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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사나이’란 ‘한창 혈기가 왕성할 때의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XX도 사나이’ 등의 ‘사나이’는 ‘통이 크고 대범하고 시원시원한 젊은 남자’를 일컫는 것 같은데, ‘두 얼굴의 사나이, 육백만 불의 사나이’라고 했을 때에는 단순히 ‘젊은 남자’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나이’는 단순히 ‘남자’란 뜻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젊은 남자’란 의미가 더 강하다. ‘XX도 사나이, 두 얼굴의 사나이’ 등에서 ‘사나이’는 ‘남자 노인’이나 ‘남자 어린이’를 연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나이’의 이런 뜻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사나이’는 현대 표기법에서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단어로 보인다. 기껏해야 ‘사나이’의 ‘-이’가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쯤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앞의 ‘사나’를 해석하기 힘들다.
  ‘사나이’는 어원적으로 두 형태소가 합쳐진 단어이다. ‘사나이’가 처음 문헌에 등장할 때의 형태는 ‘’ 또는 ‘’였다.

  남지늬 소리 겨지븨 소리  소리 갓나소리 <석보상절(1447년)> 오좀되예 프러야 머그라 <구급간이방(1489년)> 오좀 큰되예 달혀 반 남거든 즈앗고 <구급간이방(1489년)>

  ‘’는 ‘ + 아’로 분석된다. 그리고 ‘’는 ‘’ 또는 ‘’에서 ‘’의 ‘ㆍ’가 생략된 어형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아’는 ‘아> 아희 > 아히 > 아이 > 애’의 변화를 겪은 단어로, 오늘날 ‘아이’ 또는 ‘애’가 된 단어다. 그리고 ‘’은 지금은 사라진 단어지만 이전에는 ‘장정’(壯丁)이라는 뜻을 가진 고유어였다. ‘’은 한자 ‘정(丁)’의 석음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쓰이었지만, 또한 일찍이 사라진 단어로 보인다. 한자 ‘丁’은 ‘장정’(壯丁)이란 뜻을 가진 것인데, 16세기의 석음 자료에 ‘ 뎡’으로 등장한다.

    (丁) <훈몽자회(1527년)>   (丁) <광주천자문(1575년)>   (丁) <대동급기념문고본천자문(1575년)>

  한자 ‘정’(丁)은 한자의 자형 때문에 오늘날 ‘고무래 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은 ‘고무래 정’이라고 그 자석을 달았던 시대는 없었다. 단지 속설일 뿐이다. ‘ 뎡’은 16세기 후반부터 주로 ‘장뎡 뎡’과 ‘남녁 정’으로 바뀌어 오늘날 ‘장정 정’으로 굳어졌다. 그러니까 ‘’은 16세기 말에 사라진 단어라는 뜻이 된다.

  뎡 <신증유합(1576년)> 장뎡 뎡 <내각문고본 천자문(1583년)> 장뎡 뎡 <석봉천자문(1583년)>   <이해룡 천자문(1601년)> 장뎡 뎡 <갑술중간본 석봉천자문(1634년)> 장뎡 뎡 <경인중보본 석봉천자문(1650년)> 장뎡 뎡 <칠장사판 천자문(1661년)> 장뎡 뎡 <신미하중간본 석봉천자문(1691년)> 당뎡 <신증유합 중간본(1711년)> 장뎡 뎡 <송광사판 천자문(1730년)> 남녁 뎡, 장뎡 뎡, 만날 뎡, 소  <주해천자문(1752년)> 남녁 뎡 <궁내청서릉부분 천자문(18세기)>

  그러니까 ‘’는 원래 ‘[壯丁] + 아[兒]’로 만들어진 단어이고 그 뜻은 ‘장정 아이’라는 뜻이다. ‘장정 아이’ 즉 ‘’가 어느 정도의 젊은 남자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을 보면 대개 10세 이상의 남자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중록’에 궁중법에는 사나이는 10세가 넘으면 궁내에서 잘 수 없다는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궁듕법이 십 셰 너믄면 희가 궐의 잠을 못자더니 <한중록(19세기)>

