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표기


김 주 원 / 서 울 대

1. 머리말
    2000년은 이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 한 가지는 점토구결, 부호구결 등으로 불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방식으로 구결을 표기한 각필 자료의 발견이다. 이는 구결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국어사 더 나아가 문화사적으로 보아서도 획기적인 대발견이다. 천 년간 묻혀 있던 비밀이 세기 말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구결 연구를 함에 있어서 지금까지는 고문헌을 볼 때 석독구결이든 음독구결이든 구결자가 없으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각필로 새겨진 구결이 없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자료의 양도 많아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의 문헌에 표기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11세기 문헌의 것도 상당히 있다. 조사가 더 진행되면 시기가 더 올라가는 문헌이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구결 문헌은 국어사 연구에 많은 빛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사건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7월 7일에 고시되고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 5년간 수 차례의 논의를 거치고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쳐서 확정된 안인데 주요한 변화는 로마자가 아닌 식별 부호 즉 어깻점이나 반달표를 없애고 'ᄀ, ᄃ, ᄇ' 등의 여린 소리를 어두에서 'g, d, b'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제시한 여러 편의 글이 나왔다.
    이하에서는 '문자와 표기'에 관련된 2000년 한 해 동안의 연구 성과를 일별해 보기로 한다. 논문의 제목을 통해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글에 대해서는 따로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2. 차자 표기

2.1. 차자 표기 일반
    "국어 문자체계의 발달"(이승재)는 차자표기법의 원리를 밝히고 그것을 분류하였으며 그것에 따라 어휘 표기 이두, 구결, 향찰에 대하여 비교하면서 종합적으로 논하였다. 결론에서 차자표기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각종 어휘 표기, 이두, 구결, 향찰 등 여러 하위 분야를 두루 고려해야 할 것이며, 연구의 목표를 목록이나 용례를 나열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어사의 재구에 두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음운론, 문법론, 어휘론 등 언어학의 여러 하위 분야를 섭렵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참고로 이 글은 1997년에 제출된 원고였으나 출판교의 사정으로 2000년에 비로소 공간된 책에 실린 논문이다. "차자표기 자료의 격조사 연구"(이승재)는 이전의 연구와는 달리 이두, 구결, 향찰 자료를 종합하여서 격조사 형태를 확정하고 선후 관계를 판단하고 정리한 논문이다. 마무리 부분에서 격조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비교 대조 및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국어사연구와 차자표기 자료"(남풍현)는 비전공자를 위한 강연문이다. "조건법 연결어미 '-면'의 발달"(남풍현)은 15세기에는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면'이 13세기까지의 석독구결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다가 13세기 후반의 순독구결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점에 착안하여 이것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해서 논한 글이다. <선어말어미 '-거/어-'의 통시적 연구>(이금영)는 '-거/어-'의 문법 기능의 변화를 다룬 박사 학위 논문인데 이두와 향찰 그리고 구결 자료를 종합적으로 고찰함으로써 '-거/어-'가 역사적으로 완료상의 상범주에서 확인법의 서법범주로 변화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동명사어미 'ᄅ'의 사적 고찰"(정영숙)은 향찰 구결 등의 자료를 통해서 동명사어미 'ᄅ'의 역사를 다룬 글이다.
2.2. 부호구결
    앞서 말한 대로 2000년은 국어학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발견과 더불어 새로운 자료가 추가되는 중요한 한 해가 되었다. 즉 角筆 자료의 발견이 그것인데 각필이란 한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끝이 뾰족한 상아나 대나무 등으로 한자의 특정 위치에 점이나 선 같은 부호를 누르거나 그어서 읽는 방법을 표시한 것을 이른다. 아마도 각필을 처음 기입했던 때에는 맨눈으로 읽을 수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별 생각 없이 문헌을 보아서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특수 제작된 스코프의 불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최초로 발견된 것은 성암고서박물관 소장의 초조대장경인 『유가사지론』 권8의 것인데 발견 당시의 기쁨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남풍현의 다음 글로 대신하려 한다. "이는 대발견이다. 