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어란 무엇인가?

김세중(국립국어연구원 어문자료연구부장)

제주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려는 계획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도 지역에 대한 영어 공용어화 발상은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의 일부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 필요한지 의아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같은 논의가 공용어의 개념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용어는 여러 언어가 쓰이고 있는 국가에서 행정, 입법, 사법 등의 절차에 사용하기 위해 지정한 언어를 말한다.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는 각 나라마다 수십 개의 부족 언어가 쓰인다. 그러나 어느 특정 부족 언어를 그 나라의 공용어로 할 경우 의사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는 영어,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나라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가 대표적인 다언어 국가인데 인도 역시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가 공용어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식민지 지배를 당하지 않은 나라 치고 제나라 언어 아닌 외국어를 스스로 자청해서 공용어로 채택한 사례는 없다. 유럽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폴란드, 체코,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은 다 제나라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나라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지 않다. 아시아의 경우에도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싱가포르 등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외국어를 공용어로 삼은 사례가 없다.
   외국인들이 제주도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계획이 구상된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인 관광객이나 사업가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관련 공무원들이나 업계 종사자들의 영어 구사 능력을 높이도록 하여 대처할 일이지 영어를 제주도의 공용어로 할 것까지는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 이렇듯 불필요한 일이지만 만약 굳이 시행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공문서가 한국어와 함께 영어로도 작성되어야 한다면 이를 위해 투입해야 할 노력이나 비용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온 도민이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영어를 배우기를 원치 않는 도민들은 끝내 영어 무능력자로 남을 것인데 이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을 뿐 아니라 소외감과 열등감 때문에 고통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세계와 활발히 교류하고 교역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고 사용하는 것과 공용어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 공용어는 이미 외국어일 수가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은 영어를 제2의 국어로 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어떤 외국어를 국어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필요하지 않다. 외국인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외국어 교육을 내실 있게 하고 강화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