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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뿌둥하다/ 흐리멍텅하다’(?)
한규희(韓奎熙) 기자(중앙일보 어문연구소)
   8·15 광복 이후 남과 북은 분단의 현실 속에서 60여 년을 다른 체제와 문화를 영위하며 떨어져 살아오면서 언어에서도 이질감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유명사는 말할 것도 없고, 문법적으로도 차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형용사와 같은 용언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이러한 예를 살펴보자.
  “하루종일 스키를 탔더니 몸살이 나려는지 몸이 아주 찌뿌둥하고 정신도 맑지 않다.”, “야근을 하느라 밤을 새웠더니 몸이 여간 찌뿌둥한 게 아니다.” 이렇듯 몸살이나 감기로 몸이 조금 무겁고 거북할 때, 표정이나 기분이 밝지 못하고 조금 언짢을 때, 비나 눈이 올 것같이 날씨가 조금 흐릴 때에 ‘찌뿌둥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는 널리 쓰이기는 하지만 표준말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찌뿌둥하다’ ‘찌붓하다’를 우리의 표준말격인 문화어로 올려놓고 있지만 우리 사전에서는 아직 이것을 표준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뜻의 우리말로는 ‘찌뿌듯하다’나 ‘찌뿌드드하다’가 있다.
  “날씨가 찌뿌듯하면 몸이 찌뿌듯해지니 그럴싸한 표현이네요.”, “어제 잠을 충분히 못 잔 것 같아 오늘 아침은 졸리고 몸이 찌뿌드드하다.”, “어둑하고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 몸조차 끈적끈적해지면서 찌뿌듯하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어제 과음을 했더니 오전 내내 정신이 흐리멍텅해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흐리멍텅하게 일을 처리해서 상사에게 자주 꾸지람을 듣는다.”에서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 옳고 그름의 구별이나 하는 일 따위가 아주 흐릿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 기억이 또렷하지 아니하고 흐릿하다, 귀에 들리는 것이 희미하다는 뜻을 나타낼 때 ‘흐리멍텅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 말 또한 표준말이 아니다. 우리말로는 ‘흐리멍덩하다’가 표준말이다. 이 말 역시 북한에서는 문화어로 올려놓고 있다. 이 말이 자주 잘못 쓰이는 이유는 ‘(정신이) 흐리다’에서 ‘흐리’와 멍청이란 뜻의 ‘멍텅구리’에서 ‘멍텅’이 합해진 말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흐리멍덩’은 ‘흐리믕등’에서 온 말이다. 동의어로는 ‘하리망당하다’가 있다.
  “점심때가 지나고 해 질 녘이 되어도 외할머니는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듯이 흐리멍덩한 상태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흐리멍덩하게 살고 있지만 아들은 자기 자신과 같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등과 같이 쓰인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그래서 통일이 되면 남과 북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될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6일 북한 개성에서 사흘간 열린 4차 편찬회의를 마치고 단일어문규범 작성 요강과 올림말(사전 표제어) 선정 요강 등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단일어문규범은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큰사전’에 적용된 현행 규범을 토대로 통일 지향적 규범을 마련하되 남북의 현행 규범에 대해 어떤 구속력도 갖지 않도록 한다는 것으로 합의됐다고 한다. 어쨌든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두음법칙, 사이시옷, 띄어쓰기 등 문법적인 문제와 표준어 선정 등에 있어 남북 간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올해부터 시작되는 실질적인 편찬 작업에서 많은 걸림돌이 예상된다. 단순히 두 사전의 표제어를 합치는 것에 불과하다면 별 의미가 없다. 서로 간에 합의를 잘 이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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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