한국에서도 角筆을 사용해 왔었다는 사실, 11세기 초의 실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角筆點으로 쓰여진 석독구결이라는 사실, 또 점으로 표시되어 일본의 訓點과 계통이 이어지리라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을 감안할 때 이 자료의 발견은 새로운 자료의 출현을 열망하던 우리들을 흥분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남풍현, "고려시대의 점토 구결에 대하여", p.7) 이 글에는 발견 경위와 이 글을 쓰던 당시까지 발견된 문헌을 개괄하고 있는데 위의 자료 외에 국보 또는 국보급인 『유가사지론』 권5(11세기, 성암고서박물관), 『유가사지론』 권3(11세기, 호림박물관), 『주본화엄경』 권6, 22, 36, 57(11세기, 성암고서박물관), 『주본화엄경』 권31(11세기, 호림박물관) 등에서 각필이 발견되었음을 적고 있다. 점토 또는 부호구결은 한자를 사각형으로 보고 각 변과 중단 등 21개의 변별적인 위치에 점 또는 선을 그어 표시한 것인데, 경전이나 종파에 따라서 부호의 기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어 각필 부호에 대한 국어학적 논의를 하고 點圖를 그리고 그 의의를 논하였다. 그리고 점토구결의 해독을 통하여 볼 때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의 순독구결은 묵서 석독구결에서 직접 발달한 것이 아니라 점토 석독구결을 거쳐서 발달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 문헌에 각필이 있음을 처음 발견한 학자는 小林芳規 선생 등이다. 그러나 이보다 수년 전 남권희 교수가 발견한 기림사본 『법화경』에 묵서로 점이나 선 등의 부호가 기입되어 있어서 그것이 일본의 훈점 자료와 유사한 것임을 남 교수가 지적했다는 사실을 밝혀 놓고 있다. "고려본 법화경의 點吐 순독구결에 대하여"(남풍현)은 이에 대한 연구이다. "새로 발견된 각필(角筆) 부호구결과 그 의의"(이승재)는 『유가사지론』 권8의 부호 구결의 해독 방법에 대하여 다루었는데, 부호의 종류는 점(·, , ∵ 등), 직선(|, |,  ̄, ―, /, \ 등), 직각선(┌, ┐, └등), 곡선(하향, 상향)등이 있다고 보았다. 해독의 순서 또는 방법으로 첫째, 각 한자의 통사적 통합구조와 계열 관계의 파악, 둘째, 동일한 문법 형태가 올 자리를 상호 대조함, 셋째, 점과 선을 구결자와 상호 비교함. 넷째, 여러 차자표기 자료에서 특이하게 읽히는 한자에 주목하여 부호의 음상을 추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독되고 음상이 확정된 부호구결을 통해서 중세국어 초기(즉 고려시대 초기)의 문법론뿐만 아니라 음운론까지도 서술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한편 명칭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이러한 각필을 일컫는 명칭이 연구자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부호구결이라고 이름 붙일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의로서 지금까지 일본의 훈점이 일본의 고유한 한문 독법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 자료들을 통해서 한국 즉 조선반도의 한문 독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나타내었다. "일본의 오코토點과 한국의 초조대장경에서 보이는 부호구결의 비교"(윤행순)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훈점과 한국의 각필 자료를 비교한 것이다. "일본에 있어서 角筆문헌 연구의 현상과 전망"(小林芳規)에서는 각필 자료가 전 세계에 두루 퍼져 있는 것임을 밝히고 일본     각필 자료의 현황을 소개하고 한국의 각필 자료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상에서 새로 발견된 부호구결 자료의 연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것이 새로운 자료이고 국어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 줄 자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기존의 구결 자료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지적될 만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 부호는 기능만을 표시할 뿐 음상을 직접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위치의 점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어떤 음상을 나타낸다고 확정된다고 하더라도(예를 들어서 글자의 가운데 일점이 찍히면 '[은]'을 나타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자 구결 자료와의 대응을 통한 추정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연구된 바에 의하면 부호구결이 단순히 기능을 나타낸다고만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서 동일한 음상을 가진 부사화접사 '-이'와 주격조사 '-이'가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부호로 표시되는 점 등을 볼 때 이 부호는 단순히 기능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대신한 것으로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모든 부호에 다 적용될 수가 없겠지만(가령 문자구결에서도 역독점은 음상은 없고 기능만을 가진 것이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서 문자구결과의 관계가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최근 수년 간 새로 나타난 석독구결 자료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전통적인 구결 표시 방법이 거의 밝혀져 있고 이번에 발견된 자료들이 양적으로 많고 다양하여 문자와 부호간의 이러한 괴리는 상당히 좁혀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이 자료들은 국어사 연구를 위한 획기적인 자료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고려시대의 자료들은 대개가 국보이거나 국보급인 귀중본이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가 없다. 이에 구결학회에서는 공동작업을 하여 원문을 입력하고 거기에 부호를 옮겨 적은 것을 공개한 바 있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가 기대된다.
