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봄 가을 업시 밤마다 돗는 달도
「예젼엔 밋처 몰낫서요.」

이럿케 사뭇차게 그려울 줄도
「예젼엔 밋처 몰낫서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젼엔 밋처 몰낫서요.」

이제금 져 달이 서름인 줄은
「예젼엔 밋처 몰낫서요.」
<'예젼엔 밋처 몰낫서요', "진달내", 1925>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에서 비유되는 것은 달이고 비유하는 것은 문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늘에 있는 달을 바라보고 슬퍼서 우는 사람은 연애하는 사람 빼놓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예외라면 천문학자라고나 할까. 연인이 달로 보일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는 달처럼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그런 사연을 달에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말만을 반복함으로써 달성하고 있다. 일종의 내숭 떨기라고나 할까? 수사적으로는 '반어(irony)'라고 한다. 반어(反語)란 겉으로 드러난 표현과 속으로 나타내는 뜻이 정반대를 이룰 때 쓰는 표현이다. 연마다 나타나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란 간단한 문장이 연을 거듭할수록 '이제는 알고 있구나'를 거듭 느끼게 하는 반어적 의미가 강해진다. 그런데 시적 화자가 안 깨달음이 '슬픔'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듣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천진난만하게 순수하던 소녀 시절은 가고 성숙한 여인(시적 화자)이 되어 달을 보며 울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달과 연인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연인(비유하는 것) ---------------------------------------------------- 달(비유되는 것)

내 인생의 중심 ---------------------------×중심---------------- 밤을 비추는 우주의 중심
사무치게 그리운 대상 -----------------×그리움의 대상------------- 캄캄한 밤에 그리운 대상
늘 (곁에서) 보고 싶은 대상 ----------------×소유-------------------- 늘 쳐다보고 싶은 대상
존경하며 사모하는 대상 -------------------×존경-------------------------- 올려다볼 대상
내게 기쁨과 슬픔을 주는 존재 --------------×순환---------------------- 죽음과 재생의 대상

뭔가를 안다는 점에서 달의 영향력을 안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시적 화자는 어둠을 밝혀 줄 달이 있다는 사실과, 그런 달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그 달을 늘 쳐다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유되는 '달'에서 비유하는 '연인'에게 옮겨서 보면 시적 화자의 연인은 내 인생의 중심이고 사무치게 그리운 대상이고 늘 곁에서 보고 싶은 대상이며 존경하고 사모하는 대상이다. 여기까지 보면 달에 투영한 사랑의 깨달음이 즐거움일 수 있다. 그런데 끝 연에서 그 달이 '설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인생에서 깨닫는 일이 기쁜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또한 깨닫게 된다. 오히려 무심하게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으면 서러움도 겪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아마 시적 화자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무심한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사람이 고통 속에서 성숙해지듯이, 서정적 화자는 이 시에서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달에 투영하며 자신의 내적 성숙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달이 비치면 좋기만 한데 왜 달이 설움의 원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달은 환한 보름달일 때도 있지만 그믐달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연인의 마음도 사랑으로 밝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라 연인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시적 화자에게는 그 달이 설움이 될 수 있다. 사랑의 달콤함뿐만 아니라 그 고통까지도 겪어야 비로소 사랑을 할 자격이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자연물까지도 이해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 시의 '달'은 성숙을 일깨우는 존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