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이해]

방언과 역사

이태영(李太永) / 전북대학교

우리는 한 지역 사회에 살면서 생활 도구, 농사 도구, 집의 구조, 의식 구조 등 유형, 무형의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것들은 오랜 과거로부터 함께 해 온 것이기 때문에 강한 역사성을 띠고 있다.
    오래된 그림을 '민화'라고 하고, 오래된 장농을 '반다지'라고 하여 요즘 사람들이 비싼 가격으로 사서 즐기고 감상을 한다. 박물관에 가 보면 우리 선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많은 도구들을 보면서 '야! 이런 물건을 쓰고 살았구나!' 하며 감탄하는데, 그것은 역사나 문화의 이질감에서 오는 감탄이 아니고, 동질의 역사, 동질의 문화에 대한 경외심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탄성인 것이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그러한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과거와 조금 다른 물건을 쓰고 있을 뿐이지 완전히 다른 물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물건은 과거로부터 온 것이고, 그러기에 강한 역사성이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역사로부터 오늘을 사는 방법을 배우고, 선조의 지혜로움을 배우는 것이다.
    말도 역사적으로 변해 온 것이어서 말 속에는 과거의 문화가 스며 있다. 말에는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에는 500년 전의 말, 1,000년 전의 말이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전라도 말에 우는 애를 달랠 때 '애를 달갠다' 말한다. '달개다'의 중세 국어형은 '달애다'인데, 여기서 '애'의 고어형은 '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방언에서는 중세 이전의 어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씀바귀'라는 식물이 있다. 이것은 전북 방언에서는 '싸랑부리, 싸난부리'라고 말하는데 알고 보면 '부리'는 중세 국어의 '불휘'를 발음한 것이다.
    전북 방언에서는 '만들다'를 '맹글다, 맨들다'라고 말한다. '맹글다'는 중세 국어에서 쓰던 '다'라는 말이 지금까지 어른들에게서 사용되는 것이다. '다'는 '새로 스믈여듧 字 노니'에서처럼 훈민정음에 나오는 말이다.
    "어렸을 때부텀 자기 물건을 맹글어 쓰는 습관을 길러야지, 맨날 남이 맨든 물건만 쓰먼 발전허들 못허는 거여."
    전북 방언의 '남새'는 '채소(菜蔬)'와 '나물 반찬'을 일컫는 말로서 표준어이자 방언이다. 이 '남새'란 말은 16세기 국어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그때는 '새'라고 쓰였다. 'ㅎ + 새'로 이루어진 복합어가 줄어서 '남새'가 된 것이다. 이때 쓰이는 '새'는 '풀'을 의미하는 '茅(띠 모)'자의 우리말이었다. 그러니까 고유어인 '나물'과 고유어인 '새'가 연결되어 '남새'가 된 것이다.
    전북 지방에서는 '나무'를 '낭구'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이때 쓰는 '낭구'는 중세 국어에서 쓰던 '남ㄱ'을 그대로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언이면서 역사적인 잔존형인 셈이다. 나무를 심을 때 '심다'는 표현도 '심군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때 '심그다'도 역시 중세 국어의 잔존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처럼 방언은 우리에게 오래 전의 역사를 보여 주기 때문에 유형의 문화재처럼 아주 소중히, 아주 면밀히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은 현대에 생성된 말도 있지만, 역사성을 이어가는 먼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 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