2.3. 구결
    "『유가사지론』의 '由氵-'와 '如支-'의 독법에 대하여"(김영만)는 종래에 '由氵-'를 '-'로 읽고 '如支-'를 '다'로 읽는 것에 대하여 '由氵-'를 '말삼-'으로, '如支-'를 '-'으로 읽어야 함을 주장한 글이다. "존경법 선어말어미 '-■/■[시]-'의 형태음소론적 연구-구결자료를 중심으로-"(이승재)는 구결자 '■, ■'의 음가가 [시]임을 밝히고 '-시-'의 형태음소론적 특성을 밝혔다. 그 가운데 구결자료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음운론적 정보를 밝혀 음운변화에 대해서 논하였다. "석독구결의 수사에 대하여"(이승재)는 석독구결 자료의 수사에 붙은 구결토를 검토하여 수사의 음상을 밝힌 글이다. "14세기 국어의 시상과 서법"(김영욱)은 14세기 음독구결 자료인 『범망경』의 구결을 대상으로 하여 15세기 국어와의 관련성을 논하면서 14세기 국어의 '--, -더-, -리-, -거-, -니-'를 확인하고 시제, 동작상, 서법에 대해서 다룬 글이다. 황국정, "석독 구결의 두 관형사절에 대해"(황국정)는 관형사절 '-/-ꑣ'과 '-/-'이 실현된 구문의 통사적 차이를 다룬 글이다. 논문 말미에 문헌별 기능별 색인을 붙여 놓아 참고하기에 편리하다. "석독구결 '尸'의 해독에 대하여"(황선엽)은 석독구결과 향가에서 '尸'를 'ᄅ과 ᄉ'의 두 가지 음가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 구결자의 음절문자적인 특징에 비추어 볼 때 같은 음가를 가진 형태소는 같은 문자로 적음이 원칙이라는 전제하에서 검토하여 '尸'를 'ᇙ'로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화엄경십사』 구결 기능체계"(김두찬)는 12세기 중엽 석독구결 자료인 『화엄경』 권14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차자체계, 기능체계를 밝히고 원문 해독문과 현대어역을 실었다. 구결 가운데 몇몇 자에 대해서는 새로운 독음을 제시하였다. 남경란의 일련의 연구("'남권희 (나)본' 『능엄경』의 입겿 연구", "『능엄경』의 새 자료에 대하여―'남권희(다)본'과 '파전(坡田)본'―", "'남권희 (라)본' 『능엄경』 입겿에 대하여")는 최근에 새로 발견된 능엄경 구결 자료를 소개하고 정밀한 컴퓨터 작업을 통하여 구결자에 대한 통계를 보이고 있는데 새로운 자료분만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되고 연구된 바 있는 능엄경의 구결자(낱글자와 결합 글자)에 대하여 전반적인 비교를 하여 도표로 제시하여서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요즈음 힘든 작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연구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 기초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문연본 『영가증도가』의 구결에 대하여"(박부자)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기입된 음독구결에 대한 연구이다. 논문 말미에 구결토 색인이 있는데 원토와 후대토를 구별하기 위하여 음영 처리를 하였다 하나 편집, 인쇄 과정에서 없어진 듯하다.
2.4. 향찰
    『향가와 고려가요』(김완진)는 저자의 『향가해독법의 연구』(1980)를 전후하여 쓴 글과 최근까지 계속 관심을 보여온 향가의 해독과 고려가요의 해석에 관한 글을 모은 것이다. "지정문자와 향가 해독"(성호경)은 문학전공자에 의해서 쓰여진 국어학 논문으로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 내용은 종래의 향가 연구에서 지정문자로 분류된 '攴'와 '內' 글자가 자신은 음가를 가지지 않은 채 인접한 글자를 훈으로 읽게 지정하는 기능을 갖는다는 지정문자임을 인정하면서도 종래와는 달리 '攴'는 뒤따르는 글자를, '內'는 앞 선 글자를 훈으로 읽게 지정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어학자들과는 달리 앞뒤 문맥을 중시한 문학적 해독의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새로운 가설이 갖고 있는 문제점도 함께 제시하고 있어서 논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국어 선어말어미 '--'와 그 변화"(정재영)는 다른 표기('-飛', '-臥-')와 함께 '-內-'가 '--'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문법사적인 변화를 논한 글이다. "광수공양가 '良焉多依'의 형태론적 고찰"(이용)은 종래 이것을 '-란-'로 해독하였음에 비해서 15세기 국어와의 문법사적 연속성을 중시하여 '-언대-'로 해독한 글이다. "향가의 격조사 '-衣[/의], -矣[/의]'에 대해"(황국정)는 향가에서 속격조사로도 처격조사로도 쓰이는 '-衣, -矣'에 대해서 둘의 기능이 차이가 있으며 처격조사가 속격조사에서 발달했을 것이라는 이전의 가설을 부정하였다. "향가의 첨기 현상에 대한 연구"(이동석)는 종래 말음첨기로 불리던 것을 음절의 종성을 첨기하는 경우는 '종성첨기'라고 부르고 형태소 내의 마지막 음절을 첨기할 경우는 '음절첨기'라고 부르기를 제안하고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첨기 모두가 선행음절의 종성과 후행음절의 모음이 연결될 때 연음이 되는 현상을 발음나는 대로 적는 표기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2.5. 이두
