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구두쇠'의 어원

홍 윤 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돈이나 재물 따위를 쓰는 데에 몹시 인색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여럿 있다. '구두쇠, 수전노, 자린고비' 이외에 최근에는 '노랭이, 짠돌이, 굳짜, 가죽고리' 등의 별명 및 은어가 있다. 수전노는 한자 '수전노'(守錢奴)에서 온 한자어다. 직역하면 '돈을 지키는 노예'라는 뜻이다. '자린고비'도 언뜻 보아 고유어인 것 같지만, '자린'(玼吝), 즉 '좋지 못한 마음이나 인색한 것'에 '주머니'를 뜻하는 방언형인 '고비'가 붙어서 생긴 단어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들은 조금씩 그 쓰임이 달랐었다. '자린고비'는 스스로에게 인색한 사람을, '구두쇠'는 남에게 인색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반찬으로 대신했다는 사람에게는 '구두쇠'보다는 '자린고비'가, '스크루지 영감'(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송가')처럼 남에게 인색한 사람에게는 '구두쇠'가 더 잘 어울린다.
    '구두쇠'라는 단어는 19세기 중반까지의 문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구두쇠(吝嗇者)'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895년에 간행된 『국한회어』라는 책이다. 그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어사전』(1920년)과 문세영이 편찬한 『조선어사전』(1938년)에 등장하고 이 이후로 모든 사전에 실려 있다.

셔방님을 지며 들어오 사은 그 집 쥬인 구두쇠라  자라 나은 십 오륙 셰 가량이오<설중매(1908년)> 구두쇠가 품에셔 치부을 야 노흐며 <설중매(1908년)>

이 '구두쇠'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민간어원설이 있다. 서양의 어느 부자가 구두를 오래 신기 위해 대장간에 가서 구두 굽 밑에 쇠를 박아서 신었는데, 그 소리가 요란하여 그 부자를 '구두쇠'라고 불렀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구두에 쇠를 박고 다닐 정도로 돈을 아끼는 사람을 '구두쇠'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고 다니는 '구두'에 '쇠'(鐵)란 단어가 연결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설명은 미덥지 못하다. 우리가 신고 다니는 '구두'는 일본어 차용어이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910년대이기 때문에, 이미 19세기 말에 보이는 '구두쇠'의 어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형식이 하도 심란야 구두로 을 파면서 <무정(1917년)>, 마루우에 올려 노코 분주히 구두을 른다 <빈처(1921년)>

'구두쇠'의 '-쇠'는 남자를 낮추어서 말할 때 쓰는 접미사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당쇠, 돌쇠, 덜렁쇠(덜렁대는 사람), 밥쇠(밥만 축내는 사람)' 이외에도 각종의 민속놀이나 문헌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 '-쇠'자 돌림을 가진 사람이 많다. 꺽쇠(북청사자놀이), 꼭두쇠(남사당), 장쇠(장화홍련전의 주인공), 목탁쇠, 비나리쇠(걸립패의 풍물잡이), 상쇠(농악대의 지휘자) 등이 그러하고 아마도 '변강쇠전'의 주인공 '변강쇠'의 '-쇠'도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구두'는 무엇일까? '구두쇠'의 '구두'는 '굳다'의 어간 '굳-'과 연관이 있다. '구두쇠'를 '굳짜'라고도 하는 것이나, 19세기 말의 '굳다'란 단어에 '인색하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나(굿다(鄙吝, 堅吝)<국한회어(1895년)), '구두쇠'의 방언형에 '구더박이/구더배기/구두배기(강원), 구덕바우(평북), 구덕새/구덕쇠/구덕수(평안), 꾸두쇠(강원), 꾹쇠(강원)' 등이 있는 사실에서 그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구두쇠'는 '굳- + -우 + -쇠'로 분석된다. 그러나 '-쇠' 앞에는 명사(마당쇠 등)나 동사의 어간(먹쇠, 꺽쇠 등)이 와야 하는데, '구두'는 명사도 동사 어간도 아니어서 그 해석에 어려움이 있다. '굳쇠'이어야 하는데, '구두쇠'이기 때문이다. 즉 '구두쇠'의 제2음절에 보이는 '두'의 'ㅜ'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黃'을 '누루 황'('누를 황'이라고 하여야 한다)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현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으로 보인다. '굳다'의 옛날 형태는 오늘날과 같은 '굳다'였었다.

구들 (剛) <훈몽자회(1527년)> 구들 견(堅) <광주천자문(1575년)> 구들 경(硬)<신증유합(1576년)> 구들 고(固) <신증유합(1576년)> 구들 공(鞏) <신증유합(1576년)> 石密은 沙糖이니 구두미 돌 니라 <능엄경언해(1461년)> 큰 城은 구두미 쇠도 디 몯고 져근 城은 기릐 一萬丈이 남도다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이러한 여러 가지로 보아, '구두쇠'는 '굳다'의 어간 '굳-'에 음운변화로 보이는 '-을>-우'와 같은 변화를 거친 '구두'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쇠'가 결합된 형태라고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