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어휘 이야기
한글 맞춤법의 이해
외래어 표기
국어 순화
국어의 발음
학교문법과 국어 생활
현대시 감상
현장에서
표준 화법
국어 생활 새 소식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알려드립니다
 어휘 이야기
   옥떨메, 토토즐, 차파라치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원
   “물냉 하나, 비냉 하나요.” 음식 주문을 받은 사람이 주방에 전달하는 말로 음식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물냉면 하나, 비빔냉면 하나요.”라고 해야 제대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자주 사용되는 말이어서 줄여 전달함으로써 반복적으로 말하는 데 따르는 수고를 절약하는 것이다. 필자는 ‘물냉, 비냉’처럼 원래의 말에서 일부만 뽑아서 줄여 말하는 것을 ‘약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널리 지지를 받고 있는 용어는 아니다. ‘준말’ 등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용어야 어떻든 약어의 예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국립국어원에서 2003년에 발간한 『현대 국어의 준말 목록』에서 ‘갑근세←갑종 근로 소득세, 건교부←건설교통부, 경총←한국 경영자 총협회, 경협←경제 협력, 고교←고등학교, 고시←고등고시’와 같이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건준←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전평←조선 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와 같이 해방 직후에 있었던 단체들에 대한 약어가 있는 것으로 보면 약어는 최근에야 등장한 것은 아니다.
   위에 제시한 예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자로 적을 수 있는 한자어들이라는 점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980년대 초만 해도 약어는 주로 한자어에서만 가능했었으며, 고유어로 약어를 만드는 것은 국어의 말 만들기 방식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자어는 각각의 글자가 의미를 갖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줄여도 의미가 전달될 수 있는 데 비해 고유어는 그렇지 않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고유어가 포함된 약어가 없지는 않았다.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를 줄여 ‘옥떨메’라고 하고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다’를 ‘아더메치유’라고 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은어처럼 쓰였을 뿐이지 널리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고유어가 포함된 약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로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 토토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시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는 요새 유행하는, ‘○○○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줄여 말하는 ‘○사모’와 같이 고유어가 약어를 만드는 데 끼어드는 일이 흔하다. 심지어 ‘디카←디지털카메라, 개콘←개그콘서트’와 같은 예들에서는 외래어조차 자유롭게 약어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자를 쓰지 않게 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유어나 외래어가 포함된 명칭들이 등장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런 명칭들이 생기면서 그것을 줄이지 않을 수 없어 오히려 한자어만 된다는 제약을 깬 것으로 보인다.
   약어는 ‘미니(←미니스커트), 센티(←센티미터)’처럼 앞부분만 선택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각 단어에서 음절을 뽑아 만든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첫 음절을 뽑아서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항상 첫 음절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약어의 어감, 의미 전달, 연상 의미 등을 고려하여 다른 음절을 택하기도 한다. ‘외환은행’은 ‘환은’이라고 하여 뒤 음절을 이용하였다. ‘외은’이라고 첫 음절을 택한 것은 사전을 찾아보면 ‘외국 은행’의 약어로 올라 있다. 다른 예로 ‘탁은’이 있는데 지금은 없어진 이름이 되었지만 ‘서울신탁은행’의 약어이다. 약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는 때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당’과 ‘열우당’으로 맞섰던 ‘열린우리당’의 약어가 그 예이다.
   약어는 본말과 함께 사용되는 일이 많지만 약어가 득세하면서 본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급’이 그 예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대사전들에서 ‘특급’은 ‘특별 급행’이 줄어든 말로 처리하고 있다. 북한에서 간행된 사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로 본다면 ‘특별 급행’에서 온 말인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특별 급행’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앞으로 간행될 사전에서는 ‘특급’에서 독자적으로 풀이를 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국어에서는 낯설었던 말 만들기 방식을 이용하여 만든 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차’와 ‘파파라치’를 합쳐 만든 ‘차파라치’와 같은 예이다. 외견상 약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약어가 본말을 줄여서 만드는 것인 데 비해 이것은 두 말의 일부를 따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방식이어서 차이가 있다. 이 방식은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영어에서는 ‘smog’(smoke+fog), ‘netizen’((inter)net+citizen)처럼 이런 방식으로 말을 만든 사례를 찾기 어렵지 않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3동 827   ☎ (02) 2669-9721
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