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정보화

컴퓨터 시대의 한글 사용


조남호 국립국어연구원

컴퓨터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데는 아직도 불편한 점이 있다. 『훈민정음』에서 정한 글자 만드는 원칙에 따르면 한글 글자(자모를 합하여 만든 음절 글자를 의미한다)는 수천만 개 이상도 만들 수 있다. 당분간은 이 원칙대로 글자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컴퓨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글 맞춤법에서 허용하는 초·중·종성의 자모로 만들 수 있는 글자로 제한해도 최소한 11,172자가 필요하다. 여기에다 한자나 옛 글자까지 포함하면 필요한 글자의 수는 더욱 많아진다. 이 정도조차 컴퓨터에서 사용하기 힘들다.


컴퓨터에서의 한글 구현 아직 불완전


손으로 쓰거나 활자로 책을 제작할 때는 필요하면 글자를 만들면 되었으므로 글자의 수는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컴퓨터에서는 미리 정의해 둔 글자만 사용할 수 있다. 때로 사용자가 글자를 새로 정의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한번 입력한 자료를 다른 목적으로 변환하여 활용하거나 다른 사람과 자료를 교환하기가 쉽지 않다.
   글자 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제 사용되는 일부 글자만 쓰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가능한 글자 중에서 실제로 사용된 글자를 조사하여 그 글자들만 인정한 것이다. 이른바 완성형 체계이다. 가능한 글자이지만 '웱, 됅, 욻, 삷'과 같은 글자는 거의 사용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이 체계의 중요한 약점이다. 거의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 글자도 써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표준어 규정 제2부 표준 발음법을 입력해 보자. 그러면 규정에 나오는 '꼳, 밷, 팯, 꿘'과 같은 글자는 '꼬ㄷ, 배ㄷ, 패ㄷ, 꿔ㄴ'처럼 나누어진다. 완성형 체계에 포함되지 않은 글자이기 때문에 한 글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172자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른바 조합형 체계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일부지만 옛 글자까지 사용할 수 있는 체계도 나와 있다. 현재 우리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중에는 완성형 체계만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자주 안 쓰는 글자를 써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체계를 사용하면 안 된다.
   컴퓨터에서 한글을 사용하기가 불편한 것은 컴퓨터가 미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문자는 알파벳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를 만들면서 컴퓨터에서 쓸 수 있는 글자의 수를 적게 해 둔 것이다. 한글도 영문자처럼 자모의 수는 많지 않지만 모아쓰기를 하기 때문에 글자가 많이 필요하여 어려움이 생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