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모꼬지’와 ‘모듬’

이종덕 / 서울과학고등학교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라는 시에 ‘목거지’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이것은 ‘모꼬지’의 방언이다. 이 말은 ‘집회(集會)’를 뜻하는 말로서 다음과 같이 일상 생활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오는 시월 초아흐렛날 가을 모꼬지가 있사오니 모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꼬지’는 흔한 말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임’은 ‘집회’ 외에 ‘단체’ 또는 ‘집단’의 뜻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단체’ 또는 ‘집단’을 뜻하는 ‘모임’ 대신 ‘모듬’과 ‘모둠’이 혼용되는 일이 있어서 ‘모듬’이 옳은지 ‘모둠’이 옳은지 궁금해진다.
   ‘모이다’에 해당하는 옛말에 ‘몯다’가 있었다. ‘모꼬지’는 본디 이 ‘몯-’에 접미사 ‘-지’가 결합하여 파생된 단어로서 ‘몯지’라고 쓰였던 것이다. ‘모으다’에 해당하는 말로는, ‘몯다’의 어간에 사동접미사 ‘-오-’가 결합되어 파생된 ‘모도다’가 있었다. 이 ‘모도다’는 모음조화가 깨어지면서 ‘모두다’로 쓰이게 되었고 그 형태가 방언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모듬’은 ‘모임’, ‘모둠’은 ‘모음’과 같은 뜻을 지닌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듬’이나 ‘모둠’은 둘 다, 중세국어나 근대국어의 시기에 명사로서의 자격을 지니고 쓰였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 방언에 ‘모임’이란 뜻으로 ‘모듬’이란 단어가 남아 있을 뿐이다.
   ‘몯다’와 관련된 현대국어 어휘로는 ‘모들뜨기’, ‘모둠발’ 따위를 들 수 있고, ‘모두’나 ‘모든’도 이 ‘몯다’와 관련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음식점에서 쓰이는 ‘모듬회’(국어사전에 따르면 ‘모둠회’가 맞는 표기이다)란 말도 ‘몯다’의 흔적이 남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임’의 뜻으로 ‘모둠’이란 말이 쓰이게 된 빌미는 ‘모둠발’에 있는 듯싶다. 어엿한 사전 표제어에 ‘모둠’이 들어간 말이 있으므로 세밀한 의미 분석이 없이 쉽게 ‘모둠’이란 말을 끄집어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모둠’은 ‘모임’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모임’의 뜻으로 쓰일 수 있는 형태는 방언으로 보나 어원으로 보나 ‘모둠’이 아니라 ‘모듬’이 나아 보인다.

‘모듬’과 ‘모둠’은 비표준어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는 ‘모임’의 의미로 ‘모둠’이란 형태가 사용되는 일이 있다. 조별 학습을 꾀한 지도안에서 ‘제1조’를 ‘첫째 모둠’, ‘제2조’를 ‘둘째 모둠’이라고 적은 것을 보았는데, 굳이 쓰려면 ‘모듬’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둠’이나 ‘모듬’ 대신 ‘모임’이란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고 흉잡히지는 않을 것이므로 교사들이 앞서서 이런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모듬’이나 ‘모둠’은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한 말이라서 교육 현장과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하기에는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용어를 순화하고자 할 때에는 새 말을 만들어 쓰기보다 이미 있는 말 중에서 고르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방법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