글’이라고나 할까. 논지가 흐트러지고 핵심이 없이 두루뭉술하게 써서 ‘군글’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 물론 ‘군글’이란 말은 쓰이지 않고 글에서의 군더더기도 흔히 ‘군말’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말에서의 군말은 느껴도 글에서의 군더더기는 깨닫지 못하여 ‘군글’의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봄이 정확할 것이다. 또한 국어교육의 화법론이나 작문론 분야에서 어법의 군살 표현에 대해서는 그동안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동의중복 표현은 군살 1호


말과 글에서 나타나는 군살들로는 다음 (1)과 같은 동의중복(同義重複) 표현이 으뜸이다. 가령 ‘처갓집’은 ‘家’와 ‘집’이 중복된 것으로 ‘처가’로 쓰면 될 것이다. ‘약숫물, 해변가, 생일날’ 등도 동의중복 표현으로 사전에 올라 있지 않으며 오를 수도 없는 유사 합성어(또는 합성어구)이므로 다음 → 표 우측 예처럼 고치는 것이 좋다.

(1) 어휘적 동의중복 현상

갓집 처가

일날 생일

숫물 약수

변가 해변, 바닷가

바다 → 동해

종이 지질 → 지질, 종이 질

실내 체육 (‘관’과 ‘실내’ 중복) → 체육관

대관 고개 대관령

육 → 태교

역전(驛前) 역전

라인선줄 금, 선, 줄, 라인

농번 , 농번 농번기

무궁 무궁화

치다(‘拍’과 ‘치다’ 중복) →박수하다, 손뼉 치다

사시키다(‘使’와 ‘시키다’ 중복) →혹사하다

차다(‘蹴’과 ‘차다’ 중복) → 공 차다, 축구하다

위 예들에서 드러나듯이 동의중복 표현들의 대부분은 한자어와 고유어가 동의어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 국어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국어의 이러한 동의중복 현상은 어휘 차원(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대개 어휘가 아니고 유사 합성어나 구 차원이므로 어휘화 차원이라고 해야 하지만 편의상 어휘 차원으로 부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구, 절, 문장과 같은 통사적 차원에서 동의 요소가 중복된 경우도 있다. 전술한 ‘∼ 그럴 수 있을 것 같이 볼 수 있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의 예에서 ‘수 있을 것’과 같은 표현이 반복된 것이 그런 예이다. 다음 예도 마찬가지 예들이다.

(2) 통사적 동의중복 현상

왼쪽으로 回轉하여라. → 좌회전하여라. / 왼쪽으로 돌아라.

休가 계속되어 → 休日이 계속되어 / 연휴가 되어 / 연휴라

농담 비슷하게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 → 농담이었다.

이런 결과 인해 이래서, 이런 결과로

-ㄹ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ㄹ 수 있을 듯하다,

최고 으뜸이다 → 최고다 / 으뜸이다

穫을 거두다수확하다

많이 투하세요 →투고하세요

절반 은 → 대략 절반은 / 절반쯤은

상장을 여해 주다 상장을 수여하다 / 상장을 주다

姉妹緣을 맺다자매결연하다

반수 이상의→ 과반수의 / 반수 이상의

여행 기 동안여행 기간에 / 여행 동안에

그럴 수 있는 가능성그럴 가능성

거의 대부분의 학교 → 대부분의 학교

기타 다른 것 → 기타 / 다른 것

들어최근에 / 요즘 들어

푸른 空 → 푸른 하늘 / 창공

넓은 場 → 광장

위에서 특히 ‘연휴가 계속되어’라는 표현은 2, 3일씩 노는 연휴가 반복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한 번 연휴 때 이런 표현을 쓰면 잘못이다. 또한 문장이 바뀔 때마다 같은 뜻의 부사인 ‘따라서, 그러므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그러나, 하지만’이 교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부사성 군살이라 통사적 동의중복 현상으로 볼 만하다.

군말 어법의 유형


그러고 보면 군살도 신체 부위에 따라 다르듯이 군말이나 군글도 부위(部位)에 따라 명사+명사 유형(처갓집), 형용사+명사 유형(넓은 광장), 명사+동사 유형(박수 치다), 부사+부사 유형(아주 매우) 등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그 밖에 다음 (3ㄱ)과 같이 흔히 쓰는 상투적 표현이나 (3ㄴ)과 같은 번역투 속에도 동의중복적 요소가 있다.

(3) ㄱ. 쥐죽은듯이 고요한 밤 / 쟁반같이 둥근 달 / 백옥같이 흰 피부 /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ㄴ. ∼에 있어서(←∼に 於て) → ∼에서

(3ㄱ)에서 ‘쥐죽은듯’과 ‘고요한’이라든가, ‘쟁반같이’와 ‘둥근’, ‘백옥같이’와 ‘흰’, ‘억수같이’와 ‘쏟아지는’도 한쪽이 비유 구조인 것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뜻을 보이는데 특히 이들은 상투적 비유 표현들이라 글을 쓸 때는 참신한 비유를 찾아 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3ㄴ)은 일본어법의 번역 차용인데 처격의 ‘에’와 소재 표현의 ‘있어서’가 중복적이라 역시 다듬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동의중복 표현은 같은 뜻의 요소가 공연히 자리를 이중으로 차지해 종이를 낭비하고 그 부분을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리게 하여 독해 능률상 비경제적이다. 신체로 말하자면 동맥경화가 혈액 순환을 방해하듯이 동의중복 표현은 독해 과정에서 의미 전달에 장애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효율적 글쓰기를 위해서는 퇴고 시에 반드시 동의중복 표현을 찾아내고 다듬는 군살빼기 과정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