    『이두연구』(남풍현)는 지금까지의 저자의 이두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단순히 이전의 논문을 모은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새로운 논문을 추가하고, 이전의 논문도 상당한 정도로 수정하여 저자의 최근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새로 추가된 논문은 "광개토대왕비명", "고구려 성벽 각서", "서봉총은합우명", "임신서기석명", "무술오작비명", "남산신성비명" 그리고 "새로 발굴된 신라시대 이두"인데 마지막 논문에서는 최근 새로 발굴된 창녕 관룡사의 '석불대좌명', 영암군의 '매향비명', 동해시의 삼화사 '철불배명'의 이두를 해독하였다. "중원고구려비문의 해독과 이두적 성격"(남풍현)은 1978년에 발견된 비를 재조명한 글인데 새로운 해독을 하고 그 해독을 바탕으로 이두적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이 신라 이두로 연결됨을 보인 논문이다. 이승재의 "토론"은 남풍현의 위의 논문에 대한 보완적 성격을 지닌 내용의 토론문이다.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 연구"(정재영)는 이두로 작성된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755년)의 전문을 재해석하고 국어학적 가치를 논한 글이다. "신라 경덕왕대 『화엄경』 사경 발문의 기초적 검토"(이희관)는 위와 동일한 자료를 다소 다른 각도에서 다루었는데 이두에 대한 언급도 있다. 박성종의 "율곡의 토지매매문기에 대하여"는 율곡 선생이 자필로 작성한 이두문 토지매매문기를 전문 전재하고 이두문을 해석한 후 현대어역을 붙인 논문이다. 여러 번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해석된 문서일지라도 다시금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음을 보인 논문이다. "한글 토지매매명문과 배지(牌旨)에 대한 일고찰"(정승혜)에서는 이두문과 한글 명문들을 다루었다. "한글 牌字와 明文"(홍은진), "조선후기 한글 고문서의 양식"(홍은진)에는 한글로 쓰인 이두 문서들에 대하여 그 해석과 문서 양식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두자 「味」의 독법과 한자음의 관계"(권인한)는 이두에서 쓰인 「味」를 기존의 독법인 '맛'보다는 '말'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주장한 논문이다. 그 근거를 중국 측 문헌과 우리의 삼국의 고유명사 표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우리 한자음의 상고음적 요소를 거론하고 있다. 그 외 보충적인 증거들도 기존의 자료를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 "고려시대 구결자의 문자론적 검토"(황선엽)는 구결자를 문자론적 관점에서 다룬 글이다. 구결자가 형태소 문자라는 한 견해에 대하여 종래의 견해대로 음절문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말음첨기와 형태음소적 표기 원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2.6. 고유명사 및 어휘 표기
    『동해시 지명지』(박성종)는 강원도 동해시 일원의 지명을 조사하고 해석한 것이다. 『서울경기지역 지명 및 방언』(이명규)는 서울 경기지역의 땅이름과 방언을 조사한 것이다. "고구려어 표기 한자음의 형성 기층과 그 어휘 연구"(최남희)는 삼국사기 지리지의 고구려 지명어를 분석하여 고구려어 표기 자료는 후기 상고음과 일부 중고음을 기층으로 하여 형성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기』, 『유사』의 同音 異文 자료"(김무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자료 중 或作, 或云, 一云 등으로 표기된 동음을 나타내는 복수 음독 자료를 정리하여 객관적 자료로 확립하려고 했다. "김해지역 지명 연구(1)"(김봉모)는 경남 김해지역의 땅이름을 조사하고 해석한 것이다. 땅이름 연구 전문지인 『지명학』에는 "押梁/押督·奴斯火/其火 연구"(김종택), "고대 지명어소 '忽'에 대하여"(김종학), "지명 건지산·공수골·마전·금산·봉산의 말밑"(김준영), "옛지명 해석에 관한 문제들"(도수희), "전남 동부 지역의 마을 이름 연구"(위평량), "일왕가 조상의 고지와 일본 南九州의 '韓國'고"(이병선), "'잉-', '인-'형 지명의 한 해석"(황금연)과 같은 논문들이 실려 있다. 땅이름의 연구를 통해서 국어사 연구의 한 보탬이 되고자 한 논문들이다. "필암서원지 노비보의 인명 연구"(조강봉)는 1941년 작성된 노비들의 인명에 대한 글이다.
