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주머니’의 어원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주머니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양복주머니, 한복주머니, 호주머니 등이 있는가 하면, 이것도 옷의 어디 있는가에 따라 안주머니, 속주머니, 앞주머니, 뒷주머니, 가슴주머니 등이 있다. 만든 재료에 따라 가죽주머니, 그물주머니, 고무주머니, 베주머니, 비단주머니 등이 있고, 거기에 담긴 내용물에 따라 공기주머니, 눈물주머니, 모래주머니, 모이주머니, 먹물주머니, 신(발)주머니, 연장주머니, 흙주머니, 얼음주머니, 사향주머니 등이 있다. 주머니에는 꼭 구체적인 물건만 넣는 것이 아니다. 고생주머니, 꾀주머니, 복주머니, 심술주머니, 이야깃주머니, 울음주머니, 웃음주머니, 인정주머니, 근심주머니 등이 있어서, 주머니에는 별별 것을 다 넣는다. 그래도 가장 많이 넣는 것은 아마도 재물인 모양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주머니가 넉넉하다, 주머니가 가볍다, 주머니를 털다’등이 모두 재물과 연관된다.
  양복주머니는 옷에 붙어 있는 것인데, 신발주머니는 들고 다닌다. 신발을 호주머니에 넣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옷의 한 부분에 헝겊을 덧대어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들고 다니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도 이 두 가지를 다 ‘주머니’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머니’는 옷에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주머니’란 단어는 15세기에도 ‘주머니’이었다. 그 이후에도 ‘주먼이, 쥬머니, 쥬먼이’등의 표기는 보이지만, 실제로 형태상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큰 그르세  만히 봇가 덥게야 주머니에 녀허 가매 노햇다가 <구급방언해(1466년)> 주머니 렴(帘) 주머니 탁(橐)<훈몽자회(1527년)>, 샹해 모로미 주머니예 녀허 여 니라 <구황촬요(1554년)> 주먼이(荷包) <몽어유해(1768년)> 주먼이 낭(囊) <국한회어(1895년)> 오직 셰 낫 쥬머니 잇오니 <태상감응편도설언해(1852년)> 쥬먼이(囊) <한불자전(1880년)> 거지 쥬먼니(乞囊) <국한회어(1895년)> 너희 쥬먼이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신약전서(1900년)>
  ‘주머니’는 분석될 수 있는 것일까? 언뜻 보아 ‘주머니’가 명사니까 명사형 접미사 ‘ -이’가 붙은 것으로 인식하여, ‘주먼-+ -이’로 분석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러나 그렇게 분석하면, ‘주먼’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주머니’는 오히려 ‘줌 +-어니’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줌’은 ‘한 줌,두 줌’의 ‘줌’인데, 이 ‘줌’은 ‘쥐다’ (把)의 어간 ‘쥐-’의 명사형이다. 즉 ‘쥐-’에 명사형 접미사 ‘-’이 붙은 것인데, ‘쥠’이 되지 않고 ‘줌’이 되었다. 이것은 ‘(숨을)쉬다’의 어간 ‘쉬-’에 ‘-’이 붙으면 ‘쉼’이 되지 않고 ‘숨’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주머니’는 ‘ (쥐- + -) + -어니’로 분석된다. 한 줌이 들어갈 만한 크기나 부피의 공간을 가진 자루 비슷한 것에 이름이 붙은 것이어서, 주머니는 자루에 비해 그 크기가 훨씬 작아야 할 것이다.
  이 ‘주머니’와 음상과 의미가 유사한 것이 만주어에 있다는 설도 있다. 즉 만주어의 jumanggi(작은 주머니)가 국어의 ‘주머니’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지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국어의 ‘많이’와 영어의 ‘many’도 음상과 의미가 유사하다.
  그런데 이 ‘주머니’와 같은 뜻으로 ‘줌치’란 단어도 동시에 사용되어 왔다. 지금도 방언형에는 이 ‘줌치’가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도 ‘쥐-’에 명사형 접미사 ‘-’이 붙은 ‘줌’에 ‘-치’가 붙은 것이다. 접미사 ‘ -치’는 원래 물고기 이름에 많이 붙는 것이지만, ‘줌치’의 ‘-치’는 그러한 ‘-치’가 아니라, ‘중치, 중간치, 날림치, 당년치, 버림치(못쓰게 되어서 버려진 물건)’의 ‘-치’처럼 일정한 크기를 가진 물건을 말하는 데 사용되는 접미사 ‘-치’이다. ‘줌치’는 16세기부터 등장하는데, ‘주머니’에 밀려 방언형으로만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블근  새 뵈 줌치예 녀허(분문온역이해방<1542년>) 국화 만발헐  슐 한 말에  두 되을 줌치에 너허 슐 독 속에 라 두면 향가 가득허니 <규합총서(1869년)> 줌치(囊) <한불자전(1880년)> 줌치 낭(囊) <역대천자문(1910년)>
  ‘줌치’에 대해서는 18세기에 황윤석(黃胤錫)이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란 책에서 여진어라고 하였으나,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서 믿기 어렵다. ‘주머니’와 ‘줌치’의 ‘줌’이 동일하고, 그래서 이것이 합쳐져 ‘주먼치’라는 방언형 (전남 지역)도 생겨났다.
