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글 맞춤법의 원리에 대한 해석

김정남(金貞男) / 서울대학교 강사

1989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현행 '한글 맞춤법'의 총칙 제1항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 규정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설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글 맞춤법'은 국어 가운데 '표준어'를 표기 대상으로 한다는 점,
둘째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를 일차적으로 지향한다는 점,
셋째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가 지켜지는 범위 안에서 '어법'을 고려한다는 점이다.

흔히 한글은 세상에서 적지 못할 말이 없다고 하고 새 울음소리며 빗소리며 바람 소리며 별별 굉음까지도 다 적을 수 있는 문자라는 점을 "훈민정음"에서부터 자랑하고 있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한글의 표기 대상은 아무 소리나 아무 말이 아니고 바로 '표준어'라는 것이다.

'한글 맞춤법'의 표기 원리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형태 음소적 원리'라고 말한다. '형태 음소적'이란 한글이 표음 문자이기는 하지만 소리대로만 적는 것이 아니라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히고 고정해 적는다는 말이다. 즉, '꽃'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놓이는 환경에 따라 [꼳]으로도 [꼰]으로도 때로는 [꼿]으로도 소리 나지만 항상 그 형태를 기본형인 '꽃'으로 고정해 표기함으로써 읽기에서의 편의를 도모하고 표의성(表意性)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기본형 밝혀 적기라는 '한글 맞춤법'의 주요 원칙은 분명 형태소를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의 총칙에서 보면 '한글 맞춤법'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표음주의이지 표의주의나 형태소 고정 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리대로 적되
    '한글 맞춤법'의 총칙에서는 분명히 '소리대로 적되'라고 함으로써 표음주의를 먼저 고려함을 명시하고 있다. 즉, '한글 맞춤법'에 의하면 표준어가 소리대로 적히지 않을 경우란 없다고 말하여도 틀리지 않는다. '한글 맞춤법'에 따르면 '솔직히'가 맞고 '솔직이'가 틀린데 이는 표준어 발음이 [솔찌키]이지 [솔찌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음운 환경에서 '깊숙이'가 맞고 '깊숙히'가 틀린 것 역시 이 단어의 표준어형, 즉 표준 발음이 [깁쑤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그 '소리대로' 적는 것을 일차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소리대로 적는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이나 일반인이 공통으로 하는 오해가 한 가지 있다. 즉 이어 적기 표기와 음운 현상에 따른 자동적 교체가 표기에 반영된 경우만을 '소리대로 적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같이'라는 어형에 대하여 [가치]라고 발음 기호처럼 적는 것만을 소리대로 적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도, '가치'도 모두 소리대로 적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같이'라고 적어 놓고 이 단어의 실제 발음인 [가치]로 읽지 않는 경우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이'로 적든 '가치'로 적는 동일한 소리로 읽게 된다. 그러므로 '같이'라는 표기를 소리대로 적었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일 '같이'로 적고 [가티]로 읽는다거나 아니면 [가치]라는 소리를 표음주의에 충실하게 적는다고 '갖티'처럼 적는다면 문제가 된다. 이렇게 적으면 소리대로 적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로 적고 국어의 자연스러운 음운 현상에 따라 [가치]로 읽으니 '같이'라는 표기 역시 소리대로 적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어법에 맞도록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이렇게 소리대로 적을 방법이 국어에는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기 때문에 유효하고 필요한 조항인 셈이다. 즉, 소리대로 적는다면 '가치'도 되고 '같이'도 되고 또는 '갇히'도 되는데 이 중 어느 표기가 어법에 맞는 것인지를 고려해서 그에 따라 표기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어법'이란 '문법'과는 좀 다른 의미이고 다소 포괄적인 것으로 사용되는 말인데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혀 적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게 해 주는 것이 어법이다. 즉 어간이나 어근을 고정해 표기할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여 표기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형태소의 기본형을 밝혀 적은 경우는 다음 두 가지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이다.

(1) 어원적으로나 의미상으로 어간 및 어근과의 유연성(有緣性)이 유지되는 경우
(2) 어미나 접미사가 생산적인 경우

어떤 단어가 단일어인 경우라면 단어 내부에 형태소 경계가 없기 때문에 기본형을 밝혀 적고 그렇지 않고가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태소 경계가 있을 때 끊어 적기 하여 그 경계를 분명히 하느냐 그러지 않느냐가 표기의 관건이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요건을 다 갖춘 경우에 끊어 적기를 선택하고 둘 중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이어 적기를 선택한다는 이 원칙이 바로 '어법'인 것이다.
    물론 형태소 경계는 어근과 어근이 연결된 경우에도 존재한다. 그 경우 (1)의 조건만이 유지되면 끊어 적기와 형태소 밝혀 적기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어근이 모두 유연성을 갖는 경우에 한한다. 그래서 '궁물'이라 적지 않고 '국물'이라 적는다. '국물'이란 단어는 '국'과 '물'의 합성어이므로 각각의 형태소를 밝혀 적는 것이다.
    한 단어 내부에 형태소 경계가 있는 두 번째의 경우는 어간과 어미가 연결된 경우인데 이 경우는 어간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상의 유연성이 유지되는 것에 한하여 유효한 명칭이고 어미들은 또한 규칙적이며 생산적이므로 모두 형태소를 밝혀 적으면 된다. 동사나 형용사의 활용형이 바로 이에 속한다. 그런데 이른바 불규칙 활용형이라고 하여 어간의 변이형을 표기에 반영하는 경우가 있다. 즉, '곱다'의 경우 '곱고, 곱으니'가 아니라 '곱고, 고우니'로 적는 것이다. 이 경우 '고우니'에서 어간 형태소를 유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적용되는 원칙, 즉 '소리대로'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곱으니'라 써 놓고 [고우니]로 발음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법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대로'를 먼저 지켜서 표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글 맞춤법'에서 우선시하는 것이 표음주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어근과 접사 사이가 문제인데 이 경우 어근의 의미가 유지되지 않거나 접사가 생산적이지 않으면 기본형을 밝혀 적지 않고 이어 적기를 한다. '같이'나 '굳이'의 경우 이렇게 끊어 적기 하는 것은 '-이'가 생산적인 부사 형성 접미사이고 '같-'과 '굳-'에 '동(同)'과 '고(固)'의 의미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차마'의 경우에는 '인(忍)'의 의미는 유지되나 '-아'가 생산적인 접미사가 아니기 때문에 끊어 적기 하지 않는 것이다. '끄트머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끝'은 '단(端)'의 의미를 유지하고 있으나 '-으머리'라는 접사가 생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굳이 끊어 적기 하지 않는 것이다. '귀마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막-'에서 '방(防)'의 의미가 유지되나'애'라는 접미사가 생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어 적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접미사는 생산적이나 어근 부분이 유연성을 잃어 이어 적는 경우도 있다. '설거지'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라는 접미사는 생산적으로 나타나나 '설겆-'이라는 어근이 공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그 의미의 유연성이 없다고 판단되므로 이어 적는 예이다. '목도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돌-〔廻〕'과의 유연성을 찾을 수 없어 이어 적는다. 이는 '목걸이'와 대비되는 표기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을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어법이라는 것을 고려하는데 이 어법이란 어근의 기본형을 밝혀 적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 하여 적는다는 것으로 기본형 밝혀 적기 표기의 기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어근 부분의 의미상의 유연성이요, 둘째는 접사의 생산성이다. 이 둘이 충족될 때 끊어 적기를 한다는 것이 바로 '한글 맞춤법'에서 말하는 어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