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를 찾아서

남상(濫觴)과 미봉(彌縫)

이준석(李浚碩) / 국립국어연구원

사물의 시초나 근원을 일러 '남상(濫觴)'이라고 한다. 술잔[觴]에 넘칠[濫] 정도의 적은 물이란 뜻이다. "순자(荀自)"의 '자도편(子道篇)'과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삼서편(三恕篇)'에는 다음과 같은 '남상'의 유래가 실려 있다.

공자에게 사랑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꾸중도 누구보다 많이 듣던 제자로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양자강(揚子江)은 사천(四川) 땅 깊숙이 자리한 민산(岷山)에서 흘러내리는 큰 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양의 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류로 내려오면 물의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서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배조차 띄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 물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공자는 매사에 있어서 시초가 중요하며 시초가 나쁘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 했던 것이다.

현대 국어에서 '남상'이라는 말은 그 쓰임이 흔하지는 않지만 '원조(元祖)', '시조(始祖)', '태두(泰斗)'라는 말과 그 의미가 같다.

빈구석이나 잘못된 것을 그때그때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주선해서 꾸며 대는 것으로 '미봉(彌縫)'이라는 말이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환공 오년조(桓公五年條)'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에 환왕은 명목상의 천자국(天子國)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세력을 만회하려고 정(鄭)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莊公)은 날로 강성해지는 국력을 배경으로 천자인 환왕을 무시하곤 했기 때문이다. 환왕은 우선 장공에게서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상 실권을 박탈했고 이 조치에 분개한 장공이 신하로서 천자를 뵙는 조현(朝見)을 중단하자 환왕은 이를 구실로 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諸侯)들에게 동참(同參)을 명했다.
    왕명을 받고 군사들이 모이자 환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를 정벌하러 나섰다. 정나라의 수갈(繡葛)에 도착한 정벌군은 장공의 군사와 대치했다. 이때 정나라 공자(公子)인 원(元)은 장공에게 특별한 병법을 진언했다.
    장공이 원의 진언에 따라 펼친 군진은 원형(圓形)의 진(陳)으로서 군사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보병(步兵)을 뒤따르게 하는 형태였는데 수레와 수레 사이에는 보병으로 '미봉'하는 것이었다. 장공이 이끈 정나라의 군사들은 보병으로 수레를 미봉한 군진으로써 환왕의 정벌군을 대파하였고, 환왕은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물러갔다.

이러한 고사를 가진 '미봉'은 국어에서 접미사 '-하다'나 '-책(策)'과 어울려서 '미봉하다'와 '미봉책'의 쓰임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