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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문법과 국어 생활
  새빨간 거짓말 (2)
이병규(李炳圭) 국립국어원
  말이란 그 속에 질서가 있는 듯싶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없는 듯싶으면서도 있는 그야말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인 것 같다. 허파에서 목구멍, 입을 통해 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소리가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배열되어야 비로소 말이 된다. 말이 되려면 말소리의 배열에 관한 질서와 말뜻의 배열에 관한 질서가 필요하다. 말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질서의 총체를 어법이라고 하고, 이 가운데 특히 문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질서를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1) ㄱ. 사과가 빨갛다. → 빨간 사과
ㄴ. 새색시의 얼굴이 빨갛다. → 빨간 새색시의 얼굴
(2) ㄱ.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까맣다. → 굴뚝으로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
ㄴ. 그녀의 눈동자는 매우 까맣다. → 까만 그녀의 눈동자
  (1)과 (2)는 모두 우리말에서 어떤 대상을 풀이해 주는 말(서술어)이 어떤 대상을 꾸며주는 말(관형어)로 바뀌는 모습을 규칙적으로 보여 주는 예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말에서는 대상을 풀이해 주는 말을 그 대상을 꾸며 주는 말로 바꾸려면 풀이말에 ‘-(으)ㄴ/는’ 따위를 붙여 준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말에서는 규칙적인 것처럼 보인다.
  ‘빨갛다’는 ‘흐르는 피나 잘 익은 사과 빛깔처럼 진하고 산뜻하게 붉다’라는 뜻이고 ‘까맣다’는 ‘숯이나 먹의 빛과 같이 매우 검다’라는 뜻이다. 어떤 대상의 색깔을 나타내는 말에 ‘새-’가 붙으면 각각의 색깔의 정도가 매우 짙다는 뜻을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새빨갛다’는 ‘더 이상 빨간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빨갛다’는 뜻을 나타내고 ‘새까맣다’ 역시 그 정도로 아주 까맣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는 ‘빨갛다’, ‘까맣다’, ‘새빨갛다’, ‘새까맣다’의 중심의미로 이들은 모두 어떤 사물의 빛깔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
(3) ㄱ. 새빨간 거짓말 거짓말이 새빨갛다.
ㄴ. 새까만 후배 후배가 새까맣다.
  ‘새빨간 거짓말’의 꾸미는 말을 풀이말로 바꾸어 ‘거짓말이 새빨갛다’로 하면 틀린 문장이 되고 ‘새까만 후배’의 꾸미는 말을 풀이말로 하여 ‘후배가 새까맣다’로 바꾸면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새까만 후배’는 직장이나 학교에 나중에 들어온 사람으로 그 시기가 매우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을 일컫는 데 비해 ‘후배가 새까맣다’는 직장이나 학교에 들어온 시기가 나중인 사람의 피부색이 검다는 뜻이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려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다. 즉 상대방이 들었을 때 사실로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새빨간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너무도 빤하여 상대방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말한다. 거짓말의 정도가 지나친 경우에 이런 표현을 쓴다.
  ‘새빨간 거짓말’과 ‘새까만 후배’의 ‘새빨간’과 ‘새까만’은 각각 대략 ‘보통의 수준보다 정도가 더 심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심의미로서의 색깔과는 무관하다.
  한편 다음과 같이 ‘상태나 속성 정도가 짙음’의 뜻을 나타내는 ‘새-’를 빼면,
(4) ㄱ. 빨간 거짓말 거짓말이 빨갛다.
ㄴ. 까만 후배 ← 후배가 까맣다.
  (4ㄱ)은 모두 틀린 표현이고 (4ㄴ)은 옳은 표현이기는 하나 후배의 피부색이 검다는 뜻으로 ‘새까만 후배’와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중심의미에서 번져나가 우리말의 일반적인 질서를 깨뜨리게 되는 예외적인 현상은 다음 예들에서도 볼 수 있다.

깊은 한숨, 좌절감, 비밀, 감사, 슬픔, 그늘, ……
가벼운 등산, 포옹, 입맞춤, 농담, 음악, 한숨, 현기증, 경련, 두통, 전율, 몸서리, 읽을 거리, 교통사고, ……
어려운 사람, 시대, ……
뜨거운 환영, 박수, 격려, ……
없는 집, 살림,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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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