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국어의 환경 보호


이익섭/국립국어연구원장

환경부의 전신인 환경청이 발족하였을 때 국어 환경청 같은 것도 생겨 날로 혼탁해 가는 국어를 바로 정화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높았었다. 하기는 그 이전부터 구한말의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의 맥을 잇는 국가기관이 설립되어 방황을 거듭하고 있는 국 어정책을 하루 빨리 정리해 주어야 한다는 학계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 다행히 「국립국어연구원」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짧은 역사에 비해 값진 일들을 많이 해 왔다. 국민에게도 의외로 널리 알려져 「가나다 전화」나 민원을 통해 갖가지 궁금증을 물어 오고 국어문화학교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이제 국어는 얼마만큼 바른 길을 찾아갈 바탕이 마련되었다고 할 법하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답답한 일들이 조금도 줄어들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는 ‘와이드 모닝’이니 ‘굿모닝 코리아’가 설치고 신문 제목에는 아예 ‘Metro Life’니 ‘Neo Travel’이다. ‘모스트 원티드’니 ‘백 투 더 퓨처’ 따위의 영화 제목? ?또 무슨 도깨비 같은 짓인가. 프로 야구팀들도 그 이름부터 그렇지만 가슴에 굳이 ‘Tigers’니 ‘Unicorns’라고 써 붙여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좋은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갓길’이 한 표본이 아닐까 싶다. 영어의 ‘shoulder’를 억지로 번역하여 ‘노견(路肩)’이라 하였다가 또 ‘길어깨’라 하였다가 용케도 ‘갓길’을 찾아내어 이제 많은 국민들이 그동안 뒤틀리던 심사를 잊 고 편안해 하고 있다. ‘사고 다발 지역’도 요즈음 ‘사고 많이 나는 곳’으로 한결 나아졌는데 이것도 이왕이면 어떤 도형 속에 넣어 ‘사고 위험’이나 ‘위험’이라고 하여 도로 표지의 기능을 높여 주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보면 볼수록 해야 할 일이 산적되어 있다. 내 책이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조차 어떤 것은 LEE로, 어떤 것은 YI로 분류되어 있더란다. RHEE엔들 없겠는가. ‘조(趙, 曺)’의 로마자 표기는 열 가지도 넘는다. ‘고등학교, 전라북도, 솔선수범’ 등은 누구 하나 띄어 쓰지 않 고 또 그것이 규범에 맞는데도 교과서에서는 이들을 철저히 ‘고등 학교’ 식으로 띄어 쓰고 있다. 방송에서도 사투리가 난무하고 국어 교사조차 표준어에 어둡다. 국립국어연구원까지 있으면서 이럴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온 나라가 합심하여 질 서가 잡힌 사회, 체통이 서 있고 격(格)이 있는 나라를 가꾸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하겠다. 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