    땅이름, 사람이름 등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로서 국어학적 의미가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이들 어휘가 가지고 있는 보수성으로 해서 기록된 시기보다 훨씬 이전의 언어 상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국어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 자료에 대한 해석은 연구자의 의도에 따라서 임의적, 비과학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일찍이 이러한 경우를 경계하여 이들 자료를 '요술주머니'(김형규, 1949년)라고 불렀던 것이다. 고유명사에 대한 연구가 국어학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그것이 국어학계에서 정립된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와 모순되지 않아야 하며 한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 체계를 고려하는 가운데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표기법

3.1. 훈민정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간행한 『겨레의 글 한글』은 2000년 10월 3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린 「겨레의 글 한글」 특별전의 전시도록인데 한글 문헌들의 사진을 시대별로 배열, 해설하였으며 뒷 부분에는 논문이 실려 있다. "한글 문화사론"(소재구)은 한글 사용을 문화사적 관점에서 기술한 것인데 기계화 시대의 한글 문화에 대해서 논하였다. "한글의 창제와 보급"(안병희)에서는 한글이 창제된 배경과 방법, 이후의 보급 등에 대해서 논하였는데 특히 중앙과 지방의 보급 상황에 대하여 자세하게 논하였다. "개화기 이후의 한글 운동의 발자취와 그 전망"(고영근)에서는 남한, 북한, 러시아, 중국, 미주 등에서의 한글 운동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한글 문화권의 앞날"(김정수)에서는 한글의 우수성을 살려서 옛 글자 살려쓰기, 풀어쓰기 등 앞으로 개량해서 써야 할 방법, 방향 등에 대해서 논하였다.
    "이사질이 제시한 훈민정음 창제 원리(1)"(안대희·김성규)는 1750년대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훈음종편』에 대한 소개인데, 당시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쓴 훈민정음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에 대해서 살펴본 것이다. "훈민정음해례 「용자례」 분석"(이상혁)은 용자례 자체가 체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나오는 어휘들이 기본어휘 표본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서지 사항을 다룬 글로 "『훈민정음』"(임용기)은 해례본을 대상으로 삼아 국어학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와 서지 사항, 체제, 내용 등을 살핀 글이다. "연구 자료의 영인"(김영배)에는 부주의한 영인에 의하여 자료가 왜곡될 수 있음을 훈민정음 영인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였다. "훈민정음 머리말의 건축적 해석"(김원)은 일반인의 한글 사랑 정신을 담은 글이다. 『한글새소식』에는 이외에도 한글 사랑에 대한 글이 많이 담겨 있다.
    "훈민정음의 재조명과 조음 기관의 상형 관계"(김석연·송용일)는 7년 전 김석연 자신이 『한글』 219호에 쓴 "정음 사상의 재조명과 부흥"을 다시 반복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국어 표기법 정신"(이응백)은 '세종대왕이 정음을 지음에 있어서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할 뿐'이었음을 강조하고 쉬운 맞춤법으로 고쳐야 하며 한자를 적절히 섞어 써야 함을 주장하였다.
3.2. 표기법
    『북한 및 재외교민의 철자법 집성』(고영근)은 통일을 대비한 일련의 준비 작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 나온 것으로 『조선어 신철자법』(1948/4949), 『조선어 철자법』(1954), 『조선말 규범집』(1966), 『조선말 규범집』(1988 개정판)을, 해외에서 나온 것으로 연해주 한인 사회의 『고려문전』(1930), 연변자치주의 『조선말 규범집』(1985)을 간단한 해설을 붙이고 영인한 자료집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맞춤법이 남북한에서 어떻게 달라져 갔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조선어 신철자법』은 지금까지 구해 보기 어려웠던 자료인데 새글자 6자모에 관한 규정을 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그런데 자료를 영인하면서 원래의 쪽수를 지워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교육한글』(한글학회) 제13호는 "남북한 언어 문제 토론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모은 것이다. "남북의 말과 글자"(허웅)는 이전에 발표된 글인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를 지닌 글이어서 재수록된 것이고, "남북한 한글 맞춤법"(김계곤)은 맞춤법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맞춤법 통일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남북한 통일 어문규정 시안 마련을 위한 모색"(고창운)은 위의 논문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더 구체적으로 남한의 규정과 북한의 규정 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에 대해서 논하였다. 북한의 규정을 따를 만한 것이 더 많이 있다고 보았다. "국어의 남북 통일을 위한 과제"(홍종선)는 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남북한 1학년 1학기 교과서 분석을 통한 문자 지도 방법 비교"(김도남)는 역시 남북한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로서 남북한의 1학년 아동들에 대한 한글 지도 방법에 대한 비교 연구이다.
