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한글의 자랑스러운 개성

이익섭 /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훈민정음, 즉 한글은 개성이 강한 문자다. 그 개성은 아무도 넘보기 어려운 개성이요 아무도 흉내내기 어려운 개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경탄해 마지않을, 누구나 매력을 느낄 자랑스러운 개성이다.
   절묘한 조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첫째로 꼽을 만한 개성이다. 그것은 먼저 자모(字母) 28자의 구성에서 확인된다. 자음 글자이든 모음 글자이든 우리는 28자를 뿔뿔이 따로 만든 것이 아니라 기본 글자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는 거기에 획을 더하거나 그것들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즉 자음 글자는 ‘ㄱ, ㄴ, ㅁ, ㅅ, ㅇ’을 기본자로 삼고, 나머지는 다음처럼 발음이 차츰 더 거세어짐에 따라 획을 하나씩 덧붙여 만들어 나갔다.

ㄱ → ㅋ ㄴ → ㄷ → ㅌ ( ㄷ → ㄹ ) ㅁ → ㅂ → ㅍ ㅅ → ㅈ → ㅊ ㅇ → ㆆ → ㅎ ( ㅇ → ㆁ)

이럼으로써 한글은 조직성이 높은 문자가 된 것이다. 가령 ‘ㅋ’을 보면 그것이 ‘ㄱ’과 관련되는 소리를 대표하되 ‘ㄱ’보다 더 거센 소리임을 짐작할 수 있고, ‘ㅅ, ㅈ, ㅊ’은 서로 같은 계열의 소리임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t나 d, 또는 k나 g 사이에서 그들이 동일 계열의 소리임을 보여 주는 어떤 꼬투리도 찾아낼 수 없는 것과 비교해 볼 일이다.
   모음 글자도 ‘丶, ㅡ, ㅣ’를 기본자로 하고, ‘ㅡ’와 ‘ㅣ’에 ‘丶’를 결합시켜 만들어 갔는데 여기에도 허술한 점이 하나 없이 절묘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양모음(陽母音)인 ‘ㅏ, ㅗ’는 ‘丶’를 오른쪽과 위쪽에 배치하고 음모음(陰母音)인 ‘ㅓ, ㅜ’는 왼쪽과 아래쪽에 배치한 것이나, 이중모음(二重母音)인 ‘ㅑ, ㅕ, ㅛ, ㅠ’는 ‘丶’를 두 개씩 넣어 만든 것이나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ㅏ, ㅓ’의 획은 ‘ㆎ’처럼 ‘·’의 모습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를 완전히 별개의 모양과 체계로 만든 것부터 한글의 조직성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본 글자를 만들고 나머지 글자를 거기로부터 파생시켜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글이 이원적(二元的)인 체계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글의 조직성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삼원적(三元的)이라고나 할까, 이른바 모아쓰기까지 고안해 낸 것이다.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를 따로 갖추고 있는 자모문자(字母文字), 또는 음소문자(音素文字)라면 으레 ‘ㅅㅗㄴㅂㅏㄹ’처럼 한 자모씩 풀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원칙일 뿐 아니라 보통은 그 방법밖에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손발’처럼 그것을 절묘하게 묶는 길을 찾았다.
   컴퓨터로 한글을 찍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나아가 좀 엉뚱한 발상이 떠오를 때도 있다. ‘손발’을 치려면 자판을 여섯 번 눌러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지우려면 두 번만 누르면 된다. 이런 체험을 세계 어느 문자를 치면서 경험하겠는가. 자모문자이면서 모아쓰기라는 특이한 방식을 채택한 한글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엉뚱한 발상이 떠오르는 것인데, 획을 나타내는 키를 하나 만들면 ‘ㅋ’도 ‘ㄱ’을 치고 그 키를 누르고 ‘ㄷ’도 ‘ㄴ’ 다음에 그 획키를, ‘ㅌ’은 거기에 획키를 다시 누르면 되도록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획의 모양이 일정치 않아 어렵겠지만 어느 글자 다음에서는 자동적으로 거기에 맞는 모양으로 바뀌도록 만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ㅔ’나 ‘ㅚ’는 그 원리가 똑같은데 ‘ㅔ’와 달리 ‘ㅚ’는 ‘ㅗ’를 누르고 ‘ㅣ’를 눌러 결합시키고 있지 않은가.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ㅑ’도 ‘ㅣ’를 누르고 획키를 두 번 눌러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하나의 유희일 수도 있고 현실성이 없어 고려할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글은 그러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문자 체계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우리는 갑자기 즐거워짐을 느낀다. 