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다람쥐’의 어원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다람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다람쥐 밤 까먹듯’과 같은 속담이나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등의 동요 가사 등에서 쉽게 접하는 단어다. 전에는 새나 물고기를 파는 가게 앞에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다람쥐’가 ‘다람’과 ‘쥐’로 분석된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다람쥐’의 ‘쥐’는 ‘박쥐, 생쥐, 얼럭쥐, 땃쥐, 두더지(원래는 ‘두디쥐’이다), 심지어 ‘콩쥐팥쥐’ 등의 ‘쥐’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람쥐’는 ‘생쥐, 박쥐’와는 달리 ‘쥐’로 연상되지 않는다. ‘쥐’만 보면 질색을 하는 여성들도 ‘다람쥐’를 보면 귀엽다고 앞으로 다가선다. ‘쥐’라는 단어에 대한 연상 작용이 의미 전달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다. 쥐목에 속하는 포유류지만, 꼬리가 길고 색깔이 예뻐서 사람들이 애완동물로 기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은 다람쥐를 애완동물로 기르기 시작한 후에 나온 속담이리라. ‘박쥐’는 ‘쥐’에서 온 말이고 ‘생쥐’는 ‘사향쥐’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어서 ‘쥐’ 앞에 오는 것은 동사의 어간이거나 명사일 것이기 때문에, ‘다람쥐’의 ‘다람’도 그 부류에 속할 것이다.
  ‘다람쥐’는 ‘쥐’라는 형태로 18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다쥐’나 오늘날의 형태인 ‘다람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이다.

  쥐(豆鼠) <한청문감>(18세기) 다쥐 鼯 <한불자전(1880년)> 하하 탐음 질투는 마음이 엇지 다쥐 갓튼고 <조군영적지(1881년)> 쥐 잇니 나무 가지 우희 잇서 여오고 여가며 <훈아진언(1894년)> 호랑이와 양과 슴과 원슝이와 다쥐와 나귀와 가루와 고슌도치와 박쥐와 <경셰죵(1910년)> 졉빈 위원의 원슝이오 다과위원의 다쥐며 시간위원의 황계더라 <경셰죵(1910년)> 다람쥐 저(狙) <1895국한회,066> 다람쥐 언(鼴) <국한회어(1895년)>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모양으로, 까닭도 모르고 또한 아무 필요도 없이, 제 자리에서 맴을 돌며 허위적거리는 것이 인생의 길일가? <상록수(1935년)>
  이 ‘쥐’ 역시 ‘’과 ‘쥐’로 분석되는데, ‘’은 ‘다’(走)의 어간 ‘-’에 명사형 접미사 ‘’이 붙은 것이다. ‘-’이 소위 ㄷ 변칙동사이어서 모음 앞에서 ‘ㄷ’이 ‘ㄹ’로 된 것이다. ‘- + -’이 ‘’이 되면서 ‘달리기’란 뜻을 가진 명사가 되어 사용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접미사 ‘-질’이 붙어 오늘날의 ‘달음박질’에 해당하는 ‘질’이 파생되었다.
   가리온 총이되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呂布ㅣ 즉시 라나다 董卓이 올 제 呂布ㅣ 이 급니 <삼역총해(1703년)> 젼년에 牢子들희 질을 네 본다 <박통사언해(1677년)> 밀기라 <흥부젼(19세기)>
  이 ‘’에 ‘쥐’란 단어가 합성되어 ‘쥐’가 된 것이다. 결국 ‘쥐’는 ‘- + - + 쥐’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니까 ‘쥐’는 ‘달리기 쥐’(즉 달리는 쥐)란 뜻이다. ‘다람쥐’의 재빠름을 비유하여 붙인 이름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다람쥐를 낼샌 것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원 산에셔 다람쥐갓치 날샌 놈이라 <치악산(1908년)>
  이렇게 ‘쥐’가 ‘달리기’를 잘한다는 데에서 붙여졌다고 하는 사실은 ‘쥐’가 나오기 이전의 형태에서도 증명된다. ‘쥐’가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18세기까지는 쥐‘는 한 예도 보이지 않고, ‘라미’(또는 ‘람이, 다람이’)가 등장한다.
  鼯 라미오 鼠 쥐라 <능엄경언해(1461년)> 라미 오(鼯) 라미 (鼪) <훈몽자회(1527년)>  라미(鼺鼠) <동의보감(1613년)> 라미(山鼠 一云 松鼠 又 花鼠) <역어유해(1690년)> 라미(松鼠) <동문유해(1748년)> 라미(山鼠) <방언유석(1778년)> 너구리 넛손 보고 둑겁이 외손 보고 다람이 용치고 과부 기지 켤 졔 <남원고사(19세기)> 람이(松鼠) <몽어유해(1768년)>람이 오(鼯) <왜어유해(18세기)>
  이 ‘라미’도 ‘쥐’와 마찬가지로 ‘다’의 어간 ‘-’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라미’를 ‘- + -암’이 ‘람’이 되고, 여기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생긴 것으로 해석하기 쉬운 것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사형 접미사에 ‘-’은 있지만 ‘-암’은 없기 때문이다. ‘라미’가 ‘미’로 나타나면 그러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미’라는 형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미’는 ‘- + -아미’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아미’는 ‘귓도라미(귓돌 + -아미), 쓰르라미(쓰름(쓰를) + -아미), 동그라미(동글- + -아미) 올가미(옭- + -아미)’ 등에서도 보이는 접미사이다.
  그런데 이 ‘라미’는 18세기 말까지 쓰이고 가끔 19세기에도 보이지만, 그 이후는 주로 방언형에서나 나타나고 있다. ‘라미’는 ‘쥐’에 연관되지 않았던 것인데, 18세기에 와서 ‘쥐’와 연관시키면서 ‘라미’가 ‘쥐’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람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인상이 있는 것 같다. ꡔ국한회어ꡕ(1895년)라는 사전에는 다람쥐가 굴을 파고 은폐된 곳에서 살기 때문인지, ‘다람쥐하여 치다’를 ‘저격’(狙擊)으로 풀이한 예가 보이기도 한다. 옛 문헌에도 그러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 보이는데, 상대방을 몰래 숨어서 공격하기 위해 다람쥐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을 표현한 다음 문장이 흥미롭다.
  역 쳘퇴를 고 박낭 즁의 다람쥐갓치 업엿다가 시황의 거 사장의 지나거늘 <장방젼(19세기)>
  최근에 북한 학자와 대화하는 중에 ‘손금 없는 사람’(하도 손바닥을 비벼대서 손금이 다 닳아 없어진 사람, 즉 아부하는 사람)이란 표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니, 설명을 다 듣고 나서는 ‘아, 다람쥐 같은 놈?’ 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다람쥐가 뒷다리로 서서는 좌우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면서 앞발을 싹싹 비벼대는 모습이 우리의 ‘손금 없는 사람’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