    "띄어쓰기의 원리와 현실"(양명희)은 우리글의 띄어쓰기가 쉽지 않음을 전제하고 문제가 되는 단어를 중심으로 원리에 입각한 설명을 시도하고 궁극적으로 쉽게 익혀 쓸 수 있는 '쉬운 띄어쓰기'로 나가야 함을 역설한 글이다. "개정된 북한의 띄어쓰기 규정"(전수태)과 "개정된 북한〈조선말 띄여 쓰기 규범〉소개"(최용기)는 2000년에 개정된 북한의 띄어쓰기 규정을 정리하여 소개한 글이다. "우리말 'ᅱ+ᅥ'의 준말에 대하여"(조규태)에서는 예를 들어서 '뉘어'의 준말의 경우 발음을 충실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누ᅧ'와 같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3.3. 옛 문헌의 한글 표기
    『정조대의 한글 문헌』(정재영 외)은 여러 필자들이 정조대의 한글 문헌의 특징과 성격을 살펴본 책인데 그 중 한글 표기법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 실려 있어서 그 시대의 표기법의 특징을 알 수가 있다.
    "ᄇ계 합용병서의 음운론적 고찰"(박종희)은 ᄇ계 합용병서의 ᄇ을 잠재음으로 본 것인데 최적이론에 기반을 두고 제약들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표면형에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고 보았다.
    각필 자료가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것과 더불어서 새로운 한글 문헌도 많이 발견되고 연구되었다. 아래의 자료는 발견되기는 그 이전이겠지만 올해 국어학적 조명을 받은 자료들이다. 아래의 연구는 문헌을 다루면서 표기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것들에 한정했다. "「장수경언해」의 표기와 음운"(김종택)은 새로 발견된 자료인 『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諺解』에 대해서 표기법에 대해서 정밀히 검토하고 이 문헌이 16세기의 자료임을 보였다. "『월인석보』 권4의 국어학적 연구"(김동소)에서는 몇 년 전 새로 발견된 『월인석보』 권4의 한글 표기를 다루었는데 방점, 사잇소리, 모음조화 표기, 각자병서, 끊어적기 등의 표기법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월인석보』 권19의 국어학적 연구"(김동소)에서는 새로 발견된 『월인석보』 권19의 한글 표기를 다루었는데 이미 발견된 월인석보와 차이는 없지만 모음조화의 예외에 주목하여 그 예들을 다 찾아 놓았다. "『월인석보 권19의 서지 및 『묘법연화경』 언해 권7과의 본문 대조"(남권희·남경란)은 이 책의 내용을 입력하고 법화경과 대조한 글이다. "『육조 법보 단경 언해』 하권 연구"(김동소)는 역시 새로 발견된 『육조선사법보단경언해』 하권의 복각본에 대한 연구인데 한글 표기, 방점 표기, 한자음 표기, 그리고 모음조화 표기에 대하여 위의 논문과 같은 관점에서 다루었다. "『번역소학』 권3·4에 대하여"(정재영)은 새로 발견된 번역소학 권 3, 4에 나타난 표기법이 다루어져 있다. "17세기말 국어사자료 『관세음보살보문품언해』에 대하여"(이호권)는 지금까지 무관심 속에 묻혀 있었던 이 자료를 발굴하여 국어사적 관점에서 논한 것이다. 규장각 소장본의 경우 간기가 없어서 국어사 자료로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을 동국대 소장본 등과 비교함으로써 간년과 간행지가 밝혀진 것이다. 그 표기로 보아서 이전 판본의 영향을 받지 않은 17세기 말의 국어 자료로 보았다.
    "십구사략언해 이본의 언어적 특징에 관한 비교 연구"(백두현)는 십구사략언해의 제 판본을 종합적으로 비교하여 표기법을 통한 음운 현상을 논의한 글이다. <『구급간이방』(언해)의 서지와 어휘 연구>(김남경), "『구급간이방』의 국어학적 연구"(김남경)에는 구급방언해의 한글 표기의 특징을 다루고 있다. "다산의 『아학편』"(정재영)에서는 이본들의 한글 표기의 차이를 다루었다. "『언문지』에 나타난 국어 음운 연구"(정경일)는 『언문지』의 저술 의도와 이 책에 나타난 우리 말과 문자에 대한 유희의 생각을 다룬 글이다. "『물명류고』의 이본과 국어학적 특징에 대한 관견"(전광현)은 유희의 필사본 『물명류고』의 이본을 대조하고 표기법과 음운 현상에 대해서 논한 글이다. "규장각 소장본 '순원왕후 한글 편지'의 고찰"(이승희)은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가 1837년에서 1852년까지 쓴 한글 편지에 대한 표기법과 음운 문법 현상에 대해서 다루었다.
