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예절

"김 과장님은 은행에 가셨습니다"

허철구 국립국어연구원

자기보다 윗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높여 말해야

가끔 ‘-시-’를 넣어 높여 말해야 할지 아닌지에 대하여 생각이 엇갈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 예를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평사원이 부장에게 과장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김 과장은 은행에 갔습니다”처럼 낮추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김 과장님은 은행에 가셨습니다”처럼 높여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말의 올바른 언어 예절은 “김 과장님은 은행에 가셨습니다”(○)처럼 높여 말하는 것이다. 자기의 윗사람에 대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높여 말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 원칙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김 과장은 은행에 갔습니다”(×)처럼 낮추어 말하는 것을 매우 무례하게 느낀다는 점과 잘 부합한다. 따라서 학교에서 자기가 평소에 높여 말하는 동료 선생님에 대하여 교장 선생님께 말할 때라면 “김 선생님은 수업 들어가셨습니다(○)”처럼 ‘-시-’를 넣어 말하는 것이 올바르다.
   나이 드신 분들 가운데 특히 낮추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으로 일본식 어법의 영향일 뿐이다. 일본어의 예절은 이와 같은 경우에 낮추어 말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꽤 오래전에 일본의 언어 예절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우리나라 모 기업의 예절 교육서를 본 적이 있었다. 젊은층까지 여전히 이러한 잘못된 교육을 통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말의 예절은 어디까지나 윗사람에 대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높여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생님께 선배를 높여 말하는 것은 잘못

그렇다고 이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가정의 경우에는 예부터 압존법(壓尊法)의 전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할아버지에게 말할 때 “아버지가 진지 잡수시라고 하였습니다(○)”처럼 아버지에 대해서는 높이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는 세대(항렬)가 다르므로 직장에서의 부장과 과장 사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다만 요즘에는 이러한 전통도 변하여 윗분 앞이라도 아버지를 높이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어 “아버지가 진지 잡수시라고 하셨습니다(○)”처럼 높여 말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선배에 대하여 말하는 경우도 잘 가려 써야 한다. 요즘 적지 않은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들이 종종 선생님께 “김 선배님이 학교에 못 나오셨습니다(×)”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평소에 선배에게 존대말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선생님께 그 선배에 대하여 말씀드릴 때까지도 높여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정으로 치면 선배와 나는 같은 항렬이고 선생님은 윗 항렬이다. 따라서 당연히 “김 선배가 학교에 못 나왔습니다(○)”처럼 낮추어 말해야 한다. 이것은 가정에서 남편을 시부모에게 말할 때 남편을 낮추어 말하는 경우와 같다. 시부모에게는 “아범이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처럼 낮추어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큰 특징으로 경어법이 발달되어 있음을 들곤 한다. 그러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경어법이라면 그와 같이 말하기도 계면쩍은 일이다. 최근 경어법이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는데,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즘 선생님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면서 선배에 대해서는 엉뚱하게 높여 말하는 학생들의 언어 풍조는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