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종덕 서울과학고등학교
큰 건물이나 방의 출입문이 여닫이로 되어 있을 경우, 흔히 손잡이 언저리에 다음과 같은 안내말이 적힌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기세요(○) |
당기시요(×) |
당기시오(○) |
미세요(○) |
미시요(×) |
미시오(○) |
이들 중, ‘당기세요’, ‘미세요’의 ‘-세요’는 1988년에 개정되어 198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표준어 규정 26항에 따라 어엿한 표준어 어미의 자격을 지니게 된 것이므로 올바른 표기라고 할 수 있다.
‘당기시오’, ‘미시오’의 ‘오’는 앞 음절의 ‘ㅣ’ 모음의 영향을 받아 ‘요’로 발음되는 일이 흔하긴 하지만, ‘표준 발음법’에서는 ‘되어, 피어, 이오, 아니오’에 한해서 [되어, 피어, 이오, 아니오]와 함께 [되여, 피여, 이요, 아니요]라고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므로(이때에도 표기는 ‘되어, 피어, 이오, 아니오’가 맞다.), [당기시요, 미시요]는 표준 발음이 아니며, 이런 비표준 발음을 그대로 적은 ‘당기시요, 미시요’는 올바른 표기가 될 수 없다.
알고 보면, ‘당기시오’와 ‘당기세요’는 상대를 높이는 양상이 다르다. ‘당기시오’는 격식을 차리는 표현, ‘해라, 하게, 하오, 합쇼’ 중 ‘하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주체 높임의 ‘-시-’를 결합시킨 것이므로 종결어미는 당연히 ‘-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기세요’는 격식을 차리지 않는 표현, ‘해, 해요’ 중, ‘해요’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해’와 ‘해요’는 ‘요’의 결합 여부에 의해 달라지는데, 이 ‘요’는 두루 높임의 조사이다. 그러므로 ‘당기다’의 ‘해’체는 ‘당기어→당겨’가 되고, ‘해요’체는 ‘당기어+요→당겨+요’가 된다. 여기에 다시 ‘-시-’를 결합하면 ‘당기시어→당기셔’와 ‘당기시어요→당기셔요’가 된다. 이 ‘당기셔요’도 표준 어법이다. ‘당기세요’는 바로 ‘당기시어요’의 ‘시어’가 ‘셔’로 축약되지 않고 ‘세’로 융합된 것이다(이러한 융합 현상은 ‘파랗+아→파래’와 같은 경우에도 나타난다). 이렇게 변동된 ‘세’는 항상 ‘요’와 통합된 형식으로만 실현되므로 일반 언중들은 ‘세요’를 원래부터 하나의 어미인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해요’체가 격식체의 ‘하오’와 ‘합쇼’체로 말할 자리에 두루 통용될 수 있는 것이어서, ‘하오’체인 ‘당기시오’를 ‘해요’체의 ‘당기세요’와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게다가 근래에 격식체인 ‘하시오’는 구어에서 자주 쓰이지 않고 ‘하세요’가 많이 쓰이는 경향이 있으므로, 모르는 사이에 ‘하시오’형은 문어적인 표현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발화시에는 ‘당기세요’를 사용하면서도 글자로 적을 때는 ‘당기시오’를 많이 쓰게 되고, 앞에서 말한 ‘ㅣ’모음 동화 현상에 따른 발음과 ‘당기세요’의 ‘요’에 이끌리어 ‘당기시오’를 ‘당기시요’로 잘못 적는 것이다.
결국, ‘당기시오, 미시오, 하시오’와 ‘당기세요, 미세요, 하세요’는 표기상의 차이만 지닌 것이 아니라, 문법적인 기능도 다른 것이다. 아울러 ‘당기시요, 미시요, 하시요’는 표준 발음도 아니고 맞춤법에 맞는 표기도 아니므로 어법에 맞게 ‘당기시오, 미시오, 하시오’로 적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