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한국어 교사의 구비 조건

강신항(姜信沆)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국어 교사로서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다. 우선 모음에 자신이 없다. 이중모음이야 그런 대로 발음을 할 수 있으나, 단어 안의 모음을 자꾸 틀리게 발음한다. ‘먼지’를 ‘몬지’라 하고, ‘학교’를 ‘핵교’, ‘그리고’를 ‘그라구’라고 발음해서 집안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작다’와 ‘적다’, (시험을) ‘치르다’와 ‘치루다’를 혼동하기도 한다. 어릴 때 충청도에서 자라난 뒤, 서울에 온 지 어언 50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충청도 사투리식 표현을 못 버리고 있다. 그러기에 모음뿐만 아니라 어미도 불확실하여 충청도 사투리식 어미에다가 표준어식 어미를 결합시켜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라고 할 것을 “그렇기 하면 안 된대유”라고 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어미가 불확실하니, 자연히 말꼬리가 분명치 않아서 사람들 앞에 나가서 말하는 것이 겁이 나고, 말하려는 뜻을 똑똑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뿐 아니라 표준 발음법도 제대로 몰라서, ‘흙을[흘글]’을 ‘흑을[흐글]’이라고 하고, ‘밟고[밥꼬] 지나가다’를 ‘발고[발꼬] 지나가다’라고도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한글 맞춤법을 ‘달달’ 외우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으련만, ‘쓰러진다’인지 ‘쓸어진다’인지 또는 ‘짤막하다’인지 ‘짧막하다’인지를 구별하지 못하여 항상 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야기이다, 소이다, 노래이다’, ‘먹어야겠다, 먹어서였다’라고 한다거나 ‘좋았다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식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습관이 되었는지 ‘느낍니다’를 ‘느껴집니다’로, ‘불리다’를 ‘불리우다’로 쓴 글도 있고, 쓸데없이 ‘ㄹ’을 덧붙여서 ‘하려고→할려고’, ‘가려고→갈려고’처럼 쓴 글도 있다. 더 걱정인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마구 쓴다고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덩달아 ‘차원’이니 ‘가치관’이니 하는 단어를 쓴 글들이다.

나 자신의 실력이 이러함에도 국어학 교수 40년 동안에 ‘우리말 현주소’니 ‘바른말 고운말’이라는 칼럼난에서 툭하면 남의 말이나 글을 가지고 트집도 많이 잡아 왔다.

다만 한 가지 천만다행(千萬多幸)인 것은 대학에서 작문 선생을 했지만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의 독본과 작문 선생을 거의 안 했다는 점이다. 만일에 모든 면에서 이와 같이 불안한 국어 사용자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를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기초부터 잘못 이끌었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근래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 어문(語文)을 공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나 정도의 소양을 가진 국어학 및 국문학 전공자는 물론, 심지어 다른 분야의 전공자까지도 모국어가 한국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감히 ‘한국어 교사’로 나서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명색이 한국어 교사라고 한다면, 우선 표준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국립국어연구원의 모든 간행물을 통해서 나라에서 정한 어문 관계 규정에 통달해야 하며 심지어 남북한 표기법 규정의 차이에 밝아야 하고, 남북한 표준어 용례의 차이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면으로 검토해 볼 때, 어느 한 가지에도 합격점을 받을 수 없는 나는 나라 안에서나 나라 밖에 나가서나 떳떳한 한국어 교사가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