  ‘장정 아이’는 곧 ‘나이가 젊고 기운이 좋은 남자 아이’인데, 이때 남자를 강조하면 한자어 ‘남정네’가 될 것이다. ‘남정네’의 ‘남정’(男丁)이 ‘남자 장정’(물론 ‘여자 장정’은 없지만)을 뜻하는 단어다. 이 ‘남정’(男丁)이 곧 우리 고유어로 ‘’인 셈이다. 그러나 원래는 ‘남정’이란 뜻보다는 ‘장정 남아’(壯丁男兒)란 뜻이었다. 이 ‘’가 16세기에 표기가 ‘’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때부터 ‘ + 아’의 어원의식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네 누의니미 일즉 언제우터 쥭 먹리어다가 간나고은라<번역박통사(1517년)> 이 약 져믄오좀 세 보애 섯거 달히니 <분문온역이해방(1542년)>죵 다리고 왓고 <순천김씨언간(1565년)> 能히 말거든 고 겨집은 느즈기답게며 <소학언해(1586년)>  고 겨집의  실로 홀디니라 <소학언해(1586년)> 닐굽어든와 겨지비 돗글가지로 아니며 먹기를   아니홀디니라 <소학언해(1586년)>

  ‘’는 19세기까지도 쓰였다. 그리고 17세기부터 ‘ㆍ’의 변화로 ‘나희’로 변화하여 쓰였다.

  텰이 왜적의 잡피인 배 되여 닐오 나희 엇디 도적의 손애 욕되이 주그리오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나희와 겨집의 욕심이 바라나기 쉽고 막기 어려온디라 <경민편언해(1658년)> 닐굽 설에나희와 겨집이 돗글가지로 아니며 <여훈언해(1658년)>

  ‘’에서 ‘ㆍ’의 표기 혼란과 ‘’의 음운 소실로 그 표기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서 ‘희, 사나, 사나히, 사나희’ 등으로 표기되다가 ‘ㆍ’와 ‘ㅎ’의 소실로 오늘날 ‘사나이’로 굳어진 것이다. 결국 ‘사나이’는 ‘>/나희>사나히/사나희>사나이/사내’의 변천과정을 겪은 것이다.

  희 셰샹의 나<삼국지(19세기)>
  사나(漢子) <몽어유해(1768년)> 비록 어린 사나와 어린 겨집이라도내고 눈을 브릅며 <속명의록(1778년)> 필부와 필부 /사나겨집이란 말이라<윤음(1794년)> 사나 들지 아니고 게집은 나지 아니할니라<여사수지(1889년)> 사나(男) <광재물보(19세기)> 그만두게 사나쥬 한잔도 못 먹으면 엇더컨단 말인가<무정(1917년)>
  遼東의 다도록 텬하의 빗겨 으로  거시 진짓 큰 사나희 생각이라 <삼역총해(1703년)> 사나희 眷屬이 아니어든 더브러 일홈을 통티 말며 <여사서언해(1736년)> 그러나 사나희 잇면 녀인이 가히 셰거시오 <셩교절요(1864년)> 사나희(男) <한불자전(1880년)> 졀문 사나희와 졀문 녀인을 졈검여 보라니 <명성경언해(1883년)> 아당은 사나희오 하와계집이니 온 텬하 사의 시조로다 <진리편독삼자경(1895년)> 사나희 남(男) <신정천자문(1908년)>

  ‘사나희’가 ‘사나히’ 등으로 변화하여 오늘날의 ‘사나이’가 되었는데, 이 ‘사나이’는 20세기에 등장한다.