  ‘주머니’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였던 단어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이란 단어였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알 수 없다. 15세기부터 쓰이다가 19세기에 사라져 버렸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방언형으로도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
  恭敬며 尊重히 너겨 種種花香과 瓔珞과 幡과 蓋와 풍류로 供養고 五色 채 녀허 조  오<석보상절(1447년)> 문 닐오대 그대 만일 구여 편안히 고치면 당당히  기우려 샤례리라 <대명셩쥬현신개운뎐(19세기)>
  이미 17세기에 ‘’은 ‘주머니’에 그 자리를 내 주고 만다. 이러한 사실은 동일 한문 원문의 번역에서 ‘’이‘주머니’로 바뀐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네 나를  야 주 엇더뇨(你做饋我荷包如何) <번역박통사(1517년)> - 네 날을 주머니 라 줌이 엇더뇨 <박통사언해(1677년)> - 내  네게 비니   져근 주머니 라 나 주미 엇더 뇨<박통사신석언해(1765년)>
  그렇다면 ‘주머니’와 ‘’은 어떠한 의미차이가 있었으며 왜 ‘’은 사라졌을까? ‘’은 주로 ‘차거나 매는 주머니’를 뜻하였다. 옷에 붙어 있는 것은 ‘’이라고 하지 않았다. ‘주머니’는 옷에 붙어 있는 것이거나 차는 것을 다 의미하였다. 다음 예문들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靑玉案 비르서 입고 블근 노 란 디 말라 <중간두시언해(1613년)> 블근  녀허 남지 왼해 오 겨지븐 올해 라<분문온역이해방(1542년)> 珍珠로 花樣 겨   주머니 고<박통사신석언해(1765년)>
  그렇다고 ‘주머니’나 ‘’에 넣는 물건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모두 ‘약, 돈, 보석, 술’등을 넣었다. 그러다가 20세기의 20년대와 30년대에 중국의 ‘호주머니’(胡주머니)와 서양의 ‘양복주머니’가 들어온다.
  무엇을 생각햇는가 한참 잇드니 호주머니에서 단풍갑을 끄낸다.<만무방(1935년)> 호주머니에 히연 한 봉을 넣어주고 <봄봄(1935년)> 그 이튼 날 당신 양복 주머니를 보닛가 하이칼라 향수 냄새가 나는 녀자 수건이 들엇든데 그래 <계집하인(1925년)>
  이 단어들이 들어오면서 ‘차거나 매는’ ‘’은 사라지고 차거나 매거나 옷에 딸린 모든 것을 ‘주머니’가 대표하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가슴에 양복  주머니 치 된 거슬 <경셰죵(1910년)> 방바닥에 가 펄석 주저안젓다가 그 R의 外套 주머니에 손을 느어 담배 한개를 내여 피여 물엇나이다<별을안거든(1922년)>
  이 이외에도 ‘주머니’와 거의 같은 듯으로 사용되던 단어들이 있었는데, 한자어인 ‘낭탁’ (囊橐,18세기-20세기에 사용)), 중국어 차용어인 ‘대련’(塔連, 17세기-19세기에 사용), 그리고 ‘염낭’(염囊, 20세기에 사용), ‘봉창’(20세기에 사용)등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거의 사라지고 온통 ‘주머니’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40년대 중반에 다시 영어인 ‘포켓’이 등장한다.
  인제는 포켓 속에 남은 것이 꼭 삼원하고 동전 멧푼이다 <레듸메이드인생(1945년)> 문태석의 포켓 속에 돈이 있다는 그 뜻이었다 <도야지(1948년)>
  ‘포켓’은 양복 주머니를 말하는 것이어서, ‘신발 포켓’이란 단어를 생성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머니’는 이 ‘포켓’도 이기고 15세기부터 지금까지 그 세력을 계속 확대해 가고 있다. 주머니와 연관되는 모든 단어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