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를 찾아서]

'삼매경(三昧境)'과 '미증유(未曾有)'

이준석(李浚碩) 국립국어연구원

우리말에는 불경에서 유래한 고사 성어들이 많다. 그 가운데는 유래가 잊혀져 가는 것들도 있는데 '삼매경(三昧境)'과 '미증유(未曾有)'가 그것이다.
    일상적인 말로서 '삼매경(三昧境)'은, '게임 삼매경', '독서 삼매경', '쇼핑 삼매경', '비디오 삼매경' 등에서 쓰이고 있다. 이들에서 그 뜻은 "어떤 일에 마음을 빼앗긴 채 몰입한 상태"를 가리키는데, '빠지다'라는 동사와 어울려 '삼매경에 빠지다'라는 구절을 형성하기도 한다.

(1) 고전 속 성현의 말씀을 익히며 몰아 삼매경에 빠지는 거지요. (조선일보/수도권 전국: 2002. 9. 5.)
(2) 모처럼 여유를 갖는 여름 휴가. 소설 읽기 삼매경에 빠져도 좋겠다. (조선일보/문화: 2002. 7. 19.)

본래 불경에서 '삼매경'을 가리킬 때는 선(禪)의 깊은 경지를 일컫는다. 이 말은 범어 Samadhi를 음차한 것인데, 청정한 자성(自性)의 본래 면목을 떠나지 않는 경지를 가리키는 뜻으로서 '정(定)'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삼매경'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불교(圓佛敎)의 『정전(正典)』에서는 무시선(無時禪)과 무처선(無處禪)으로 '삼매경'을 말하고 있다. 그 일 그 일에 집중하되 자성(自性)을 떠나지 않고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이룰 때 비로소 삼매경에 빠졌다고 하는 것이다.
    삼매경은 수 나라의 고승 혜원(慧遠)이 편찬한 불교 용어집 『대승의장(大乘義章)』을 비롯해서 불경 이곳저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삼매이체적정(三昧以體寂靜), 이어사란(離於邪亂), 일체선정섭심(一切禪定攝心) 개명삼매(皆名三昧)"라 적시(摘示)하였는데 풀이하면 삼매의 본질은 고요하고 맑은 것으로서 사악하고 어지러운 것을 떠난 것이다. 일체를 대함에 있어서 선정심(禪定心)으로 그 마음을 지키면 모두 삼매라 부른다고 하였다.

한편,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것을 가리켜 '미증유(未曾有)'라고 하는데, 동의어로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이나 파천황(破天荒)이 있고, '광고(曠古)하다'도 같은 의미이다.

(3) 뉴욕 등지에 대한 미증유의 동시다발 테러 공격을 받은 뒤 같은 해 10월 7일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알카에다 테러망 분쇄를 위한 테러전에 돌입한 바 있다. (조선일보/국제: 2002. 10. 7.)
(4) 그로선 일생일대의 사활을 건 미증유의 도전인 셈이다. (조선일보/정치: 2002. 9. 17.)
(5) 서울 주식 시장은 미증유의 '작전주' 사건을 목도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주간조선 : 2002. 9. 9.)

미증유는 '증아함경 제9. 수장자경'이 출전이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수장자에 대하여 비구(比丘)들에게 말씀하셨다. '수장자에게는 여덟 가지 미증유(未曾有)의 법이 있느니라. 수장자는 욕심이 적고, 믿음이 굳건하고, 양심의 부끄러움을 알고, 남에게 미안함을 알며, 선행을 부지런히 하고, 항상 법을 깊이 생각하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지혜가 밝은 사람을 말한다'라고 하셨던 데에서 시작된 말이다. '미증유'는 국어에서 독립된 품사인 명사로 쓰인다. 대개는 관형격 조사 '의'와 결합해서 '미증유의 ~'와 같이 쓰이는 것이 일반적인 용법이다. '미증유의 역사적 사건', '미증유의 공격', '미증유의 테러', '미증유의 재앙', '미증유의 사태', '미증유의 초저금리 시대', '미증유의 국정 문란', '미증유의 참사', '미증유의 일', '미증유의 비극', '미증유의 거액', '미증유의 정당 탄압', '미증유의 세균 테러전'에서와 같이 '미증유'와 어울리는 명사를 살펴보면 대개는 '사건, 테러, 공격, 재앙, 사태, 초저금리, 참사, 일, 비극, 거액'과 같이 구체성을 띤 명사들이다. 그런데 '미증유의 사랑'이나 '미증유의 말씀'이란 말은 좀처럼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단순히 구체성 외에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깜짝성'이 포함되어야만 '미증유'를 사용할 수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