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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소의 어원

홍윤표(연세대 교수)

   ‘황소’라고 하면 ‘소’ 중에서 어떤 소를 가장 먼저 연상할까? ‘누런 소’와 ‘수소’(소의 수컷)와 ‘큰 소’ 중에서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누런 소’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황소’를 ‘황우’(黃牛)라고 인식하여, ‘황소’를 ‘황’(黃)과 ‘소’[牛]로 분석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소’는 단순한 ‘누런 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운이 센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을 ‘황소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황소’는 ‘몸집이 커서 힘이 세거나, (몸집이 커서) 움직임이 둔하여 우둔한 소’를 뜻하는 것 같다. 그래서 ‘황소’는 단순히 ‘누런 소’가 아니라 ‘기운이 세고 몸집이 큰 누런 소’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황소’는 일차적으로 ‘소의 수컷’을 연상하지 않았다. ‘수쇼’란 단어가 별도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운이 센 누런 소’는 ‘암소’ 중에는 없기 때문에 ‘황소’는 당연히 ‘수소’를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황소’를 ‘큰 수소’로 뜻풀이하고 ‘황우’(黃牛)와 동의어로 처리하고 있다. 다시 ‘황우’(黃牛)를 찾아보면 ‘누런빛을 띤 소’로 풀이하고 ‘황소’와 동의어로 처리하고 있다. ‘황소’는 ‘수소’와 연관시키고 있지만, ‘황우’는 ‘수소’와는 연관시키지 않고 있다. ‘암소’ 중에는 ‘황소’가 있을 수 없지만, ‘황우’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소’는 ‘황우’와는 의미가 동일하다고 하기 어렵다. ‘흑우’(黑牛, 검은 빛깔의 소) 중에서 큰 수소를 ‘황소’라고 하지 않으며, ‘젖소’나 ‘얼룩소’ 중에서 큰 수소를 ‘황소’라고 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소’를 ‘누런 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다.
   ‘황소’는 원래 ‘황’과 ‘소’로 분석되지만, ‘황’은 한자 ‘황’(黃)에서 온 것이 아니다. ‘황소’는 ‘한쇼’의 변화형이다. 오늘날의 ‘황소’는 중세국어에 ‘한쇼’로 등장하여 18세기까지 쓰이었다.

    우흿 대믈  소로 티시며 싸호 한쇼 두 소내 자시며 <용비어천가(1447년) 87장>
   한쇼(大犍) <역어유해(1690년)하,30b>
   한쇼 <동문유해(1748년)하,38b>
   한쇼<몽어유해(1768년)하,32a>

   ‘한쇼’는 ‘한’과 ‘쇼’로 분석되는데, ‘쇼’는 오늘날의 ‘소’이다. 그리고 ‘한’은 ‘하다’의 어간 ‘하-’에 관형형 어미 ‘-ㄴ’이 붙은 어형이다. ‘하다’는 ‘크다, 많다’란 뜻을 가졌던 형용사인데, ‘한쇼’처럼 관형적 용법으로 사용될 때에는 ‘크다’란 의미로, 그리고 ‘하고 한 날’처럼 서술적 용법으로 쓰일 때에는 주로 ‘많다’의 뜻을 가진다. ‘한쇼’는 원래 ‘큰 소’란 뜻을 가진 어휘이다. 그래서 ‘한쇼’와 대응되는 한자어는 대부분이 ‘큰 소’란 뜻을 보인다.

   우희 대믈  소로 티시며 한쇼 두 소내 자시며(馬上大虎一手格之方 鬪巨牛兩手執之) <용비어천가(1447년) 87장>

   용비어천가(1447년)에 등장하는 ‘한쇼’는 ‘거우’(巨牛)와 대응된다. 즉 ‘(몸집이) 큰 소’란 의미이다. 원래 ‘한쇼’는 암소나 수소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몸집이 큰 소’이었던 것이다.
   역어유해(1690년)에는 ‘한쇼’로 풀이된 한자어로 ‘망우’(牛)와 ‘대건’(大犍)을 들었는데, 모두 ‘큰 소’라는 의미를 가진다. ‘수소’와는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소’의 암컷과 수컷은 각각 ‘암쇼’와 ‘수쇼’였다.

