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어르신네'의 어원

홍 윤 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요즈음 ‘어르신’이나 ‘어르신네’란 단어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 ‘어르신, 어르신네’ 가 연세에 무관하게 지칭할 수 있고, ‘할아버지’에 비해 더 친근감이 드는 것으로 생각하나 보다. ‘어르신’ 은 원래 남자 노인들께만 썼던 명칭인데, 여자 노인께도 쓰는 것을 보면, 의미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어르신네’는 ‘어르신’에 ‘여편네, 남정네, 복동이네’등에 보이는 접미사 ‘-네’ 가 붙은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15세기 국어에서 ‘네’ (원래는 ‘내’ 였다)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였는데, 오늘날 ‘친근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지만, ‘어르신네’ 에서는 아직도 존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르신’도 ‘어른’을 높이기 위해 존칭의 ‘-시-’ 가 붙은 것처럼 이해는 되는데, ‘어른’에 ‘시’ 가 연결되면 ‘*어른시’ 가 안 되고, 어떻게 ‘어르신’ 이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며>, 어째서 동사가 아닌 명사에 존칭의 ‘-시-’ 가 붙었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른’ 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르’ 와 ‘ㄴ’ 사이에 어떻게 해서 존칭의 ‘-시-’ 가 들어가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얼다’(뜻은 ‘교합하다’였지만, 사람에게는 ‘혼인하다’란 뜻이다)의 어간 ‘얼-’에 관형형 어미 ‘-ㄴ’ 이 붙어 ‘얼운’이 되었는데, 19세기 말에 이 ‘얼운’이 변화하여 ‘어른’이 된 것이다. 여기에 ‘-우-’가 들어간 것은 동명사를 만들 때 ‘오/우’ 가 개입하던 규칙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관형형의 통사 구성이 명사로 어휘화되는 예는 흔하지 않은데, 15세기에는 몇 예들이 보이기도 한다(道士ㅣ 쉬나니러라<월인석보>).
  ‘얼다’는 원래 ‘혼인하다’란 뜻이었으니, ‘얼운’이란 결국 혼인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얼다’의 관형형 ‘얼운’이 존칭형이 되면 ‘-시-’가 연결되어 자연히 ‘얼우신’이 되는데, 이 ‘얼우신’ 도 관형형 ‘얼운’이 명사가 된 것처럼 명사로 된 것이다. ‘-ㄴ’ 을 명사형 접미사라고 하면 쉽게 해석될 것 같지만, ‘-ㄴ’ 이 명사형 접미사로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이렇게 복잡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5세기 문헌에서 ‘얼우신’은 주로 ‘얼우신’으로 표기되지 ‘어루신’으로 표기되는 일이 흔하지 않다. 소위 연철 표기를 중심으로 하던 때에 이렇게 어간을 구별하여 표기하였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얼우신’은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쓰이고, 18세기에는 ‘어루신’ 이 나타난다. 그리고 20세기에 와서야 ‘어르신’이란 오늘날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어른’은 19세기에 나타난다).

얼우신하 허믈 마쇼셔 <번역박통사(1517년)> 랄마다 모로매 冠帶야 얼우시늘 뫼오며 샹해 비록장 더운 저기라도 부모와 얼우신의 겯틔 이셔곳갈와 보션과밧디 아니야 <번역소학(1517년)> 어루신네셰히 혜여 보소 <염불보권문(1776년)> 이 뜻을 어르신께 전달해 주시요<영원의 미소(1933년)>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어르신’을 ‘①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②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는데, 원래 이 ‘얼우신’ 은 그 뜻이 매우 다양하였다. ‘어르신네’에 대한 동일한 한문 원문의 다른 번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도록 한다. <삼강행실도>의 원간본에는 ‘얼우신’이라고 표현한 것을 후대의 중간본에서는 ‘대인’(大人)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한문 원문에 견인된 것이리라. 이때에 ‘얼우신’ 이라고 부른 ‘합졀’ 이라는 사람은 그 집의 종이었다.
합졀이 닐오얼우시니 나 야 아기늘 뫼와 도라가 부  위로더시니<삼강행실도(1471년)>합졀이 붓잡아대인이 날로여곰 낭군을 보젼여 도라가 부인을 위로여시니<삼강행실도 중간본>
    ‘대인’이 신분이나 관직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던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어르신네’는 신분이나 관직과는 상관없이 ‘존경할 만한 윗사람’ 을 일컫는 말로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도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일찍이 17세기에 그러한 변화를 겪었는데, ‘어르신네’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가 오는 현상으로 알 수 있다. 즉 ‘가문 어르신네, 일가 어르신네, 싀어르신네, 밧갓 어르신네, 백부장의 어르신네’ 등등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 일가친척 중의 웃어른도 ‘어르신네’라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직접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그 앞에 붙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가문 얼우신내 뎌러시니이업시 놀랍다 <병자일기(1636년)> 리판셔가 그 편지를 닑어 들니며 통긔는 누가얏슬듯냐 네 싀어루신네가셧지<치악산> 그 날붓터 부모겨오셔 말을 곳치시고 일가 어루신공경시니 <한중록(19세기)> 나보다 삼년 아군 밧갓 어루신네가셧소<빈상셜> ×× 경찰서경제계 주임이던 백부장의 어르신네 이 백주사가 아닌가<미스터방(20세기)> (박) 너 셔울 교동 사한참봉이라고 그젼에 남촌 집에 자죠 오시든 이를 겟늬(계) 경갑이 어루신네요 (박) 올타 그 사람 말이다 <송뢰금>
  그런데 자신의 부친은 절대로 ‘어르신’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1인칭을 높이지 않는 국어의 특징으로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면 ‘어른’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르신’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할 때에만 사용되었지만, ‘어른’은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범칭의 성인을 말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어른’에는 높임의 의미가 거의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주격 조사 ‘-께서’ 와 ‘-이/-가’ 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다음 예문의 ‘어른’에서는 높임의 뜻을 찾기 어렵다.
보ㅅ짐 지고 가시어룬 거긔 잠계십시오 <화세계>
  국어에서 사람을 지칭하는 어휘들이 높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현상을 보고 그 시대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