얼마나 조직적인 글자이면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만일 자판을 축소해야 하고 키의 수를 제한해야 하는 사정이 생긴대도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조합해서 찍도록 하면 우리는 아무 걱정도 없지 않은가. 상상만으로도 이런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의 개성은 그 제자 원리의 독창성과 과학성에서도 빛이 난다. 특히 자음 글자의 기본자 다섯 자를 바로 그 발음을 내는 데 쓰이는 발음기관에서 본떠 만들었다는 것은 그 누가 감히 꿈이나 꾸었던 일인가. ‘ㅁ’을 입 모양에서, ‘ㅅ’을 이[齒] 모양에서, ‘ㅇ’을 목구멍 모양에서 따온 일은 그나마 단순한 편이다. ‘ㄱ’을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에서, ‘ㄴ’을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에서 본떴다는 것은 얼마나 고도의 정교한 음성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 한글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 세계 만방에 소리쳐 자랑할 만하며, 우리는 이 하나로 세계 어느 민족에도 뒤지지 않는 우수하고 우수한 민족이라고 어깨를 펴야 한다. 영국의 언어학자 샘슨(Sampson)은 그의 저서 『문자 체계』(1985)에서 제7장을 전부 한글에 할애하면서 그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은 아주 작고 멀리 동떨어져 있는 나라이지만 우리 언어학자에게는 두 가지 면에서 더없이 중요한 나라다.” 하나는 13세기에 활자를 만든 일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15세기에 “가장 과학적인 문자 체계” 또는 “이 세상 최상의 자모”로 평가받는 한글을 창제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Han’gŭl 또는 Hangul은 우리나라의 등록상표가 되어 가고 있다. 사실 가장 대표적 상징물이요 가장 확실한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글은 그 탄생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개성적이다. 다른 나라 문자들은 누가 만든지도 모르게 조금씩조금씩 다듬어지며 만들어졌다. 그래서 흔히 ‘문자의 발명’의 ‘발명’은 진정한 의미의 발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종이라는 영명(英明)한 성군(聖君)이 있어 그야말로 책상에 앉아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어느 날 하나의 발명품을 세상에 공포하였던 것이다. 한글날이라는, 세계 유일의 문자 기념일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물론 이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글의 개성은 하나같이 자랑스러운 것들이다. 선인들 중에는 모아쓰기를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것 하나만은 세종의 실수라고 몰아붙인 이도 있었다. 무식은 가끔 사람들을 이처럼 무모하게 만든다. 모아쓰기를 버리면 한글의 개성은 반 이상 죽는다. 조그만 편의를 위해 개성을 죽이는 일은 우둔한 짓이다. 더욱이 모아쓰기는 독서 능률을 높여 주는 좋고 좋은 방식이다. 영어처럼 풀어 써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음절 단위로 끊어 읽는다고 한다. 그런데 한글은 미리 음절 단위로 끊어 모아쓰기를 하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그리고 실제로 ‘늙으니, 늙어서, 늙도록’을 풀어쓰기로 해 보라. 얼마나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모습인가. 우리말처럼 조사와 어미가 더덕더덕 붙는 첨가어의 표기에는 어디에서든 ‘늙’이 한눈에 들어오는 모아쓰기야말로 절묘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모아쓰기는 한글을 가장 한글답게 하는 요소요 우리의 일상 문자생활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게 해 주는 고맙고 고마운 방식이다.
   한글을 생각하면 우리는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복이 달아나지 않도록 늘 경건한 마음으로 한글을 가다듬고 나라를 생각하고 민족의 앞날을 설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