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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물꼬’란 ‘논에 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서 논두렁에 만들어놓은 좁은 물길’을 말한다. 논의 위쪽에는 물을 대는 물꼬가, 아래쪽에는 물을 빼기 위한 물꼬가 있다. 이 물꼬는 아래, 위의 논임자들이 같이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위 논임자의 물을 빼는 물꼬는 아래 논임자의 물을 대는 물꼬가 되고, 그 아래 논임자의 물을 빼는 물꼬는 또 그 아래 논임자의 물을 대는 물꼬가 되는 셈이다. 날이 가물었을 때에는 자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한 사람이 위 논의 물꼬를 터놓으면 위 논의 임자는 물꼬를 막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 물꼬를 지키기 위해 늘 ‘물꼬를 보러(관찰하려)’ 들에 나간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날 정도의 물꼬 싸움도 간혹 일어나곤 했었다. 논 아래쪽에 있는 물꼬를 막고, 위쪽에 있는 물꼬를 트는 것이 자기 논에 물을 충분히 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장마 때가 되면 사정이 바뀐다. 물을 댈 물꼬를 막으려는 노력과 물을 뺄 물꼬를 터놓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꼬를 트고, 물꼬를 막는’ 일은 마치 자식에게 먹을 것을 하나라도 더 주어 굶기지 않게 하는 것과 같아서, ‘물꼬를 트다, 물꼬를 막다’란 관용어가 생기게 되었고, 역시 물꼬를 막거나 트거나 논에 물을 대는 일을 ‘물꼬를 보다’란 말도 관용어가 되었다. 그래서 ‘물꼬’는 늘 ‘물꼬를 트다, 물꼬를 막다, 물꼬를 보다’란 관용어로 주로 쓰이게 되었다. 그 결과 ‘막혔던 관계를 터주는 일’을 ‘물꼬를 튼다’고 하게 되었다.
  이 ‘물꼬’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물꼬’의 ‘물’이야 잘 아는 것이지만, ‘꼬’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샅샅이 뒤져 보아도 ‘물꼬’의 ‘꼬’에 해당하는 어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 다음에 ‘사이시옷’이 있어서 그 뒤의 ‘고’가 ‘꼬’로 된소리화 된 것으로 해석한다면 쉽게 풀릴 수 있을까?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 무려 33개의 다른 항목으로 처리한 ‘고’를 하나하나 ‘물꼬’의 ‘꼬’에 대응시켜 보아도 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옷고름이나 노끈 따위의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맨 것’이란 뜻풀이가 있는 ‘고’가 ‘고를 틀다, 고를 풀다’란 연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물꼬’의 ‘꼬’에 가장 그럴 듯하게 연결될 것 같지만, 이때의 ‘고’는 ‘뜨개질’의 ‘고’(또는 ‘코’)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물꼬’의 ‘고’의 의미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물꼬’는 18세기 문헌에 ‘믈’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믈(河身) <한청문감(1779년경)1:44a>

  이 ‘믈’의 의미는 현대국어의 ‘물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믈’은 ‘하신’(河身)에서 알 수 있듯이 ‘강물이 흐르는 부분’이다. 즉 ‘물이 한쪽으로 흘러 나가며 트인 곳’을 말한다. 이러한 뜻으로 보아 ‘믈’은 ‘믈 + - ㅅ + 곬’로 분석된다. ‘믈의 곬’이란 뜻이다. ‘곬’이란 ‘한쪽으로 트여 나가는 방향이나 길’을 의미한다. 그래서 ‘믈’은 실제로 문헌상에 ‘믈곬’의 형태로도 등장한다.

파셔국 아마심강은 비로 셔 발원여 파셔국으로 드러가나 물골시 난호여 의과타이국과 위셔랍국으로   모혀 드러가 파셔국 수쳔 리를 쳐 드러가니 (巴西之阿麻沈江 雖發源於秘魯入巴西支分派別兼注依瓜朶耳國委內瑞拉國以貫注巴西數千里之遙)
<이언언해(1875년)1,25a>
오직 슈도 혀 근원을 치며 물골슬 인도고 시물을 소통며 슈문을 노하 져슈엿다가 터 노하 밧 다히니 한와 슈 만나도 흉년 들가 근심 아니 니(惟有詳察水道濬源導流渠設閘專事)
<이언언해(1875년)1,50a>
인도야 남븍으로 난화 게  것과 셔유졍의 (사의 일홈) 슈문을 다리고 물골슬 소통  거시 그 말은 물길 치기 젼쥬엿고 류대하의 (사의 일홈) 형륭을 (물 일홈) 막아 안평을 (디명) 진뎡 믄
<이언언해(1875년)4,9a>
하슈 좌우 가에 쳔을 여러 믈을 바드 슈문을 러 져슈고  라 물골 여러 여 보면 거의 슈셰 급지 아니 야 빗기 터지지 아니 리니
<이언언해(1875년)4,11a>
운슈와 (슈명) 하슈에 진흙 막히 곡졀을 샹고건 그 폐단이 도모지 황하슈 물골시 변  이시니
<이언언해(1875년)4,11b>
어시의 가졍이 믈골로 드러   가진다려 무 가 잇냐 업냐(於是賈政進了港洞, 又問賈珍有船無船)
<홍루몽(19세기)17:63>

