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어화 논쟁 특집

영어 공용어화 논쟁 약사(略史)

1998년 소설가 복거일 씨가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라는 저서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여 생존하기 위해서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정하자는 주장을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이 책의 내용이 1998년 7월 2일자 조선일보의 기사를 통해 소개되고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이면서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찬반 논란이 신문 지상을 통해 제법 활발하게 벌어졌다. 국어학계나 국어 정책 기관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닌 만큼, 이 사건은 민간 차원의 작은 촌극 정도로 볼 수도 있으나 영어 공용어화라는 논쟁의 주제만큼은 다른 어느 어문 정책 관련 주장보다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영어 공용화 논쟁은 인터넷으로까지 확산되면서 국어 관련 단체나 학자들이 영어 공용어화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인터넷 조선일보의 영어 공용어화 찬반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비율이 45.1%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세대가 20∼30대임을 고려할 때 젊은 층에게는 이 주장이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국민 전체로 볼 때는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반대론이 절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은 1999년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그 열기는 소강 상태에 접어든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1999년 11월 초 텔레비전 교육 방송이 영어 공용어화를 주제로 한 난상 토론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도 62.4%가 영어 공용어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어 공용어화에 대해 긍적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종석 씨가 “감염된 언어”라는 저서를 펴내어 복거일 씨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하였다.

2000년 1월 18일 일본에서도 총리 자문 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의 간담회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고 제안하여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 공용어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복거일 씨가 이전의 주장을 부연한 영어 공용어화론 제2탄을 “신동아” 3월호에 실었고 이에 대한 반박문을 정시호 교수가 “신동아” 4월호에 싣기도 하였지만 그리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김영명 씨가 “나는 고발한다”를, 한학성 씨가 “영어 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를 잇따라 펴내어 영어 공용어화에 대한 반대 주장을 내놓았다.

2001년 5월 14일 정부와 민주당이 제주도 국제 자유 도시 개발을 위해 제주도 내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으로써 비교적 잠잠했던 영어 공용어화 논란에 다시 불씨를 붙이는 형세가 되었다. 어문 정책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부 및 국립국어연구원이 제주도 내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몇몇 국어 관련 단체의 격렬한 반대도 있었다. 이에 정부는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영어 공용어화는 시기 상조라는 점을 들어 제주도 내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공식화한다는 방안을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