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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래어 표기
   파티시에와 제빵사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이 ‘파티시에’라는 낯선 직업을 가진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극중에서 주인공 김삼순은 프랑스의 유명 제과학원에 유학을 다녀와 프랑스 식당에서 케이크나 과자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제빵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일을 하는데도, 이 드라마에서는 굳이 낯선 외국어인 ‘파티시에’라는 말을 쓰고 있다. 원래 프랑스어 pâtissier에서 온 이 말의 본래 의미는 무엇이고 바른 외래어 표기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은 이 말을 ‘*빠띠셰’, 또는 ‘*빠띠쉐’처럼 발음하고, 해당 방송국 홈페이지에서는 ‘*파티쉐’로 적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파티시에’로 적는 것이 맞다. pâtissier의 발음은 [patisje]이다. 프랑스어의 무성파열음 p, t, k는 거센소리 글자인 ‘ㅍ, ㅌ, ㅋ’으로 적는 외래어 표기 원칙에 따라 [pati-]는 ‘*빠띠’가 아니라 ‘파티’로 적어야 한다. [-sje]는 프랑스어에서 자음과 모음 사이의 반모음 [j]를 ‘이’로 적도록 한 원칙에 따라 ‘*쉐’나 ‘*셰’가 아니라 ‘시에’로 적는다. 따라서 pâtissier의 바른 외래어 표기는 ‘파티시에’가 된다.
  프랑스어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말이 주로 ‘과자를 만드는 사람’을 지시하는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제빵사’ 또는 ‘제과제빵사’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제과점이나 양식당에서 빵을 만드는 일과 과자 따위를 만드는 일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이들을 구분해서 각기 다른 말로 지칭한다고 한다. 곧 빵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불랑제’(boulanger)라고 하고, ‘파티시에’는 케이크나 파이 등 제과류나 초콜릿, 아이스크림 따위를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파티시에’가 제빵사(또는 ‘불랑제’)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위와 같은 시시콜콜한 설명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시청자들은 극중 주인공이 하는 일을 보고, 아마도 ‘제빵사’는 규모가 작은 동네 제과점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고 ‘파티시에’는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빵을 굽는 사람과 과자를 만드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일의 경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그동안 써 오던 ‘제빵사’나 ‘제과제빵사’를 써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주인공이 정말로 빵 만드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과자만을 만들고, 또 그 점이 드라마 진행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면 ‘제빵사’에 대응하는 ‘제과사’라는 말을 만들어 썼어도 좋았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시청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파티시에’같이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도 없는 어려운 외국어를 굳이 들여다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요즘 서양식 음식 문화를 선호하는 풍조를 타고 ‘파티시에’ 말고도 음식과 관련한 낯선 외국어들을 신문이나 방송, 잡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리스타’와 ‘소믈리에’이다.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 barista에서 온 말로 즉석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소믈리에’는 프랑스어 sommelier[sɔməlje]에서 온 말로 포도주를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연 ‘파티시에’나 ‘바리스타’, ‘소믈리에’ 따위 단어들의 어원과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우리말에는 이것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으므로 부득이 새말을 만들어 써야 한다. 그렇다면 외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 전에 이미 있는 말들을 이용해서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만들어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국민 누구나 아무런 제한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 매체에 이런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정보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언론 종사자들은 외국 문화나 외국어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말들을 무분별하게 들여다 쓰기 전에, 바꾸어 사용할 적당한 우리말이 없는지 더 많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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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