    주근 지아 묘졔 위야  암쇼 쳐셔 므 졀일의 졔 만나 비록 큰 눈이나 큰 비라도 반시 고 가 졔더라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열8,75b>
   암쇼(牡牛, 牯牛, 乳牛) <역어유해(1690년),하,031a>
   수쇼 고(牯) <훈몽자회(1527년)하,004a>

   ‘암쇼’와 대립되는 단어는 다른 동물 명칭의 암수 구별법과 마찬가지로, ‘수쇼’이었지, ‘한쇼’가 아니었다. 그런데 일부 동물 명칭에서 ‘암’과 ‘수’를 붙여 암수를 구별하지 않고 별도의 명칭을 붙이기도 하듯(예컨대, ‘암탉’과 ‘수탉’ 이외에 ‘암탉’과 ‘장닭’으로 구별하듯), 소에도 암수의 구별법을 ‘암’과 ‘수’로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암쇼’는 계속 사용되었는데, ‘수쇼’는 쓰이지 않고 그 대신으로 ‘한쇼’가 쓰이게 되었다. 그 결과로 19세기 이후에 ‘수쇼’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수소’(또는 ‘숫소’)가 쓰인 적이 있지만, 그 사용 빈도는 매우 적은 편이다.

   압방녜 뒤방녜가 첫새벽부터 숫소 암소들을 척척 거넘겨 타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소 멕이러 댄이든 것도 이 근방이다.<과도기(1929년),174>
   복돌은 열한살 된 칠선녀의 얼굴을 디려다보면서 숫소가 그 무엇을 보고 웃듯이 히 하고 웃었다. <암야행(1936년),276>

   그렇다면 ‘한쇼’가 ‘암쇼’에 대립하여 ‘수소’를 의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암소와 수소를 특징짓는 요소가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암소’는 ‘우유 생산’을 그 특징으로 하지만(그래서 ‘암소’는 한자어로는 ‘유우’(乳牛)’라고 하였다), 수소는 암소에 비해 ‘크다’는 점을 그 특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수쇼’는 점차 쓰이지 않고 그 자리를 ‘한쇼’가 차지하게 되었다. 16세기의 문헌인 훈몽자회(1527년)에는 ‘수쇼 고(牯), 암 (牸, 암소를 뜻함)’가 등재되어 있지만, 17세기에 간행된 문헌인 역어유해(1690년)에는 ‘한쇼(大犍), 악대쇼(犍牛), 암쇼(牡牛, 乳牛), 아지(犢兒), 어롱쇼(花牛)가 나열되어 있으며, 18세기의 문헌인 한청문감(1779년?)에는 ‘쇼, 한쇼, 암쇼, 악 쇼,  쇼, 야지’ 등이 나열되어 있어서 ‘암쇼’와 ‘한쇼’가 대립되는 어휘임을 보이고 있다. 이미 ‘수쇼’란 단어는 ‘한쇼’로 대치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한쇼’는 ‘큰 소’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동시에 ‘수소’라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이 시기만 하여도 ‘한쇼’는 단지 ‘큰 수소’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 ‘누런 소’란 의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누런 소’는 ‘한쇼’와는 다른 것이었다. ‘한쇼’가 ‘큰 수소’라면 ‘누런 소’는 한자어 ‘황우’(黃牛)의 우리말이었다. 한청문감에는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소가 소개되어 있다. ‘어룽쇼’(犁花牛, 얼룩소), 누루스러 쇼(淡黃牛), 빗쇼(靑牛), 졀빗 쇼(紅牛), 흰어룽쇼(花牛), 기슭 흰쇼(白肚낭牛), 머리 검고 몸 븕은 쇼(黑頭紅牛), 거믄쇼(黑牛), 흰쇼(白牛)‘ <한청문감(1779년?)14, 35b> 등이 보이는데, 이 중에서 ’누루스러 쇼‘가 곧 황우(黃牛) 중의 하나다. 그리고 한문에 보이는 ’황우‘(黃牛)에 대응되는 언해문에는 ’누 소‘가 쓰이었다.

   홀연 그 누쇠 여 내라 (忽見這隻黃牛 直跳起來) <後水滸志(18,9세기),1,67)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한쇼’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황소’가 차지하게 되었을까?

   ‘수소’란 의미를 가졌던 ‘한쇼’는 18세기까지 사용되었다. 18세기에 ‘수쇼’와 ‘한쇼’가 사라지면서 ‘황소’가 등장한다.