3.4. 외래어
    "국어 사전에서의 외래어 접두사"(박형익)는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국어 사전에서 외래어 접두사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를 비교한 글로서 사전마다 달리 처리한 내용이 매우 많아서 국가 차원에서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통일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광고 언어 조사 연구-외래어 표기를 중심으로-"(최용기)는 광고에 나타나는 외래어 표기 중 잘못된 것들을 지적한 글이다. "외국 말글 홍수 속에 우리 말글의 위기"는 부산대 정문 앞의 2,125개 간판을 조사하여 통계를 낸 것인데 우리말이 10.7%에 해당되고, 한자말 43.8%, 외국말 33.8% 등으로 나타났음을 보이고 업종별로 비교한 통계자료도 제시하였다. 10년 전의 다른 연구자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여 우리말의 쓰임새가 점차 위축되고 있음을 논하였다. "옥외 광고물 외래어 표기 실태 조사 연구"(이경우)는 대전지역의 991곳의 옥외 광고물을 조사하여 고유어 외래어 등의 통계를 낸 글이다.
3.5. 컴퓨터 처리
    "국제정음기호의 제정과 그 유용성"(서정수·이현복)은 한글의 과학성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 쓰이고 있는 국제음성기호(IPA)를 대체할 목적으로 국제정음기호를 만들고 그것을 컴퓨터 글자판에 배치하는 방안에 대한 글이다. 저자들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보급하고 활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안마태식 통일 자판의 제안"(안마태)는 컴퓨터 글자판의 문제를 다룬 것인데 지금까지 나온 여러 가지 글자판을 비교한 후 자신이 고안하고 실험까지 마쳐 우수성이 증명된 글자판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 글이다. "음절 bigram 특성을 이용한 띄어쓰기 오류의 인식"(강승식), "음절 Bi-gram 정보를 이용한 한국어 OCR 후처리용 자동 띄어쓰기"(전남열 외)는 문자인식기를 통해서 구축된 방대한 자료를 이용하여 두 음절어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동 띄어쓰기 방법을 연구한 것으로 이 방법에 의해서 상당히 정확하게 띄어쓰기 오류를 인식하고 수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어 철자 검사기의 교정 기법 개선"(김광영 외)은 기존의 띄어쓰기를 포함한 철자 검사교정기의 성능을 보안하고 기능을 추가하기 위한 연구이다. "국제 문자 코드 한자 Super CJK 연구"(이재훈)는 한자문화권 국가의 문서편집기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한자 코드인 Super CJK에 대한 연구로서 한국의 입장에서 제안해야 할 부수, 부수에 따른 배열, 그리고 자형의 비교 등을 검토 연구한 글이다.

4. 로마자 표기
    2000년에 있었던 또 하나의 큰 일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7월 7일에 고시되고 시행되기 시작한 일이다. 이것은 지난 1984년부터 쓰기 시작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근간으로 한 로마자 표기법을 전면 개정한 것으로 표준 발음법에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그 주 내용 중의 하나가 정보화에 발맞추어 컴퓨터에서 입력 검색이 불편했던 특수 부호인 반달표와 어깻점을 없앤 것으로, 따라서 종전에 'ᄏ, ᄐ, ᄑ' 등을 'k', t', p'' 등으로 적던 것을 단어 첫머리의 'ᄀ, ᄃ, ᄇ' 등을 'g, d, b'로 적음으로써 'ᄏ, ᄐ, ᄑ' 등을 'k, t, p' 등으로 적게 된 것이며 모음도 '어, 으'를 'ŏ, ŭ'로 적던 것을 'eo, eu'로 적게 된 것이다. 그 외 여러 가지 면에서 개정되었다. 이 로마자 표기법의 개정은 한글 맞춤법과는 달리 외국과 연계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서 개정하는 일 자체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이 개정 작업은 상당히 오랫동안 추진되어 왔으며 한편으로는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쫓기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구난방격의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하면서 개정 작업이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개정 경위"(김세중)는 이러한 경위를 적은 글이며, "새 로마자 표기법의 특징"(정희원)은 이번 개정의 주요 내용을 잘 요약해 놓았다. "설득, 이해, 실천의 의지"(권재일), "확고한 의지, 광범하고 꾸준한 홍보"(김명식)는 정해진 새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효과적인 시행 방안에 대한 글이다. "성(姓)의 로마자 표기 방안"(허철구)은 "성의 표기는 따로 정한다"는 4조 2항의 규정에 따라서 성의 로마자 표기를 통일할 방안에 대한 글이다. '곽'씨의 현행 표기가 69종에 이르고 우리나라 성씨의 반에 가까운 156개의 주요 성의 표기가 평균 13.1개의 이종을 보이고 있다는 통계를 본다면 통일 방안을 제시하고 시행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제7항에서 인명 등은 그동안 써 온 표기를 쓸 수 있다고 하여서 한편으로 융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적인 규정의 시행 의지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새 로마자 표기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며 어떻게 규정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표기법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로마자 표기법 시안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당한 의견들이 여러 각도, 여러 방법으로 개진되었다. 