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예절

송년과 신년의 언어 예절


허철구(국립국어연구원)


한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다. 해를 보내고 맞을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일이 가까운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다.
   흔히 새해에 세배를 드리지만 전통적으로 묵은세배라 하여 송년에도 절을 하였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또는 특별히 은고(恩顧)를 입은 어른을 그믐께 찾아 뵙고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에 고마움을 표했던 것이다. 묵은세배는 그냥 절만 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특별한 인사말은 따로 없었는데 때로 “신구세(新舊歲)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했다고도 한다. 요즘에는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도로 인사하고 “한 해 동안 수고했네” 정도로 받으면 무난하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와 같이 과거형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 방면에 밝은 분들에 따르면 이는 일본식 어법의 영향이라고 한다. 과거의 일에 대한 것일지라도 ‘고맙습니다’와 같이 정형화된 말로 인사하는 것이 옳다. 다만 지금도 옛날처럼 묵은세배를 고집하기는 어려우며 정초에 뵙고 겸하여 인사를 드려도 괜찮을 것이다.


송년에는 묵은세배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세배를 드릴 때는 그 예법을 잘 알고 하여야 한다. 세배할 때는 아무 말 없이 절을 하는 것이 옳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어른께 ‘절 받으세요’나 ‘앉으세요’ 하는 버릇이 있는데 불필요하며 좋지 않은 말이다. 이런 명령조의 말은 어른에 대한 예가 아니며 절 받는 사람의 기분만 상하게 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절하기 전이나 절을 하는 중에, 또는 절하고 나서 바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인사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예법에 어긋난다. 세배는 절하는 자체가 인사이므로 아무 말이 필요 없으며 그저 어른의 덕담을 기다리면 된다.

절을 받는 사람은 절이 끝난 다음에 덕담을 하게 되는데, “새해 복 많이 받게”나 “소원 성취하게” 정도가 정형이라 할 만하다. 물론 상대방의 처지에 맞게 “자네 올해는 장가 가야지” 등과 같은 덕담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과거에는 “자네 올해 장가 갔다지” 하고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말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다.

어른의 덕담이 끝나거나 혹은 덕담이 곧 이어 나오지 않으면 어른께 말로 인사를 할 수 있다. 그 인사말로는 “과세 안녕하십니까?”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정도가 좋고, 상대방의 처지에 맞게 “올해는 등산 많이 하세요” 등과 같이 인사할 수도 있다. 흔히 건강에 대한 인사말을 많이 하는데, 이 경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벌써 그렇게 늙었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수 무강하십시오”나 “오래오래 사세요”와 같은 인사말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배는 말없이 드리고 공손하게 덕담을 기다려야

얼마 전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지역의 동포 한국어 교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이 이제는 세배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을 알고는 착잡한 마음이 든 적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은 고난의 시절을 거치면서 잃어버린 전통을 새로이 알고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하였다. 그래서 숙소에서 우리 연구원의 한 여선생님이 세배하는 법을 직접 시범해 보이기도 하였다. 되새겨 보면 전통 문화를 줄곧 누려온 우리가 그분들에 비해 우리의 예절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더 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는 각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올바른 언어 예절을 익혀 정겹고 흐뭇한 심정으로 이즈음을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