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쓰기


도둑을 지키는 개?

민현식 숙명여자대학교

지난 호에서 우리는 단어를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ㄱ) 표기를 바르게 하고 (ㄴ) 단어를 정확히 사용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번 호에도 그런 예를 몇 가지 더 살펴본다.

(1) 오랫만에 쉴려고 시골집에 들렸다가 들녁에 불려 나가 노동의 댓가만 톡톡이 치뤄야 했읍니다.

‘오랫만에’는 ‘오랜만에’가 맞다. ‘오랜만’은 ‘오래간만’의 준말로 보아 ㄴ 받침을 쓰는 것이다. ‘오래간만’은 ‘오래가다’의 관형형 ‘오래간’에 의존명사 ‘만’이 붙은 것이 명사로 합성된 것이다.

‘쉴려고’는 ‘쉬려고’가 맞다. ‘-려고’를 ‘-ㄹ려고’로 하거나 ‘-ㄹ라고’로 함은 모두 잘못이다.

‘들려서’는 ‘들르다’가 기본형이고 ‘ㅡ’ 탈락 규칙에 의한 활용을 하므로 ‘들러서’가 맞다. 위 예문 뒷부분에 나온 ‘치뤄’도 ‘ㅡ’ 탈락 용언 중에 자주 틀리는 예다. 같은 유형으로 자주 틀리는 단어로는 ‘담그다’도 있다. 이들을 ‘치루다, 담구다’로 알고 ‘치루어, 치뤄; 담구어, 담궈’로 적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잘못이며 ‘치러, 담가’로 적어야 한다.

‘들녁’은 ‘들녘’이 맞다. ‘댓가’는 한자어의 사이시옷 규정(맞춤법 30항)에서 사이시옷을 쓰는 여섯 단어(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가 아니므로 ‘대가’가 맞다.

‘톡톡이’는 ‘톡톡히’로 적는다. ‘-읍니다’는 현 규정에서 어느 경우든 쓸 일이 없어져 ‘-습니다’로만 써야 한다.

유의어 혼동 현상


다음으로 비슷한 뜻의 단어들을 혼동하는 ‘유의어(類義語) 혼동 현상’도 많은데 이를 예방하려면 평소부터 각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고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2)

ㄱ. 조개(*껍질, 껍데기)

ㄴ. 일(사업, 가게)를 (벌이다, *벌리다)

ㄷ. 이불을 (들치다, *들추다)

ㄱ'. 사과(껍질, *껍데기)

ㄴ'. 팔을(*벌이다, 벌리다)

ㄷ'. 과거를(*들치다, 들추다)


사전들에 따르면 ‘껍데기’는 ‘달걀, 조개, 소라, 호두 등의 겉을 둘러싼 딱딱한 겉 부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달걀 껍데기, 조개 껍데기…’ 등이 맞다. 아울러 ‘껍데기’는 ‘이불 등의 알맹이를 뺀 겉 부분’이란 뜻으로도 쓰여 ‘이불 껍데기, 요 껍데기’라는 말도 쓰인다. 반면에 ‘껍질’은 딱딱한 것이 아니며 ‘과일 등의 질긴 겉 부분’을 가리켜서 ‘사과 껍질’의 예처럼 쓴다.

따라서 겉켜가 딱딱하냐의 여부에 따라 ‘껍데기’와 ‘껍질’을 구별한다. 그러나 유행가 가사에도 ‘조개 껍질 묶어…’라는 것이 있고 ‘달걀 껍질’도 ‘달걀 껍데기’보다 많이 쓰여 오용이 심한 것이 현실이지만 사전대로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벌이다’는 ‘일을 벌이다, 사업을 벌이다, 가게를 벌이다’처럼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 쓰며 ‘벌리다’는 ‘팔을 벌리다, 밤송이를 벌리다’처럼 간격을 넓히는 경우에 쓴다.

‘들치다’는 ‘이불을 들치다’처럼 물건의 한쪽을 들어올릴 때 쓰며, ‘들추다’는 ‘책을 들추어보다’처럼 무엇을 뒤지거나 ‘과거를 들추다’처럼 숨은 일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에 쓰인다.

