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색시'의 어원

홍 윤 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색시’를 ① ‘새색시’ 와 같은 말 ②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젊은 여자 ③ 술집 따위의 접대부를 이르는 말 ④ 예전에, 젊은 아내를 부르거나 이르던 말의 네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색시’(또는 ‘색씨’)란 단어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초인데, 이때에도 다음 예문에서 보듯이 이 네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리 게집들은 색시 구경하기와 직조 구경하기에 절망 골하여 <소강절(20세기초)>(①의 뜻) 조선 안의 그 수탄 색시들 중에 「채영신」 석자만 쳐다보고, 눈을 꿈벅꿈벅하고 기다리는 나 자신이 <심훈, 상록수(1935년)> (② 의 뜻) 녀자가 술을 파는 내외 술집이엇다. 『나만 러 오시우 . 내 어엽분 색시 구경을 식켜 줄 터이니!』<나도향, 池亨根(1926년)>(③ 의 뜻) 『여보 아즈머니! 우리 집 색시 어듸 갓는지 보앗소?』<나도향, 물레방아(1925년)>(④의 뜻)

‘색시’는 원래 ‘갓 시집온 젊은 여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뜻으로는 ‘색시’가 쓰이지 않고 ‘새색시’ 가 쓰이고 있다 . 아마도 ‘색시’가 ‘술집 등의 접대부나 창녀’를 일컫는 말이 되면서 ‘색시’는 기피하는 단어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 . ‘새색시’(또는 ‘새색씨’)는 ‘새 + 색시’ 로 분석되는데, 이 단어도 그 예를 20세기 초의 문헌에서 처음 발견할 수 있다.

 아모 소리 안이하고 新郞의 얼골만 겻눈으로 흘겨 보는 새색시의 얼골 갓흔 말님의 얼골 빗츨 나는 보기 원합니다 <나도향, 젊은이의 시절(1922년)> 그 건너 집 동산에서는 새색씨의 다홍 치마 자락이 울타리 사이로 보이는 듯 마는 듯 하는데 <나도향, 어머니(1952년)>

그러면 ‘색시’는 어떻게 분석되고 어떤 단어에서 비롯된 것일까? ‘색시’를 ‘섹시’(sexy)에서 찾으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색 (色) + 시(氏)’로 분석하려는 사람은 있음직하다 . 왜냐 하면 19세기 말에 이미 ‘ 色 쓰다(用色)’는 단어가 출현하기 때문이다(국한회어). 그러나 ‘색시’(또는 ‘색씨’)는 엉뚱하게도 ‘새악시’(또는 ‘새악씨’)가 줄어든 말이다. ‘새악시’는 17세기부터 그 용례가 출현하다가 20세기 초에 사라지고, 이어서 20세기 초에 ‘색시’가 등장한다. 19세기 말의 각종 사전에 아직 ‘색시’란 올림말이 없고 , 대신에 이에 해당하는 단어로서는 ‘새악시’가 등재되어 있으며, 또 방언형에 ‘샥시’(경기도), ‘ 시악시’(전남) 등이 보이는 점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새악시(女孩兒) <역어유해(1690년)> 졂은 와 어린 새악시 몹시 굴어도 능히 그 교 식이지 못니 <성경직해(1892년)> 새악씨(新婦) <한불자전(1880년)> 새악씨(處女) <국한회어(1895년)> 김씨 홍졔원 새악씨로셔 오 에셔 사 외인 공셔방의게 츌가엿더니 <치명일기(1895년)> 뎌 옥  새악씨 뉘 감히 핍박리오 <기해일기(1905년)>

그렇다면 ‘새악시’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새악시’ 는 ‘새 + 악시’로 분석될 것이 분명한데, 이때의 ‘악시’는 무엇일까? ‘악시’ 는 ‘각시’ 다 . ‘새각시’ 의 음운 변화로 말미암아 ‘새악시’가 발생한 것이다 . 즉 ‘새각시’는 ‘새 +각시’ 로 분석되고 ‘각시’가 ‘아내’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새색시’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었다. ‘각시’가 15세기에 흔히 사용되었으므로 ‘새각시’도 이 시기에 나타날 것 같지만, 실은 ‘새각시’는 17세기에 처음 보인다.

뎌 새각시 얼굴이 장 고아 쥰슈홈이 觀音菩薩 고 <박통사언해(1677년)> 올   十六歲니 自然이 새 각시라 언머 財禮 드리더뇨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새각시’도 17세기에 이미 ‘새악시’(또는 ‘새악씨’)로 변하여 나타난다. ‘새각시’ 의 ‘새’ 와 ‘각시’사이에서 ‘ㄱ’ 이 탈락한 것이다. ‘새삼’이 ‘새’이 되는 곳과 유사한 음운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20세기초까지도 쓰이었다. 방언형에서는 아직도 ‘새각시’(또는 ‘새각씨’)가 ‘새악시’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새각시’를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앞에서 예를 든 『박통사언해』와 『박통사신석언해』와 계통을 같이 하는 16세기의 『번역박통사』에서는 이들을 ‘숟갇나’라고 하였다. 아래의 예문에서 ‘숟갇나’와 ‘니믈리기’(後婚女)가 대립되며, 이의 후대본인 『박통사언해』(1677년)와 『박통사신석언해』(1765년)에서는 ‘새각시’로 대응되어서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숟갇나가 니믈리기가 (女孩兒那後婚) 올히  열여스신 숟갇나라 (今年纔十六歲的女孩兒) <번역박통사(16세기> 새각시러냐 니믈리기러냐 올 十六 歲엣 새 각시러라 <박통사언해> 이 새각시러냐 당시롱 뎌니 물리기러냐 올 六歲니 自然이 새 각시라 <박통사신석언해>

결국 ‘각시’와 ‘숟갇나’가 쓰이다가 ‘각시’에 ‘새’라는 접사가 붙은 ‘새각시’로 대치된 뒤에 ‘새악시’로 음운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이 축약되어 ‘색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색시’에 다시 ‘새’ 를 붙여 ‘새색시’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새색시’는 ‘새 + (새 + 각시)’로 분석되어서 ‘새’(新)가 이중으로 들어간 희한한 단어인 셈이다.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에는 ‘색씨’를 ‘새색씨’의 준말이라고 했고 조선어학회의 『큰사전』(1950년)에도 ‘색시’를 ‘새색시’의 준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사전』(1920년)에는 ‘색씨’가 ‘미혼의 여자’로만 기술되어 있고, ‘신부 (新婦)’의 뜻으로는 ‘새아기씨’와 ‘새아씨’가 실려 있다.

이 ‘새색시’와 뜻이 매우 비슷한 말로 지금 ‘새댁’이 흔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새댁’ 은 원뜻은 ‘사람’ 이 아닌 ‘집’ 을 일컫는 것이었다 . 그래서 ‘새’ 이라고 표기되었고 , 또 그 뜻도 신랑집에서 신부집을 말할 때 쓰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색시’와 같은 뜻으로 전이된 것은 19세기말이었다. 

상쟈의 옷 새의셔 여 왓다 <병자일기(1636년)> 새(新宅) <한불자전(1880년)> 새 新婦 <국한회어(1895년)> 갓 잡아온 새댁 모양으로 씻는 감자나 씻을 뿐 잠잣고 잇섯다 <김유정, 소낙비(1935년)> 두 눈구녁만 남기고는 탈박아지처럼 분을 하얗게 뒤집어 쓴 새댁네도 섞였다. <상록수(193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