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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고구려의 로마자 표기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원
  중국은 2002년부터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소위 ‘동북공정’이라고 불리는 이 연구 프로젝트의 중심 시각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 같은 명분 아래 중국은 발해, 고구려 등을 중국 고대의 지방 정권으로 보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를 얻기 위해 동북삼성(고구려 유적이 있고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중국 동북 지역의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치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7월에는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의 ‘고구려 수도, 귀족과 왕족의 무덤’이 나란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런 일들을 계기로 고구려 관련 기사가 해외 언론에 종종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외신에서 흔히 사용하는 ‘고구려’의 로마자 표기가 우리의 표준 표기형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로마자 표기 문제가 제기되었다. 2000년 개정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고구려’를 Goguryeo로 적어야 하나, 대부분의 외신은 지난 60여 년 동안 줄곧 사용되어 온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라 Koguryo로 적고 있다. 표기 통일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의 주장은 국제적인 소통을 쉽게 하기 위해 ‘고구려’는 로마자 표기법에 예외를 두어 Koguryo로 적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만을 예외로 인정하면 ‘고려’ 등 관련 항목과의 연관성을 보이기도 어렵고, 개정 이후 지속적인 홍보 활동에 힘입어 이제 정착 단계에 다다른 새 로마자 표기법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을 들어 Goguryeo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주장도 팽팽히 맞섰다. 결국 문화관광부는 어문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 권한이 있는 국어심의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였다.
  국어심의회에서는 두 가지 주장의 쟁점 사항 및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말 고유명사의 국내외 로마자 표기 사용 현황, ‘고구려’를 Koguryo와 Goguryeo로 적었을 때의 장단점 등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우선 ‘고구려’의 로마자 표기 실태는 국내는 Goguryeo가 많지만, 국외에서는 Koguryo가 훨씬 우세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해외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를 비교해 보면 적게는 1.7배에서 많게는 7.2배까지 Koguryo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로마자 표기를 Koguryo로 하자는 주장은 대개 이런 현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국어심의회에서는 같은 자료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였다. 지난 60여 년간 축적되어 온 자료와 표기법 개정 이후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생산된 자료 양의 차이가 최대 7~8배라면 새 표기법에 의한 표기 확산이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고구려, 조선’ 등 역사 지명은 종전 방식의 표기가 우세하게 나타나는 편이나, ‘인천, 제주, 부산’ 등 현재 지명은 매큔-라이샤워 방식의 표기와 현행 표기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현행 표기가 더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위키피디아’(Wikipedia) 같은 외국의 백과사전 사이트나 ‘론리플래닛’(Lonely Planet) 등 해외 유명 출판사에서 최근에 간행된 책들에는 새 표기법을 채택하고 있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새 로마자 표기법을 쓰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국어심의회는 현행 표기인 Goguryeo를 변경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물론 Koguryo로 적게 되면 해외에서 널리 쓰는 표기와 일치하므로 혼동과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구려’ 한 항목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어서 다음에 다시 비슷한 문제가 생겨날 경우 예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새 표기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새 표기법을 제정한 이상 종전 표기와 달라져서 혼선을 빚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로, 표기법을 개정할 당시에 이미 예상했던 문제이다. 달라져서 불편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매큔-라이샤워 방식을 기반으로 한 종전 표기법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새 표기법을 제정하게 된 것이므로 이제 와서 외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표기형과 다르다는 것이 예외적인 표기를 인정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어심의회에서 Koguryo를 완전히 쓸 수 없도록 결정한 것은 아니다. 원칙은 Goguryeo로 하되 국제 관계상 필요한 경우에는 ( ) 안에 Koguryo를 병기할 수 있도록 하여 외국과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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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