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의 이해

영어 모음의 외래어 표기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영어에서 온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 많은 사람들이 특히 모음 표기에 곤란을 겪는다. 우리말 외래어 표기의 큰 원칙은 가능하면 외국어의 본디 발음에 가깝게 적도록 하는 것인데, 우리말의 음운 체계와는 다른 영어의 모음 소리를 어떤 글자로 적는 것이 가장 가까운지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a, æ, e, i, o, u]처럼 우리말에 비슷한 소리가 있는 경우에는 ‘아, 애, 에, 이, 오, 우’로 쉽게 옮겨 적을 수 있지만, [Ə, Λ, ɔ]처럼 우리말에 비슷한 소리가 없는 경우에는 사람에 따라, 단어에 따라 달리 적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Ə]와 [Λ]를 모두 ‘어’로 적도록 규정하고 있다. [Ə] 소리를 ‘으’나 ‘아’로 적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항상 ‘어’로 적어야 한다. 따라서 digital[diʤitƏl]은 ‘디지틀’이나 ‘디지탈’이 아니라 ‘디지털’로 적어야 한다. [Λ]는 보통 ‘아’와 ‘어’의 중간 소리로 알고 있으므로 표기도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혼란을 빚고 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이 소리를 ‘어’에 대응시키고 있으나 과거에는 ‘아’로 적은 적도 있기 때문에 ‘아’로 적은 표기형이 아직도 많이 눈에 띈다. 이 규정에 따라 color[kΛlƏr]와 cover[kΛvƏr]는 ‘칼라, 카바’가 아니라 ‘컬러’, ‘커버’로 적는다.
    [ɔ]는 [o]와 구분 없이 ‘오’로 적는다. [ɔ] 소리는 우리말의 ‘어’와도 비슷하게 들리므로 ‘어’로 적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concept[kɔnsept], contents[kɔntents] 등을 흔히 ‘컨셉트’, ‘컨텐츠’ 등으로 적는데, 이들은 ‘콘셉트, 콘텐츠’로 적어야 한다. 반대로 영어의 철자에 이끌려 ‘어’로 적어야 하는 것들을 ‘오’로 잘못 표기하는 예들도 있다. 예를 들어 container[kƏnteinƏr], control[kƏntroul] 등은 con-의 발음이 [kɔn]이 아니라 [kƏn]이므로 ‘콘테이너, 콘트롤’로 적어서는 안 되고, ‘컨테이너’, ‘컨트롤’로 적어야 한다. 영어는 철자와 발음 사이에 일정한 대응 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철자가 같아도 발음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위의 예에서처럼 똑같은 con-이 단어에 따라 [kɔn]으로 발음되기도 하고 [kƏn]으로 발음되기도 한다. 따라서 항상 발음 기호를 확인해서 외래어 표기를 해야 한다.
    이중 모음은 이론적으로 두 개의 모음이 결합한 것이므로 각 모음의 음가를 살려 적는 것이 원칙이다. 즉 [ai], [au], [ei], [ɔi] 등은 각각 ‘아이’, ‘아우’, ‘에이’, ‘오이’ 등으로 적는다. 따라서 time[taim]은 ‘타임’, house[haus]는 ‘하우스’, skate[skeit]는 ‘스케이트’로 적는다.
    그러나 [ou] 소리는 ‘오우’가 아니라 ‘오’로 적는다. 따라서 boat[bout], coat[kout]는 ‘보우트, 코우트’로 적지 않고 ‘보트, 코트’로 적어야 한다. [ou]를 ‘오’로 적는 것은 ‘오우’로 적는 것보다 영어의 본래 발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ou]의 [u]는 일종의 과도음으로 음성학적으로는 [o]를 발음한 상태에서 입술 모양만을 [u]로 바꾸면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o]와 [u]의 결합이라기보다는 [o]의 장음과 비슷한 음가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goal[goul]이나 bonus[bounƏs] 같은 말들을 ‘고울’, ‘보우너스’로 적으면 어색하게 들리고 ‘골’, ‘보너스’로 적어야 영어 발음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데 bowling[bouliŋ]이나 snow[snou], window[windou], yellow[jelou] 같은 몇몇 단어들은 ‘볼링, 스노, 윈도, 옐로’ 등의 바른 표기보다는 ‘보울링, 스노우, 윈도우, 옐로우’ 등의 잘못된 표기형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이러한 단어들의 공통점은 모두 철자에 w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인데, 무의식중에 이 글자를 ‘우’로 표시하고자 하는 언중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 같다. 즉 같은 [ou] 소리라도 w자가 포함되지 않은 단어들은 ‘오’로 쉽게 적는데, w자가 있는 단어들은 규칙적으로 ‘오우’로 적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외래어 표기는 철자가 아니라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w자가 있든 없든 [ou] 소리는 ‘오’로 적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