   졔슌왕을 봉시고 황소 치기 도으믈 비럿더니 <경신록언석(1796년),48a>
   황소(牡牛) <한불자전(1880년),103>
   황소(黃牛, 牝牛) <국한회어(1895년),374>

   ‘한쇼’가 ‘황소’로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음운 변화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한’이 이와 유사한 음인 ‘항’이 되고 ‘항’이 다시 ‘황’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한쇼’가 ‘항쇼’로 표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1802년에 이재위가 편찬한 ‘물보’(物譜)에 ‘항쇼’(蟒牛)가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큰 소’, 즉 수소의 색깔이 누런색이므로, ‘한쇼’의 ‘한’이 독음이 유사한 ‘황(黃)’으로 바뀌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예문 중에 ‘황소’를 ‘황우’(黃牛)라고 표기한 사실이 이러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 ‘한쇼’는 ‘큰 수소’인데, 이러한 소는 대부분 ‘누런 소’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한쇼’의 ‘한’이 ‘황우’의 ‘황’에 견인되어 ‘한쇼’가 ‘황소’로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래서 ‘황소’는 ‘한쇼’가 가지고 있던 ‘큰 소, 수소’라는 뜻 이외에 ‘누런 소’라는 의미를 더 부가해서 가지게 된 것이다. ‘쇼’가 단모음화돠어 ‘소’가 된 것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래서 20세기에는 ‘황소’만이 쓰이게 되었다.

   머리 황소 머리 고 <독립신문(1896년)>
   남은 거슨 한 이십간 되 쵸가집 나와 황소  필이라니 <은세계(1906년),14>
   림연샹 씨 황소 속에 잇던 거믄 알 나를 박람회에 물픔으로 밧치고 <대한매일신문(1904년),3>

   ‘황소’는 원래 ‘한쇼’로부터 변화한 어형이다. ‘한쇼’는 처음에는 ‘큰 소’란 뜻이었지만, ‘수소’가 ‘암소’에 비해 몸집이 ‘큰 소’이었기 때문에, ‘한쇼’가 원래 수소를 의미하던 ‘수쇼’를 몰아내고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한쇼’는 ‘큰 소’라는 뜻 이외에 ‘수소’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큰 수소’가 주로 색깔이 누런 소이었기 때문에 ‘황우’의 ‘황’에 이끌려 ‘한쇼’가 ‘황소’가 되었다. 그래서 ‘황소’는 ‘큰 수소’라는 뜻에서 ‘누런 소’라는 의미가 부가되어 오늘날 ‘누런 큰 수소’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누런 소, 수소’라는 의미들이 부가되었어도 ‘황소’란 단어에는 ‘한쇼’ 때의 ‘큰 소’란 의미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황소같이 힘이 세다’에서 ‘황소같이’는 ‘누런 소 같이’란 뜻이 아니라, ‘큰 소 같이, 수소 같이’란 뜻이 더 강한 것이다.
   그런데 ‘황소’와 비슷한 역사적 변화를 거쳐 온 것으로 알려진 단어 중에 ‘황새’가 있다. ‘황새’는 원래 ‘한새’로부터 변화한 단어다. 즉 ‘큰 새’란 의미를 가졌던 단어다. ‘황새’는 ‘황소’와는 달리, ‘황조’(黃鳥), 즉 ‘누런 새’를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의 ‘큰 수놈’을 뜻하지도 않는다. ‘황조’는 오히려 ‘꾀꼬리’를 일컫는 단어다. ‘황소’와 ‘황새’의 ‘황’은 원래 그 어원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황소’는 ‘누런 소’로, ‘황새’는 ‘누런 새’가 아니라 오히려 ‘큰 새’로만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황소’와 ‘황새’의 ‘황’이 동일한 어원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역사가 달라진 데에 기인한다.
   ‘한쇼’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새’는 ‘한쇼’가 ‘황소’로 바뀐 뒤에 ‘황새’가 원래의 뜻이었던, ‘큰 소’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서 ‘한새’도 ‘황소’에 이끌려 ‘황새’가 된 것으로 보인다. ‘크다’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 ‘한’이 붙은 파생어에는 ‘한숨, 한가위, 한믈(큰 물, 홍수), 한비(큰 비), 한길(큰 길), 한아비(할아버지), 한쇼, 한새’ 등이 있다. 그 중 동물 명칭에서만 ‘한’이 ‘황’으로 바뀌어 ‘황소’, ‘황새’가 되었는데, ‘황소’는 ‘큰 소’란 뜻에서 ‘누런 큰 수소’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황새’는 형태는 변화하였어도 뜻은 원래 ‘한새’가 가졌던 뜻인 ‘큰 새’라는 뜻만을 가지고 남아 있는 것이다. ‘황소’의 ‘황’이 ‘황’(黃)에서 유추되었지만, ‘황소’의 본래 의미는 ‘누런 소’가 아니라 ‘큰 소’이었기 때문에 ‘한새’가 ‘황새’가 되었을 때에도 ‘노란 새’가 아닌 ‘큰 새’의 의미만을 지니게 되었다.
   한 단어는 태어나서 변화하고 소멸된다. 형태의 변화로 의미의 변화를 초래하고 또 의미의 변화로 형태가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휘 변화는 음운 변화나 문법 변화처럼 반드시 규칙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황소’와 ‘황새’에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휘 변화를 기술하는데 애를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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