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봉고'와 사전의 표제어

이 운 영(李 云 暎) / 국립국어연구원

   사전 편찬 작업을 하다 보면 외부로부터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다. 통화의 내용은 사전에서 발견한 단순한 오류에 대한 지적부터 사전 체계 전반에 대한 의견 제시까지 매우 폭넓다. 그중에는 많이 쓰는 말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없더라는 내용도 상당수 있다. 이렇게 많이 쓰이는 데도 사전에 오르지 않은 단어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 반드시 올라야 하는데 편찬 과정에서의 문제로 누락된 것들이다. 이러한 단어는 최대한 수집하여 사전을 개정할 때에 싣게 된다.
   둘째는 방언이나 비표준어이다. 물론 방언이나 비표준어라도 월등히 많이 사용되는 것은 ‘‘○○’의 방언’, ‘‘○○’의 잘못’이라는 뜻풀이를 달고 사전에 오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일부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 해도 등재되지 않을 수 있다. 비슷한 유형으로는 비속어도 있다. 비속어도 사전에 ‘‘○○’을 속되게 이르는 말’과 같은 뜻풀이를 달고 올라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이 역시 제한적으로 오른다.
   셋째는 흔히 ‘신어’라고 부르는 단어들이다. 현재 검색 순위 1, 2위를 다투는 단어를 꼽으라면 ‘얼짱’과 ‘몸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이 단어들은 올라 있지 않다. 쓰인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 단어들이 사전에 오른다는 보장은 없다. 단어 합성 규칙 등의 문법적인 면을 떠나서라도 이러한 단어들이 언제까지 쓰이다 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위 ‘유행어’라고 해서 일시적인 시기에 주로 특정 연령층이나 집단에 의해 집중적으로 쓰이다 사라지는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어는 사전에 오르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말한 경우 외에 많이 쓰이는 데 사전에 오르지 않는 또 다른 단어가 바로 ‘봉고’와 같은 것이다. 80년대 초에 5~6인 정도가 타는 승용차와 대형 버스의 중간 정도의 크기로 생산된 ‘봉고’는 한동안 이러한 유형의 자동차를 지칭하는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었다. 지금도 중장년 층에서는 여전히 ‘봉고’ 또는 ‘봉고차’라는 단어가 이러한 차종을 가리키는 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전에 ‘봉고’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대신 ‘승합차’, ‘승합자동차’라는 단어가 등재되어 있고, 실제로 요즘은 ‘승합차’가 예전의 ‘봉고’가 쓰이던 자리에 대신해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봉고’가 ‘승용차’나 ‘버스’ 등과 같이 자동차의 특정 종류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아니라 특정 회사가 제작한 특정한 상품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이러한 종류의 차가 ‘봉고’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었지만 이후 수많은 유사한 차들이 생산되면서 ‘승합차’라는 보통 명사가 이들 모두를 지칭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 상품의 이름이라고 해서 모두 사전에 싣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정 상품의 이름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그 상품명이 아예 그 유형의 사물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는 경우에는 사전에 등재되기도 한다. ‘제록스’와 ‘아스피린’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제록스’는 미국 사무용 복사기의 상품 이름이지만, 문서를 자동으로 복사하는 방식이나 그러한 기계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도 사용되면서 사전에 등재되었다.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실산’을 재료로 만든 약의 상품명이지만 일반 사람들이 해열·진통제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쓰이기 때문에 역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봉고’의 경우는 이 정도로 널리 쓰였다고 보기는 힘들고, 곧 ‘승합차’라는 단어가 이를 대체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전에는 오르지 않은 것이다.
   사회가 변하면서 많은 단어들도 함께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중에서 어떠한 단어는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서 종국에는 사전에 등재되기도 하지만 더 많은 단어들은 잠시 쓰이다 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무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전 편찬자들은 사전에 등재할 표제어를 선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