그 중 2000년도의 간행물에 나타난 것으로는 "음운론적 관점에서 본 국어의 새 로마자 표기법"(김종훈)에서는 자음표기에 있어서 'ᄀ, ᄃ, ᄇ'은 모음 앞에서는 'g, d, b'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k, t, p'로 적는다는 규정과 'ᄅ'은 모음 앞에서는 ' r '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 l '로 적는다는 규정을 들어 1음운 2기호 표기가 된 점, 경음화 현상을 표기에 반영하지 않은 점 등을 비판하였다. "개정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문제점"(김진규)에서는 받침표기에 관해서 위의 논문과 같은 지적을 하였고, 표기법 제8항의 학술 연구 논문 등에서 한글 복원을 전제로 한 조항은 불필요하며 예외 조항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종전 로마자 표기법의 이론과 실용상의 문제점"(유만근)에서는 우선 M-R체계에서 ᄀ ᄃ ᄇ 음소에 각각 k/g, t/d, p/b 두 가지 글자를 배당한 것은 고안자 두 사람이 모두 전문 언어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1959년 문교부안에 대해서는 모음 'ᅥ'를 eo로 'ᅳ'를 eu로 표기하게 된 것이 가장 잘못된 것으로 보았다. "새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비판 기사를 읽고"(윤주환)는 주체성을 가지고 새 표기법을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어두의 'ᄀ, ᄃ, ᄇ'을 'g, d, b'로 표기하기로 한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쓰는 것은 한국인의 직관에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영어의 어두 'g, d, b' 자음도 거의 대부분 무성음으로 실현됨을 고려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우리말의 어말이나 자음 뒤의 'ᄀ, ᄃ, ᄇ'을 'k, t, p'로 적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이 있다. 모음 특히 'ᅥ, ᅳ'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있었다. 이러한 의견들은 일부 새 로마자 표기법에 반영되어 있는 것도 있고 반영되지 못한 것도 있다.
    한편 새 로마자 표기법이 시행됨과 동시에 홍보 책자가 나왔는데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지명과 문화재명 등 약 8,000여 항목을 신구 로마자 대조표를 통하여 보여주는 계몽 자료인 『로마자 표기 용례 사전』을 발간하였고 홍보용으로 『로마자 표기 이렇게 바뀌었습니다』와 『The Revised Romanization of Korean』과 같은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한편 국어문화연구소에서는 지명과 교통관련 이름, 관광 명소 등을 덧보태어 20,000여 항목의 용례가 담긴 『로마자 표기 용례집』을 발간하였다.
    "로마자 표기 변환에 관한 연구"(최규정 외), "한글의 로마자화/역방향 변환 프로그램"(강범모, 웹), "한/로마자 주소변환기"(언어과학, 웹) 등은 한글을 로마자로 바꾸어 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새 표기법을 보급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시행이다. 국내외의 학자나 관계자들이 통탄해 마지않는 사항은 한국처럼 어문 관련 규정이나 정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어문 후진국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비록 하루아침에 국제도시 PUSAN이 BUSAN으로 바뀌는 대변혁이 일어났지만 적극적인 홍보를 통하여 바뀐 표기법에 따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령 성의 표시에 있어서도 새로 만드는 여권부터 성씨를 로마자로 적을 때 국가 규정에 따르게 함으로써 큰 저항 없이 서서히 통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이상 고치지 않도록 더 완벽한 합의에 이른 후 시행했더라면 하는 것이지만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났고 국가 규정으로 고시된 이상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이 앞으로 남은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5. 마무리
    지금까지 2000년도에 출판된 문헌 가운데에서 문자 표기에 관한 논저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다. 2000년도에 일어난 큰 사건으로 각필로 된 부호구결을 발견한 것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고시되고 시행에 들어간 것을 꼽을 수 있었다.
    차자표기의 연구 동향을 보면 전반적으로 연구 내용이 심화되고 정치해짐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문법사에 대한 논문이 많이 나왔으며 종전에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도 많이 있다. 한편 차자표기 자료에서 문법적 정보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와는 달리 음운론적 정보도 얻을 수 있음을 몇몇 논문은 보여주었다. 앞으로 부호구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우리는 우리말의 특성에 대해서 더 많이 더 깊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구결 자료를 통하지 않고서는 고대국어를 포함한 중세국어 이전 국어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기 어려워졌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의 시행을 앞두고 많은 의견, 이견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었다. 각각의 의견은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경청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의견이 반영되기도 하고 반영되지 않기도 하면서 새로운 로마자 표기법이 고시되고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약간의 필요한 변개는 있을지라도 근본을 뒤흔드는 변개가 또 다시 있으면 안될 것이다. 이는 나라의 어문 정책의 부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들 것이므로 계획을 세워 제대로 시행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동일한 성을 평균 13가지로 적는 자유주의는 방임에 가까운 것이며 어문 후진국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앞으로 국가의 어문 정책이 신뢰를 얻어 국민 스스로가 따라갈 수 있게끔 하는 능력과 권위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