  사나히난 동물 (男子動物) 사나히 날 때 궁시을 걸고 장차 사방에 하기을 빌다 <국한회어(1895년)> 사람은 절개가 가쟝 귀중한 것이오. 사나히나 녀자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개란 것이요 <신숙주부인전(19세기)> 그 사나히가 성큼 이러서서 남죽에게 춤을 청하는 것이였고 <薔薇병들다(1930년)>
  P는 정조(貞操)적으로 순진한 사나이가 아니다 <레듸메이드 인생(1945년)> 에, 에, 변변치도 못한 사나이. 저도 모르게 얕은 한숨이 겨퍼 두 번을 터진다. <金따는 콩밭(1935년)> 옥색 저고리를 입은 호리호리한 사나이가, 안경을 번쩍거리며 기다란 살포를 지팽이 삼어 짚고 <상록수(1935년)> 더군다나 그 방안에서 사나이의 굵은 목소리가 두런두런 새어나온다. <영원의 미소(1933년)>

  결국 ‘사나이’는 ‘ + 아’로 이루어져 ‘/나희’를 거쳐 오늘날의 ‘사나이’로 변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나이’의 어원을 달리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를 ‘(壯丁) + 나(生)’로 분석하는 것이다. ‘나’는 ‘낳다’의 어간 ‘낳-’에 ‘-’가 붙어서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정으로 태어났다’란 뜻을 가진다고 해석한다. 이것은 ‘’와 대립되는 ‘갓나’를 ‘갓 + 나’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갓나’의 ‘갓’은 ‘여자, 처’를 뜻한다. 그래서 ‘갓나’를 ‘갓 + 나’로 분석하여 ‘여자로 태어난 사람’이란 뜻을 가진다고 하는 것이다. 즉 ‘갓나’와 ‘’를 동일한 선상에서 분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방언형에서 ‘갓나’를 ‘가시내, 가시나’ 등으로 말하는데, 이 방언형으로 보아 ‘가시나’를 재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갓나’는 ‘갓 + 나’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다. ‘갓나’는 다른 문헌에서 ‘가’로 등장한다. 이것이 등장하는 문헌은 ‘경상도 방언’을 반영한 칠대만법(1569년)이다.

  少女 난 가라 /난 가 그 소배셔 아모거시 나리라 몯 디니 엇뎨어뇨 /난 가 子息기 이시며 업스며 사오며 어디로몯내 알 거시니

  이 ‘가’로 이것이 ‘갓 + -+ 아’로 분석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 ‘-/은’이란 문법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래야만 ‘갓나’와 ‘’를 공통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는 ‘’ 등)는 15세기 문헌에서는 주로 ‘갓’와 대립되어 쓰였다.

  나혼시기 어든닐굽 나 고 갓나어든 열네 나 면 <구급간이방(16세기자료)>가 간나고은라 <번역박통사(1517년)>며 간나제븓터 곧 교만며 게을어 <소학언해(1586년)>와 간나 욤이 이시며 <소학언해(1585년)> 닐곱 며 간나달리아라 <여훈언해(1658년)>

  그러다가 ‘겨집’과 대립되어 쓰이게 된다.

   고 겨집은 느즈기답게며 <소학언해(1586년)>  고 겨집의  실로 홀디니라 <소학언해(1586년)> 닐굽어든와 겨지비 돗글가지로 아니며 <소학언해(1586년)>와 겨집이 冠 쓰며 <소학언해(1586년)>
  와 겨집이 듕인니미 잇디 아니얏거든 <소학언해(1586년)> 길헤 녁흐로 말암고 겨집은 왼녁흐로 말암을디니라 <소학언해(1586년)> 님굼을 위야 죽고 겨지븐 지아비야 죽니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겨집의 손애 죽디 아닌니라더라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는 왼 녁 계집은 올흔 녁 라 <벽온신방(1653년)> 칠월 칠일에 콩 닐곱을 고 계집은두닐곱을기면 됴니라 <벽온신방(1653년)>병은 모딘 긔운이 입으로셔 나고 계집은 모딘 긔운이 음문으로셔 나니 <벽온신방(1653년)> 남진과 겨집이 은혜 이시며와 간나 요미 이시며 <경민편언해(1658년)> 지고 겨집은 이고 <첩해신어(1676년)>

