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이녁’을 어찌할까요?

이승재 가톨릭대학교

‘이녁’은 우리가 잘 모르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준어이다. 1936년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 ‘이녁’을 표준어로 규정한 이래로 현재의 여러 국어 사전도 모두 이를 따르고 있다. 이 책의 61쪽에서는 ‘이녁’을 명사 ‘自己’로 풀이하면서 ‘이편’을 비표준어라고 하였고, 76쪽에서는 ‘당신의 卑稱’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녁’이 과연 표준어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을까? 남부 지방에서는 ‘이녁’을 자주 사용하지만 중부 지방에서는 좀처럼 쓰지 않는다. 국립국어연구원의 말뭉치를 검색한 결과 박경리, 문순태, 송기숙, 김정한, 한무숙, 김원일, 현진건, 이기영 등이 ‘이녁’을 자주 사용한 소설가로 밝혀졌다. 이 중에서 한무숙을 제외하면 모두가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이다. 한무숙은 서울내기이지만 부산에서 성장하였으므로 경상도 방언을 곧잘 이용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녁’은 주로 남부 지방에서 사용되는 방언임이 확실하다.

표준어 ‘이녁’은 남부 방언의 하나


남부 방언에서는 ‘이녁’이 두 가지 용법으로 쓰인다. 하나는 재귀대명사 ‘저, 자기’의 용법이고, 다른 하나는 2인칭 대명사의 용법으로서 평대하는 상대, 즉 ‘너’라고 할 수 없고 ‘당신’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대를 지칭할 때에 사용된다.

(1) 이녁 일은 이녁이 알아서 해야지. [제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2) 이녁이 나설 일이 아니라오. [당신이/자네가 나설 일이 아니라오.]

그런데 최근에 나온 어느 국어 사전에서는 ‘이녁’을 (ㄱ) 상대를 조금 낮추어 이르는 말, (ㄴ) 자기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 하였다. (ㄴ)은 1인칭 대명사 ‘저’를 풀이한 것으로서 다음의 예를 들었다.

(3) 이녁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시어 빚 갚을 날짜를 좀 미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에 따르면 ‘이녁’이 2인칭 대명사이면서 동시에 1인칭 대명사로도 쓰인다는 모순에 빠진다. 또한 두 뜻풀이에서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 것도 빗나간 것이다. ‘이녁’은 표준어의 ‘자네’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당신’에 해당하기도 하므로 ‘낮추어 이르는’ 말이 아니다. 친구 사이나 평대하는 상대에게 쓰이기 때문이다.

표준어 승격에 대한 기준 필요


중부 방언에서는 ‘이녁’을 사용하지 않고 중부 방언과 남부 방언의 인칭 대명사 체계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오해나 착오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이녁’을 남부 방언이라 하여 표준어에서 제외할 것인지 이왕 표준어에 오른 것이므로 잘 살려 쓸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표준어들을 마냥 덮어둘 수는 없다. 방언에서 표준어로 잘못 승격된 것들을 가려내어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방언을 표준어로 승격시킬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