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예절


홍길동 선생님 귀하

허철구 국립국어연구원

국어연구원이 자리하고 있는 덕수궁의 나무들이 잎의 빛깔을 바꾸고 있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누구에겐가 안부라도 묻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작은 편지 한 통일지라도 언제나 정겨움을 준다.

편지는 형식을 잘 지켜야


그러나 편지 형식의 자그마한 잘못이 그 정감을 덜어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편지를 시작하고 끝낼 때 ‘To 영이’니 ‘From 철수’ 따위와 같이 쓴다면 편지글의 참맛이 나겠는가? ‘철수로부터’와 같은 from의 번역투 표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작은 것이지만 편지글은 그 형식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본래의 뜻과는 달리 상대방의 기분만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편지를 시작할 때는 위에서처럼 영어식 표현을 삼가고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써야 한다. 웃어른께는 ‘아버님 보시옵소서’라거나 ‘선생님께 올립니다’와 같이 쓰면 무난하며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자녀에게라면 좀더 정겨운 표현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리운 벗에게 보낸다’나 ‘사랑하는 딸에게’ 등도 좋은 표현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흔히 틀리는 것이 편지를 다 쓴 다음 서명할 때이다. 일반적으로 ‘홍길동 씀’이나 ‘홍길동 드림’처럼 자신의 이름만 쓸 경우야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공적인 편지에서는 직함을 쓰는 일이 잦은데 이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사장이라면 ‘홍길동 사장 올림’이라고 해야 하는지 ‘사장 홍길동 올림’이라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이름 뒤에 직함을 쓰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 다음에 직함을 쓸 수는 없다. ‘사장 홍길동 올림’이라고 해야 예의바른 것이다. 방송이나 강연회 등에서 ‘홍길동 교수입니다’니 ‘홍길동 의원입니다’ 따위와 같이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듣는 사람에게 대단한 실례인 셈이다.

‘○○○ 선생님 귀하’는 지나친 표현


대체로 편지 쓰기에서 저지르는 이러한 잘못은 무례해서가 아니라 그 형식을 제대로 모르는 데 기인한다. 형식에 맞추어 예의바르게 쓰려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간혹 예의가 지나쳐서 저지르는 잘못도 있다. 편지 봉투를 쓸 때 받을 사람의 직함 뒤에 다시 ‘귀하(貴下)’나 ‘좌하(座下)’ 등을 쓰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홍길동 선생님 귀하’나 ‘홍길동 사장님 좌하’ 따위와 같은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편지 봉투를 쓸 때는 ‘홍길동 선생님(께)’처럼 받을 사람의 이름과 직함을 쓰면 그것으로 충분히 높인 것이다. 직함이 없으면 ‘홍길동 귀하’와 같이 쓰면 된다. ‘귀하’라는 말로써 상대방을 충분히 높였기 때문에 이름만 쓴다고 해서 예의에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즉 직함이든 ‘귀하(좌하)’이든 어느 하나만 쓰는 것이 예의에 맞으며 둘 다 쓰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환갑 이상의 생일이면 ‘축 수연’ 쓸 수 있어


문안 편지 못지 않게 격식이 중요한 것이 축하나 위로할 자리에 부조를 할 경우이다. 이 때 봉투에 인사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요즘에 아예 인사말이 인쇄된 봉투가 쓰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보내는 이의 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환갑 생일 축하 자리라면 보통 봉투 앞면에 ‘祝 壽宴’이라고 쓴다. ‘壽宴’은 ‘壽筵’이라고 써도 마찬가지이며 ‘축 수연’과 같이 한글로 써도 된다. 물론 ‘수연’이라는 말 대신 생일 이름을 넣어 ‘축 환갑(祝 還甲)’, ‘축 회갑(祝 回甲)’, ‘축 화갑(祝 華甲)’과 같이 써도 좋다. 보내는 이의 이름은 봉투 뒷면에 쓴다. 그리고 부조하는 물목(物目)을 적은 단자(單子)를 반드시 넣도록 해야 한다. 단자에는 ‘축 수연’ 또는 ‘수연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와 같이 인사말을 적고 ‘금 몇 원’과 같이 보내는 물목을 적는 것이 예의바르다. 봉투나 단자는 흔히 세로로 쓰는 것이 보통이나 가로로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환갑 이상의 잔치에는 봉투나 단자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다. 특별한 나이라면 따로 마련된 인사말이 있다. 70세 생일에는 ‘축 고희연(祝 古稀宴)’이나 ‘축 희연(祝 稀宴)’, 77세이면 ‘축 희수연(祝 喜壽宴)’, 88세이면 ‘축 미수연(祝 米壽宴)’, 99세이면 ‘축 백수연(祝 白壽宴)’과 같이 쓸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생일 명칭이 없는 나이가 더 많다. 이 경우에는 회갑연에 쓰는 인사말인 ‘수연’을 그대로 쓸 수 있다. ‘수연’은 환갑 이상의 생일 자리이면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말이다.

편지는 보내는 이의 마음을 담아야


결혼식도 봉투나 단자를 쓰는 예절은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축 화혼(祝 華婚)’, ‘축 결혼(祝 結婚)’이 많이 쓰이며 ‘축 혼인(祝 婚姻)’, ‘축의(祝儀)’, ‘하의(賀儀)’, ‘경축(慶祝)’도 쓸 수 있다. 간혹 ‘婚’은 장가든다는 의미로서 ‘축 결혼’이니 ‘축 화혼’ 등을 신랑측에만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크게 귀기울일 만하지는 않다.

오랜 기간 열심히 일하고 정년 퇴임하는 분의 모습은 아름답다. 퇴임 자리에서는 ‘근축(謹祝)’, ‘송공(頌功)’이 좋은 인사말이다. ‘송공’은 그동안의 공적을 기린다는 뜻이니 더이상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다고 하겠다. 이 말에 익숙지 않으면 아예 ‘(그동안의) 공적을 기립니다’와 같이 문장투로 봉투 인사말을 쓸 수도 있다.

문상의 경우 조위금 봉투와 단자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부의(賻儀)’이며 ‘근조(謹弔)’라고 써도 좋다. 봉투 뒷면에는 부조하는 사람의 이름을 쓴다. 역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와 같은 인사말과 함께 물목을 적은 단자를 넣는 것이 격식에 맞다. 그런데 불가피한 사정으로 문상을 갈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때는 다른 이를 통해 부조만 할 것이 아니라 조장(弔狀)을 보내는 것이 좋다. 조장을 보낸다면 ‘부친께서 별세하셨다니 얼마나 슬프십니까? 부득이한 사정으로 곧 가서 조문치 못하고 서면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와 같이 쓰고 날짜와 ‘홍길동 재배(再拜)’와 같이 보내는 이의 이름을 쓴다. 이러한 정성어린 편지글은 받는 이의 슬픔을 한결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전자우편이 발달한 시대라서 편지 쓰는 일이 더 잦아졌는지 모른다. 단지 정보만 주고받는 편지가 아니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전달되는 편지가 좋다. 그리고 형식을 잘 알고 따르는 것은 그 편지에 담긴 마음을 한결 아름답게 만들지 않을까?

특별한 생일(나이)의 이름

60세: 육순(六旬) 61세: 환갑(還甲)·회갑(回甲)·화갑(華甲)

62세: 진갑(進甲) 70세: 칠순(七旬)·고희(古稀)

77세: 희수(喜壽) 80세: 팔순(八旬)

88세: 미수(米壽) 90세: 구순(九旬)

99세: 백수(白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