  처음에는 ‘’가 주로 ‘갓나’와 대립되더니 후에는 주로 ‘겨집’과 대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가 ‘젊은 장정 아이’란 뜻에서 ‘남자’란 뜻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는 ‘부인’과도 대립되는데 이것은 ‘사나이’의 의미가 결혼한 젊은 남자까지도 지칭하는 말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살아실 제 畵像이 이시나기예 오히려업거든 婦人에 니<가례언해(1632년)>

  그런데 ‘’가 처음 등장할 때 여기에는 ‘아’[兒]의 뜻이 있어서 ‘’와 ‘아’의 두 단어가 같이 배열되는 적이 없었지만, ‘’가 ‘’로 되면서 이 속에 ‘아’의 뜻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언중들은 ‘’와 ‘아’를 같이 배열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의 뜻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분산은일홈은 무가산이오일홈은 만금산이니과 거믄 괴과 거믄 개과 거믄 돋 각<언해두창집요(1608년)>
  이와 긔운으로 된 병과 담으로 된 증에다오좀으로프러리오면 효험이 더 나으리라 <납약증치방언해(17세기)>
  오좀을 먹고 황년 달힌 믈을 마시고 <납약증치방언해(17세기)>
  졍녜 졍녈이심도 밧긔 나가  셔 몯 놀게소 <진주하씨 언간(17세기)>
  내 이신 적은 아여도 므던거니와 업시셔 밧긔 나와 셔 노더라장 욀 거시니 <진주하씨언간(17세기)>

  이 문장에서 ‘’는 ‘남자’[男]를 뜻하지만 ‘아’는 ‘아이’[童]를 뜻하는 것이다. 이 ‘’는 이미 ‘’에서 ‘아’에 대한 인식이 사라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사나이’가 축약된 형태가 ‘사내’다. 20세기부터 등장한다.

  남(男) <초학요선(1918년)> 쓸데없이 이 사내 저 사내 교제나 하면 남의 이야깃거리가 되기 무엇하니 <흙(1932년)> 내가 사내 같으면 나이 젊것다, 외모가 저만하것다, 그만 돈쯤이야 <영원의미소(1933년)> 젊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내 마음은 이상한 물결이 치는 것이다 <뉘치려할 때(1940년)>

  그래서 사전마다 모두 ‘사내’를 ‘사나이의 준말’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나이’와 ‘사내’는 형태가 달라지면서 그 의미를 바꾸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XX도 사나이’를 쓰지 않고 ‘XX도 사내’라고 하면 앞의 말은 ‘통이 크고 대범한 남자’를 지칭하지만 뒤의 것은 단순한 ‘남자’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진짜 사나이’란 군가의 가사 중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를 ‘사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으로 바꾸어 부른다면 그 군가는 군가의 맛을 버리고 말 것이다.
  ‘사나이’는 남자 중에서 어느 층위에 속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지칭하는 명칭이 분화되었는데, ‘아기[嬰兒]→아[兒孩]→져므니[靑年]→져므니[壯年]→늘그니[老人]’로 분화되었다. 결국 ‘져므니’ 중에서 청년과 장년을 다 합쳐 ‘사나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사나이’와 함께, 젊은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들, 예컨대 ‘남자(男子), 남아(男兒), 남정(男丁)네, 사내, 남진(南人)’등은 모두 조금씩 그 뜻을 달리하며 쓰이고 있다. ‘여자’에 대해 ‘남자’를, ‘여아’(女兒)에 대해서 ‘남아’를 쓰지만, ‘남아’는 꼭 어린애를 지칭하지 않고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고, ‘남편’(男便)과 ‘여편(女便)네’가 대립되지 않고 ‘여편네’에 대해 ‘남정네’와 ‘남진네’가 대립되어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나이’에 대립되던 ‘가시내’는 오늘날 방언형에서만 대립될 뿐, 표준어에서는 ‘계집아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바뀌었다.
  이렇게 단어와 어휘는 살아서 변하고 있다. 형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도 보이지는 않지만 늘 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