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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중국어 표기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원
  얼마 전 서울특별시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漢城’(한성, 중국어 발음 ‘한청’)에서 ‘首爾’(수이, 중국어 발음 ‘서우얼’)로 바꾼다고 발표하였다. 서울시에서는 표기를 변경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외국 지명은 현지 발음에 가깝게 불러 주는 것이 상례여서 다른 나라에서는 ‘서울’과 유사하게 발음되도록 표기하고 있으나 유독 중국만 옛 이름인 ‘한성’을 사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어에서도 다른 언어에서 온 말은 그 나라 말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므로 ‘서울’도 마땅히 그런 원칙에 따라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외신은 막상 새 표기를 사용해야 할 당사자인 중국의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전하고 있다. 두 나라의 일부 네티즌들은 표기 문제를 가지고 웹상에서 마찰까지 빚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의 설명대로라면 중국이 새 표기를 채택해서 쓰기만 하면 간단할 것 같은데, 왜 이런 마찰이 생겨나는 것일까.
  중국어에서 외래어를 표기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한자로 쓸 수 없는 말은 가능하면 현지 발음에 가까운 소리가 나도록 한자를 찾아 적는다. ‘런던’은 ‘倫敦’(‘룬둔’), ‘워싱턴’은 ‘華盛頓’(‘화성둔’)으로, ‘코카콜라’는 ‘可口可樂’(‘커커우컬러’), ‘맥도날드’는 ‘麥當勞’(‘마이당라오’)로 적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한자 표기를 할 수 없는 서양 외래어를 적는 방식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나 일본의 지명, 인명은 해당 한자를 중국어 발음대로 읽는다. 예를 들어 ‘인천’은 仁川으로 적고 ‘런촨’과 비슷하게 발음하며, ‘도쿄’는 ‘東京’으로 적고 ‘둥징’으로 발음한다.
  ‘서울’은 우리나라 지명이지만 한자어가 아니라는 점에서 서양 외래어들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울이 중국에 이미 옛날부터 ‘漢城’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라는 사실이 중국인들에게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부터 서울을 당시 조선의 수도 이름인 ‘漢城’으로 적고 자기네 한자음에 따라 ‘한청’으로 불러 왔다. 일제 때에는 ‘한성’이 ‘경성’으로 바뀌고 해방 후에는 다시 ‘서울’로 바뀌었지만 중국에서는 이전 명칭인 ‘漢城’을 그대로 쓰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한성이 서울로 바뀌던 당시 중국이 서울에 대해 적당한 한자를 스스로 정해서 사용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당위성과는 별개로 중국어에서 서울의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권한은 전적으로 중국에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서울’은 한자어가 아니므로 적당한 한자를 정해서 쓸 수도 있고, 오래전부터 써 오던 전통에 따라 ‘漢城’ 표기를 유지할 수도 있다. 현재 중국인들은 후자의 방식을 사용해 오고 있으며 그러한 것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새 표기를 정해서 쓰도록 하는 것은 그들의 언어생활에 대한 월권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처지를 바꾸어 우리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Paris’를 ‘파리’로 적은 것이 프랑스어 발음과 다르다고 프랑스인들이 ‘빠르히’로 적기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에서는 ‘서울’의 중국어 명칭을 정하는 데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어쨌든 서울시에서는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새 표기를 결정하여 발표하였다. 따라서 지금 와서 새 표기 결정의 정당성이나 결정 과정의 타당성을 문제 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제는 새 표기를 포기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정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에서 새 표기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리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내는 자료나 표지판 등에 새 표기를 꾸준히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중국인들도 새 표기에 익숙해지게 되면 점차 옛 이름인 ‘漢城’ 표기를 버리고 우리말 발음에 가까운 ‘首爾’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 또한 전적으로 중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 정부가 새 표기를 홍보하려는 노력을 아무리 기울여도 중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울의 중국어 표기는 ‘漢城’과 ‘首爾’ 두 가지가 혼재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서울시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首爾’라는 표기를 중국이 받아들이는 게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논리를 찾아내 중국 스스로 새 표기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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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