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시브로’를 피우면서

이승재 / 가톨릭대학교

이번에 ‘시브로’라는 이름의 담배가 새로 나왔다. 애연가의 한 사람으로서 맛이 어떤지를 확인하려고 한 대 피워 보았다. 산뜻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동시에 우러나왔다.
   ‘시브로’는 우리말을 이용한 담배 이름이라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글로리, 오마샤리프, 디스, 겟2’ 따위의 외국어 이름보다 얼마나 곱고도 새뜻한가?


겉멋으로 고어자 ‘丶’를 쓰는 때가 많아

그러나 고어자(古語字)인 ‘丶’를 아무 거리낌없이 썼다는 점은 큰 흠이라 하겠다.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丶’는 문자의 목록에서 빠져 있다. 따라서 이를 이용하여 표기한 상품명은 사실상 한글 맞춤법을 어긴 것이 된다. ‘丶’를 이용하여 상품명으로 삼은 또다른 예로 문서 작성기의 하나인 ‘글’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글’의 ‘丶’는 잘못된 표기이다. ‘한글’의 ‘한’이 ‘크고 넓다’는 뜻의 ‘한’에서 왔다는 학설과 ‘대한제국’의 ‘한’에서 왔다는 학설이 있는데, 둘 다 ‘丶’가 아니라 ‘ㅏ’로 적어 오던 것들이다. 따라서 ‘글’의 ‘丶’는 고어자를 자유롭게 실현하는 문서 작성기라는 점을 선전하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정확한 표기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브로’의 ‘丶’가 정확한 표기인지 의심스럽다. 이 단어는 고어 자료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현재의 국어사전에는 ‘시나브로’로 표기되어 있다. 만약 겉멋으로 ‘丶’를 이용하여 ‘시브로’라고 표기했다면 이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서울·경기 출신의 대부분이 ‘시나브로’의 뜻을 잘 모른다는 점을 들추고자 한다. ‘시나브로’는 주로 전라도와 인근 경상도 지방에서 사용되는 부사로서 ‘천천히, 찬찬히, 하나씩하나씩’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국어 교과서의 어떤 글에 ‘시나브로’가 쓰인 적이 있어 그 이후에는 국어사전에도 오르게 되었다. 문필가의 글 하나가 계기가 되어 원래는 방언이었던 ‘시나브로’가 표준어로 승격된 셈이다. 이것은 방언이었던 ‘멍게’가 표준어의 자격을 획득한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시나브로’는 남부 방언에서 주로 사용

오래 전에 이미 취사용 상품명에 ‘시나브로’가 쓰인 적이 있고 이제는 ‘시나브로’가 표준어로 승격되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걱정거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국가에서 전매하는 담배 이름을 정할 때, 전에는 저쪽 방언을 따 이름을 정했으니 이제는 이쪽 방언을 따서 정하라면서 생떼를 쓰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시브로’를 피울 때마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고유어 담배: 아리랑, 개나리, 샘, 하나로, 시브로
외국어 담배: 글로리, 디스, 오마샤리프, 심플, 겟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