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네'의 어원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로 시작되는 대중가요 '칠갑산'의 가사 중, '아낙네야'를 '여편네야'로 바꾸면 이 노래의 맛은 어떻게 변할까? '아낙네'나 '여편네'나 모두 '부녀자'를 가리키는 것 같지만 그 뜻은 사뭇 다르다. '여편네'를 '결혼한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하면, '아낙네'는 '남의 집 부녀자를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것이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다.
'여편네'가 '여편'과 '네'로 분석되듯이 '아낙네'는 우선 '아낙'과 '네'로 분석될 수 있다. '아낙네'와 거의 같은 뜻으로 '네'가 붙지 않은 '아낙'이 독립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낙'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을까? '아낙'과 의미상 연관이 있는 '아내'가 원래 '안해'였고, 이것은 '안'과 '해'로 분석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낙'도 '안'과 '악'으로 분석될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은 '안해'의 '안'이나 '안 사람'의 '안'처럼 '內'의 뜻을 가지며 동시에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낙'은 '안악'으로도 표기되었었다.
'-악'은 '-억'과 함께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인데, 주로 작은 것을 뜻할 때 쓰인다. '터럭'(털 + -억), '주먹'(줌 + -억), '뜨럭'(뜰 + -억), '쪼각'(쪽 + -악)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파생어들에서 보듯이 접미사 '-악/-억'이 붙어서 사람을 일컫는 단어로 된 예가 없는데, 왜 '아낙'만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을까? 원래 '아낙'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아낙'이 생겨났을 때의 원래의 뜻은 『표준국어대사전』 등에 풀이되어 있듯이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러한 용례로 사용된 예들이 흔히 보인다.
그러다가 그 장소에 거처하는 사람의 뜻을 갖게 되어 '안악'은 '장소'와 '사람'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예문의 '안악에셔는 모르심니다'의 '안악'은 오늘날의 '아낙네'를, 그리고 '안악에 드러가'의 '안악'은 '내정'(內庭)을 뜻한다.
'안악'이 '내정'(內庭)의 뜻을 잃고 '안뜰'에 그 자리를 넘겨준 뒤에 이 '안악'에 '-네'가 붙어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원래 '-네'는 15세기에 존칭 표시의 명사에 붙는 복수 접미사였었지만, 근대국어에 와서 평칭이나 자기 겸양을 나타내는 말에 쓰이게 되면서 복수의 의미보다는 낮추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낙네'는 '안뜰에 사는 부녀자'란 뜻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방언에서는 '아낙네'를 '내뎡'(內庭) (평북), 안들('內庭'을 번역한 '안뜰')(강원, 경남북, 함남), 안깐(안間) 안깐네 앙깐이(함북) 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內)에 접미사 '-악'이 붙어서 '안악'이 되었는데, 이때의 뜻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조그마한 안뜰'이었다. 이것이 그곳에 사는 부녀자란 뜻으로 확대되어 같이 쓰이다가 장소를 뜻하는 '아낙'이 다른 단어로 대치된 뒤에 여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네'가 붙어 '안악네'가 된 것이다. 이것이 표기상으로 '아낙네'로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아낙'과 아낙네'는 모두 19세기부터 그 자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생긴 단어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