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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井邑詞‘에 나타난 아내의 마음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前腔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小葉 아으 다롱디리/ 後腔全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過篇 어느이다 노코시라 /金善線 어긔야 내 가논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小葉 아으 다롱디리
<‘井邑詞’,「악학궤범」 권5>

   ‘정읍사’는 작자 연대 미상의 가요로 백제 시대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훈민정음 창제 뒤 문자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백제 때 불린 그대로가 아니라고 보기도 하고, 후렴구와 여음을 빼면 3장 6구의 시가 형식이어서 시조의 근원으로 보기도 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악학궤범, 권5”에 실려 전하고 이 노래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악지(樂志) 2’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정읍은 전주에 속한 현으로 그 고을 사람이 행상을 나간 뒤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처가 산의 바위에 올라 멀리 남편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 지아비가 밤길에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며 진흙물에 빠짐에 비유하여 노래했다. 세간에 전하길 등첨산에 망부석이 있다고 한다.”
   이 노래의 주요 내용을 문장으로 간추리면 “① 달아, 높이 돋아서/② 멀리 비취오시라./ ③(임은) 지금 저자(시장)에 가 계신가요? /④ (임께서) 즌 데를 디딜세라./⑤ (임이여) 어느 곳에 (짐을) 놓고 계신지요? /⑥ 내 (임이) 가는 데 저물세라(잠길세라, 빠질세라)”이다. 1, 2구는 달에게 하늘 높이 돋아서 밤에 남편이 계신 곳을 비추어 달라는 뜻이(‘-시라’는 직접 청자에게 명령하지 않는 간접 명령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손한 명령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담겨 있다. 현대로 보면 달이 인공위성처럼 하늘 높이 떠서 집 떠난 지 오래 된 임이 이 밤중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비추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3구는 남편의 직업이 행상인이므로 저자에 가 계신지를 묻는 위치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4구에서는 임이 ‘즌 데’를 ‘디딜세라’(‘을세라’는 일의 이유나 근거로서 혹시 그러할까 염려하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는 염려와 불안, 의심, 더 나아가 질투의 마음까지 품고 있다. ‘즌 데를 디디다’라는 표현은 고려사에서도 나타났듯이 밤길에 진흙탕에 빠질까 염려하는 비유로서 객지에서 밤길에 돌아다니다가 실족(失足)하여 몸을 다쳐 고생할까 걱정하는 마음, 진흙물에 빠지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에게 당하거나 휩쓸릴까 염려하는 마음, 새로운 여자에게 빠져서 아내를 잊고 지낼까 두려워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다. 자연 재해, 사람의 나쁜 영향, 그리고 연적(戀敵)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마음 등 어느 한쪽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복합적인 뜻이 함축되어 이 시를 고전으로서 오래도록 읽게 하고 있다.
   달은 밤 하늘에 높이 떠서 세상의 어둠을 쫓는 역할을 한다. 이 달과 반대되는 기능을 하는 단어가 바로 ‘즌데를 디디다’인데 미처 달이 비추지 못한 어두운 땅을 임이 밟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말한다. 하늘의 달과 대비되는 땅의 젖은 곳이라고 해서 다 어두운 곳은 아니므로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말하는 여성의 남편이 발을 디디기로 선택한 어떤 행위가 윤리적이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 있다. 아내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홀로 있는 남편의 마음이 어떤 본능에 따라 잘못 움직여서 가정의 파탄이 일어날까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 예로는 이 노래가 삼국속악의 하나로 전승되어 궁중 음악으로 불리어 왔는데, 조선 중종 때 조신들에 의해 음사(淫辭)라 하여 폐지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5구에서는 다시 임에게 밤길에 돌아다니지 말고 어느 곳에다 짐을 놓고 쉬는지 묻거나 혹은 짐을 놓고 어서 돌아오시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6구에서는 내 임이 가는 길에 저물까 두렵다고 해석해 왔지만 달이 비치는데 저물까 두렵다는 것은 앞뒤가 잘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어 내 임이 (딴 여자에게) 잠길까 두렵다, 빠질까 두렵다는 해석이 힘을 갖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행상을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달에게 비는 평범한 내용인데도 ‘즌 데를 디디다’, ‘내 남편이 가는 데에 잠기다. 빠지다‘란 서술어를 비유적으로 봄으로써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물론 이 시에서 말하는 여성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의심하지도 않고,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다만 몸이나 편히 다니시기를 바라는 순결한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망부석의 이미지를 지녔다고 전통적으로 해석해 왔고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살과 피를 가진 아내가 돌이 될 때까지 남편을 기다렸다는 망부석의 역사적 이야기 뒷편에는 기다림을 단순한 여자의 부덕(婦德)으로 찬양할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여성의 피 말리는 갈등과 질투 등의 심리적 고뇌를 요구하는 내용이 있었음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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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