  이러한 예문들에서 ‘믈’의 뜻을 알 수 있는데, ‘믈’은 ‘물이 흘러가는 방향이나 길’의 의미이다. ‘외곬, 등곬’(이중에 ‘등곬’은 오늘날 ‘등골’이 되었다) 등의 ‘곬’과 같은 뜻이다.
  이러한 추적 과정을 거쳐 알 수 있는 사실은 ‘물꼬’의 원래 어형이 ‘믌곬’이라는 점이다. 문헌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믌곬’은 ‘믈 + -ㅅ + 곬’로 분석되는데, 사이시옷이 후행 자음을 된소리화시키면 ‘믈’이 되고, 사이시옷이 탈락하면 표기상으로는 ‘믈곬’이 되지만 발음상으로는 ‘곬’이 역시 된소리로 발음된다.
  그렇다면 이 ‘믌곬’과 ‘물꼬’는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왜 ‘믌곬’이 ‘물꼬’로 변화한 것일까?
  ‘물꼬’는 따지고 보면 ‘물이 한쪽으로 흐르는 곳의 한 지점’을 뜻한다. ‘믌곬’도 ‘강물이 어느 한 편으로 흐르는 곳’을 일컫는 것인데, 이 ‘믌곬’의 의미가 작아진 것이 ‘물꼬’인 셈이다. 이처럼 원래의 의미가 작아진 예는 흔히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로 ‘돌’을 들 수 있다. ‘돌’은 ‘도랑’의 옛말로 현대국어 방언에서는 ‘똘’이라고도 한다. 이 ‘돌’은 원래는 ‘울돌(鳴梁)목’의 ‘돌’이나 ‘노돌(露梁)강변’의 ‘돌’에서 볼 수 있듯이, ‘강물이 좁은 통로를 흐를 때’에 붙이던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돌’(또는 ‘도랑’)로 변한 이후로는 ‘논 옆에 흐르는 좁은 물길’을 말한다. 지시하는 대상물이 작아진 것이다. ‘믌곬’도 마찬가지로 ‘강의 물이 흐르는 곬’을 말했지만, ‘논의 물이 흐르는 물길’이란 뜻하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믌곬’이 ‘물꼬’의 형태로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믌곬’이 ‘믈’로 변화한 것은 ‘믌결’이 ‘믈’로 표기되거나 ‘믌길’이 ‘믈’로 표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각각 ‘물결, 물길’로 표기되지만, 역시 된소리로 발음되는 것은 보이지는 않으나 그 사이에 ‘ㅅ’이 있기 때문이다. ‘믈’에서 ‘믈’로 변화한 것은 ‘곬’의 ‘ㅅ’이 탈락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돌잔치’의 ‘돌’이 이전에는 ‘돐’로 쓰이었던 것이라는 사실이나, ‘등골이 오싹한다’의 ‘등골’이 이전에는 ‘등곬’이었다는 사실은 ‘곬’의 ‘ㅅ’이 탈락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어간 말 자음군이 단순화된 것이다. ‘믈’이 ‘물’이 된 것은 원순모음화에 의한 것이라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만, ‘물’이 ‘물꼬’로 변화한 과정은 그 설명이 복잡하다. 이러한 이유는 ‘물’의 쓰임새에서 찾을 수 있다.
  ‘물’은 그 의미가 좁아지면서 늘 ‘믈을 트다, 물을 막다, 물을 보다’ 등으로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명사의 뒤에서는 목적격 조사가 주로 연결되는 것이다. 목적격 조사에는 ‘-을’과 ‘-를’이 있는데, 자음으로 끝난 명사에는 ‘-을’이, 모음으로 끝난 명사에는 ‘-를’이 연결된다. ‘물’은 조사 ‘-을’이 연결되게 되었는데, 이것이 연결되면 ‘물을’이 되고 실제 그 표기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즉 ‘물을’의 형태와 ‘물를’의 두 형태이다. 이것은 표기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발음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음절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그 어간을 ‘물’이 아닌 ‘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어간이 표기나 발음 때문에 변화한 예는 매우 흔하다. 예컨대 중세국어에서 ‘ㄷ’ 받침을 가지고 있던 명사들, 예컨대 ‘곧[處], 벋[友], 붇[筆], [意]’ 등이 오늘날 ‘ㅅ’ 받침을 가진 명사인 ‘곳, 벗, 붓, 뜻’으로 변화하여, 오늘날 ‘ㄷ’ 받침을 가진 명사가 하나도 없게 된 것이 그러한 예다. ‘ㄷ’ 받침을 가졌던 명사들이 주로 주격 조사 ‘-이’와 연결되고, 이 연결체가 구개음화를 겪으면서, ‘ㄷ’ 받침을 가진 명사들의 어간이 ‘ㅈ’ 받침을 가진 명사로 인식되고 이들이 마찰음화를 겪으면서 모두 ‘ㅅ’ 받침을 가진 명사로 인식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즉 ‘곧 + -이’는 ‘고디’였었는데, 이것이 구개음화를 겪어 ‘고지’가 되고, 마찰음화로 ‘고시’가 되어 그 어간이 ‘곳’이 된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격조사에만 연결되어 그 어형을 바꾸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이다. ‘ㄷ’ 받침을 가진 동사들, 즉 ‘얻다, 믿다, 뻗다’ 등은 아직도 ‘ㄷ’ 받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없어서 구개음화를 겪을 조건에 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이 ‘물’로 어간이 바뀐 것은 20세기에 와서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는 ‘물골, 물, 물곬’ 등으로 쓰이었었다.