관련어 혼동 현상


다음으로 단어의 오용 중에는 서로 관련되는 단어가 발화 과정에서 혼동하여 나타나는 ‘관련어(關聯語) 혼동 현상’도 많다.

(3) 도둑을 잘 지키는 우리 집 개는 미국에서 나오신 육촌 아저씨를 보자 마구 짖어댔다.

개는 집을 지키는 것이지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위 예의 앞부분은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개’라는 정상적인 표현에서 서로 이웃한 관련 단어 ‘집’과 ‘도둑’이 발화 실수로 뒤바뀌면서 ‘도둑을 지키는 개’로 잘못 발화된 것이다.

이러한 관련어 혼동 현상은 말을 빨리 하다 보면 ‘인접어 도치 현상’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인접어 도치 현상’으로 부를 수도 있는데 언어 생활에서 자주 나타난다. 가령 ‘맨발 벗고 뛴다’라는 표현도 흔히 듣는데 논리적으로는 ‘신발[또는 양말] 벗고 맨발로 뛴다’라는 표현이 맞다. 그런데 발화 실수로 ‘신발[양말]’이 쓰일 자리에 인접어 ‘맨발’이 먼저 발화되면서 ‘맨발 벗고…’가 습관화한 것이다. 그러나 사전들에서도 ‘맨발 벗고’는 아직 관용 표현으로 올리지 않고 있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런 비논리적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얼음이 얼다’는 ‘물이 얼음으로 얼다’이므로 개념 논리로는 ‘물이 얼다’가 맞지만 흔히 ‘얼음이 얼다’로 쓰인다. 이것은 문법 논리에서 동족 목적어(同族目的語) 표현이라 하는 ‘춤을 추다’와 비슷한 현상으로 보아 동족 주어(同族主語) 현상으로 인정하자는 주장도 가능하여 개념 논리와 문법 논리의 판정은 쉽지 않다.

이런 표현들을 관용으로 인정하는 경우를 비유법 논의에서 볼 수 있다. 즉 사물과 관련이 있는 명칭을 들어 대신하는 비유법을 아예 ‘환유법’으로 인정한다. 가령 ‘극장 구경가다, 술병을 들이켜다, 낚싯대를 던져 고기 잡는다, 학교 끝나다’의 예도 ‘영화 구경가다, 술을 들이켜다, 낚싯줄을 던져…, 수업 끝나다’가 맞지만 흔히 환유법 차원에서 용인한다.

그러나 ‘축구 차다, 미술 그리다’의 경우는 ‘공 차다, 그림 그리다’의 환유법으로 보기는 지나치므로 고치는 것이 좋다. 이상의 여러 예가 비록 비유법 차원에서 용인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가급적 정확한 표현을 쓰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문장 (3)은 관련어 혼동 현상 외에 더 다듬을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 나오다’는 미국을 중심에 놓고 우리나라를 주변국으로 보는 비주체적 표현이므로 ‘미국에서 오신’이나 ‘고국에 오신’으로 해야 옳다.

이런 예로는 ‘미국에 들어가다’와 같은 표현도 있다. 이것도 ‘미국에 간’이나 ‘미국에 건너간’으로 해야 옳다. 그 밖에 우리나라와 대비하면서 ‘미국 본토에서는…’이나 ‘일본 본토에서는…’과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우리 스스로를 식민지 국가로 인정하는 표현처럼 오해를 일으키므로 삼가야 한다.

촌수에서 홀수 촌수는 아저씨뻘이고 짝수 촌수는 동기뻘이므로 위 문장의 ‘육촌 아저씨’도 ‘오촌 아저씨’나 ‘육촌형’을 정확히 따져 써야 한다.

최근에 소 떼를 북한에 제공한 것을 가리켜 ‘소 떼 방북’으로 표현한 신문이 많았는데 ‘방북’(訪北)은 사람이 주어일 때 쓰며 귀환을 전제로 할 때 쓰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번에 보낸 소들은 돌아올 소들이 아니었으므로 ‘소 떼 북송’ 또는 ‘소 떼 북행’ 정도가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이처럼 무심코 쓰는 어휘 표현들도 잘 살펴보면 부정확하여 더 고칠 수 있는 어휘가 많으므로 글을 쓰고는 끊임없이 퇴고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