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의 이해

‘고흐’와 ‘르누아르’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지난 가을, 서울의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이 열렸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와 20세기의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다. 멀리 프랑스로부터 우리나라를 찾아온 귀한 작품들을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전시회는 연일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우리가 교과서에서 자주 보아 친숙한 마네, 모네, 밀레, 드가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소식에 모처럼 진품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회에 다녀왔다는 시민에게서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시회 도록에 Gogh를 ‘고흐’로 Renoir를 ‘르누아르’로 적었는데, ‘고호’, ‘르느와르’가 맞는 표기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고흐, 르누아르’가 맞다.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한글로 어떻게 적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외래어 표기법’의 주요 관심사이다. 가능하면 외국어의 발음에 가깝게 적는다는 원칙이 있으나, 어떻게 적는 것이 실제 발음에 가까운지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어서 같은 외래어에 대해 여러 가지 표기가 나타나는 일이 흔히 있다. 처음 외래어 표기법이 정해지던 1940년대의 문헌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의 이름을 적은 것이 ‘고에테, 기유테, 기에테, 게테, 고웨테, 교에테’ 등 무려 29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말과 음운 체계가 다른 외국어의 소리를 한글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독일어나 네덜란드 어에 사용되는 ch[x] 소리를 모음 앞에서는 ‘ㅎ’으로, 자음 앞이나 어말에서는 ‘흐’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Gogh는 ‘고흐’로 Bach는 ‘바흐’로 적어야 한다. ‘고호’, ‘바하’ 등의 표기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1960∼1970년대 교과서에 한동안 그렇게 표기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6년에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고시되면서 어말의 [x] 소리는 예외 없이 ‘흐’로 적도록 하였다. [x] 앞의 모음이 [a]인지 [o]인지에 따라 같은 소리를 ‘하, 호’ 등으로 달리 적는 것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독일어 원음에서도 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Renoir[rƏnwa:r]는 그동안 ‘르느와르, 르노아르, 르노와르’ 등으로 적던 것인데, 프랑스 어 표기법에 따라 ‘르누아르’로 적어야 한다. 프랑스 어의 경우 [Ə]는 ‘ㅡ’로 적고, 반모음 [w]는 ‘ㅜ’로 적되 뒤의 모음과 합쳐 적지 않는다. 따라서 Renoir[rƏnwa:r]는 ‘르누아르’로, Beauvoir[bovwar]는 ‘보부아르’로, François[frãswa]는 ‘프랑수아’로 적는다.

이번 오르세 미술관 한국전을 맞아 어느 신문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조사하였더니 ‘고흐’와 ‘르누아르’가 꼽혔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은 그들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면서도 막상 그들의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적는가 하는 문제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고흐/고호, 르누아르/르느와르’ 등으로 달리 적어 왔던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고흐, 르누아르’로 올바르게 적도록 하자.