물골(水心) <한불자전(1880년),257>
물골(水道) <국한회어(1895년),124>
물(河身) <광재물보(19세기),지도,5b>
병정들이 저 쪽으로 가면 이 쪽에선 그냥 팠다. 이 쪽으로 오면 저 쪽에서 그냥 팠다. 얼마 않 파면 물곬은 서게 되었다. 병정들은 나중엔 총을 놨다. 총소리를 드르면서도 멀리선 자꾸 팠다.
<농군(1939년),226>
제각기 물꼬를 보러 논으로 나갔다. <고향(1933년),226>
그는 물꼬를 다 파놓고 나자 <고향(1933년),227>
시골집에서 논에 물꼬를 보러 다닐 때나 <영원의미소(1933년),67>
그날 물꼬를 보다가 점심을 먹으러 드러간 새에 불과 한 시간이 못 되여서
<신개지(1938년),43>
삽을 집고 물꼬를 보러간다거나 <제일과제일장(1939년),155>
수택은 물꼬를 삑 한번 둘러보고 원두막으로 어슬렁 어슬렁 올러갔다.
<제일과제일장(1939년),156>
그는 물꼬를 다 파놓고 나자 <고향(1947년),227>
서울로부터 실어다 붙인 만 명도 더 되는 차 손님은, 물꼬를 터뜨린 것처럼 한꺼번에 그리로 쏠려 들었다.
<소년은자란다(1949년),83>
저녁에 가래와 괭이를 주며 내다 두라기에 어디 물꼬를 치려나 했더니
<농민(1950년),032>

  ‘물’이 ‘물꼬’로 바뀌면서 ‘물곬’은 ‘물이 흘러 빠져 나가는 작은 도랑’이란 뜻을 가지고 계속 사용되고 있으나,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어휘가 되었다. ‘물’에 대해 ‘논의 물꼴’을 ‘논꼴’이라고 하여 사용되었던 적이 있으나 ‘물꼴’이 ‘물꼬’로 바뀌면서 ‘논꼴’도 ‘논꼬’로 바뀌게 되었다.

찰방의 사람이 오리꼴 사람들을 다리고 나서서 두루 널리 차저오는 중에 논꼴 근처 후미진 산모통이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참혹한 송장을 차젓는 데 송장 여페는 역졸이 쓰는
<임거정(1939년),663>
그가 맨 위 논으로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논꼬(논물꼬)를 파고 있자니까
<고향(1947년),227>

  오늘날의 ‘물꼬’는 원래의 어형은 ‘믌곬’이었다. 이것이 ‘ㅅ’으로 인해 어중에서 된소리가 나면서 ‘믈’로 바뀌게 되고, 원순모음화를 겪어서 ‘믈’이 ‘물’이 되고, 어간말자음군 단순화로 ‘ㅅ’이 탈락하면서 ‘곬’이 ‘골’이 되면서 ‘믌곬’이 ‘물’로 변화하였다. 이 ‘물’이 ‘보다, 트다, 막다’와 같은 타동사와 주로 연결되면서 ‘물’은 주로 목적격 조사와만 결합되었다. 그래서 ‘물+ -을’이 ‘물 + -를’로 인식되어 어간을 ‘물’로 인식되고, 표기가 바뀌어 오늘날의 ‘물꼬’가 된 것이다. 원래 발생 시기의 ‘믌곬’은 ‘강물이 한편으로만 흘러 나가며 트인 곳’이란 뜻있었는데, 의미가 작아지면서 ‘논에 물이 들어오고 논에서 물이 나가는 곳’을 뜻하게 된 것이다. 어형도 변화하고 뜻도 변화함으로써 오늘날 그 어원을 알 수 없는 어휘로 된 것이다. 오늘날 쓰이는 수많은 어휘들 하나하나에는 각각 다른 나름대로의 역사가 숨어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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